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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04. 2021

Humanity at Night

절망 속에서도 내일을 찾게 하는 예술의 힘

작년 여름 즘이었나, 친구의 추천으로 'aeon'이라는 새로운 온라인 잡지를 알게 됐다. 대학교 초반에 구독했던 씨네 21 이후로 잡지를 읽어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어떤 플랫폼 일지 호기심으로 링크를 따라 들어갔고 생각보다 더 다양한 분야의 에세이와 동영상 콘텐츠들을 보게 됐다. aeon에서 최근에 읽은 <Humanity at Night>라는 에세이에 대한 감상을 한 번쯤 남겨보고 싶었다.


본문 중에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다룬 Elie Wiesel, 『Night』 책 내용이 언급된다. 홀로 미국 땅을 처음 밟은 그 해, 서머 리딩 과제로 꼭 읽어가야 했던 책을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게 되다니! 잘 되지도 않는 영어 실력으로 책을 붙들고 숙제를 하느라 내용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너무 끔찍하고 마음 아픈 내용이라는 인상은 강하게 남아 있었다.


당시 부나 수용소에 있던 유대인들은 독일 음악을 연주할 수 없었다.『Night』의 등장인물 율리엑은 저항의 의미로 바이올린을 키고 독일 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그날 밤 죽음을 맞이한다.


He was playing his life. His whole being was gliding over the strings. His unfulfilled hope. His charred past, his extinguished future. He played that which he would never play again.

                                                                                                    출처: Elie Wiesel, 『Night』쓰기의 말들』


미래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의 끝에서도 사람들은 노역을 마치고 돌아와 밤이 되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켰다. 해가 떠 있는 동안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하던 그들은 예술이 피어나는 밤이 되면 박탈당한 인간성을 다시 회복하고 살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나치를 피해 피신을 다니는 중에서도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회고록을 보면 부모님은 당시 어린이였던 저자가 도망을 다니는 중에도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로 그림을 가져다주었고 그 그림은 어린아이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다는 부분이 나온다.


영국인인 이 에세이의 저자는 현실에서 STEM 전공이 주가 되고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예산은 계속돼서 삭감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경제적 논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예술 또한 삶의 필수 요소임을 강조한다. 나 역시 사회과학 전공의 길을 선택했지만 STEM 전공에 대한 지원이 증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 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말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의식주만이 아니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이유, 예술이 그 소중한 가치들을 더 풍부하게 해 준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We also need reasons to live. Laughter, stories, play, dance, music: we learn that these, too, are basic needs and fundamental components of decent human lives. They matter to people, as sources of meaning and beauty, of hope and solace, of escape and liberation.

출처: https://aeon.co/essays/in-times-of-crisis-the-arts-are-weapons-for-the-soul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비대면 수업 속 교육격차가 더욱 심해졌다. 사회적 약자에게 재난이 더욱 가혹하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코로나로 실직한 사람이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지, 이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매일같이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기사가 아니라 주변만 돌아봐도 접할 수 있는 당장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럴 때 예술과 문화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배부른 소리 하는 현실감각 없는 사람이 된다. 너무 당연한 반응이다. 


저자 스스로도 극단적인 예시를 사용하여 비교하고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아우슈비츠라는 삶의 끝이라 느껴지는 그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나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예술을 갈구했다. 예술은 한 사람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준다. 그게 독서이던 영화이던 음악이던. 아이들의 교육 격차는 국영수 점수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문화예술을 향유하는지에서도 시작된다. 나조차도 이렇게 말하면서 막상 해결책이나 근본적 개선안을 제시해 보라 하면 할 말이 없어져 눈만 굴리게 되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배부른 소리를 미약하게라도 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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