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사진

난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by Blank

지금 당장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생각보다 많은 기억이 비어있음을 알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사람들을 만나고, 페이퍼를 작성하고, 점심을 함께하고, 다시금 집으로 오는 여느 때와 같은 일과 중에 내가 잊어버린 것은 꽤 많다. 때문에 우린 노트를 피고 글을 적고 휴대전화를 켜서 메모를 남긴다. 혹여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2주(벌써 2주가 지났다) 전 오늘, 난 사막과 초원 사이 어드메 있었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 가운데 서 있었다.

엘승타슬하이

초원 너머 모래 언덕 위에 지는 해와 함께 서 있던 낙타 세 마리는 내가 몽골에서 만난 경이로운 자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셔터를 눌렀다.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기에-


사진이 갖는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손쉽게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면 된다. 요즘 사진기는 기능도 뛰어나서 그냥 Auto로 놓고 찍어도 좋다. 위의 사진도 급히 떠나야 하는 버스를 쫒아가다 뒤돌아 서서 놀라며 구도고 뭐고 일단 찍고 봤다. 그리고 나중에 더 놀랐다. 그리고 앞뒤 재지 않고 찍은 그때의 나에게 감사했다. 덕분에 난 저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몽골 여행은 내게 사진 찍는 재미를 다시금 일깨워줬다. 순간을 기록하는 재미, 내가 있었던 곳을 기억하는 재미를 떠올리게 해줬다. 칭기즈칸 공항에서 떠나온지는 이미 14일이 지나버렸지만, 여전히 몽골 초원 위에 있는 나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겐 순간을 담은 사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진의 구도가 엉망이고, 노이즈가 심하고, 아쉬움이 넘치는 사진이라도 '작품'이 아닐 뿐 '기록'으로는 남을 수 있다.


동틀 무렵, 처음 만난 몽골의 푸른 하늘도


날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던 연도


붉게 물든 타미르 강의 저녁 어스름도


여행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던 우리에게 몽골의 하늘이 선사해 준 선물도

찍고, 써서 기록하였기에 난 조금 더 기억할 수 있다.


여행을 다녀와서 컴퓨터에 옮긴 사진은 약 천칠백 장이다. 그중 대부분이 버려질 사진이지만, 오늘부터 그 천여 장의 습작들 가운데서 보물 같은 기억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