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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Oct 07. 2024

출판표준계약서를 작성하며

#일인출판 #출판이야기 #계약갈등

대학원에서 같이 수학했던 친구와 출판권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이야기의 출발은 얼마 전 떡볶이를 먹으며 일상다반사를 나누다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다. 우리는 이러나저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친구는 평소 맘속에 품어둔, 언젠가 책을 낸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어떤 감에 이끌려 단번에 ‘계약하자’는 말을 꺼냈다. 올해로 혼자서 출판사를 운영한지 2년 째 접어든 초짜 출판인이지만 분명 좋은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었다. 아니, 좋은 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나는 수지타산을 재빠르게 셈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오히려 그때그때 분위기를 더 중시하는 편인데, 그래서 내게 출판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일이라기보다(물론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에 가깝다. 작년, 내가 처음으로 펴낸 책의 작가님은 글쓰기 모임에서 함께 글을 썼다. 어떤 글을 쓰는지 알고서 출판을 맘먹었다면, 이번엔 읽어 본 적도, 기획도 불확실하면서 그저 방향성만으로 출판을 결심했다. 물론 친구의 글을 읽어본 적은 있다. 내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나는 진심이니까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말했다. 다음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계약 하자.”


나는 노트북을 열어 계약서를 작성했다. 어떤 사이든 일은 정확하게 하는 게 좋다. 얼렁뚱땅 하는 건 나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표준계약서에 계약 기간, 원고 완성 기간, 인세와 정산 방식 등을 정해서 친구(이자 작가님)에게 보냈다. 우리는 완성된 원고의 전달 기간만 좀 더 여유롭게 수정한 뒤 계약하기로 약속했다. (이 칼럼이 나올 즈음엔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겠다.)


최근에 출판권 표준계약서와 관련해서 출판업계와 작가, 문제부간 갈등이 지속된다는 기사를 접했다. 나는 이번에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에서 2월에 새로 고시한 표준 계약서를 사용했다. 종전의 표준계약서에 비하면 작가의 권리를 좀 더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이보다 앞서 1월에 출협(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도 자체적으로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기사에서는 작가들은 출협의 표준계약서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출협은 문체부의 표준계약서가 자유로운 출판 활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한다.


직접 두 표준계약서를 비교해 보기로 했다. 몇 가지 차이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계약기간의 확정 유무, 저작권 및 저작권자의 존중 범위, 2차 저작권의 귀속 대상, 저작물 비용 부담의 범위, 저작물 교정 방식 등이 ‘미세하게’ 달랐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창작물로 책뿐 아니라 영화, 웹툰 등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권리인 2차 저작권에 관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요즘은 하나의 자원을 다양한 장르에 적용하는 OSMU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그만큼 수익이 되기에 2차 저작권은 출판사와 작가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출협은 2차 저작권의 모든 권리는 출판사가 가지되 세부항목에 대한 수익 비율을 협의할 수 있도록 표로 제시했다. 그에 비해 문체부가 공시한 계약서에는 2차 저작권의 권리가 모두 작가에게 있다. 그 외에도 ‘미세한’ 차이들을 보니 개인 창작자인 작가와 출협에 소속된 출판업계 관계자의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해된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계약이 이해관계를 떠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면 한다. 제아무리 ‘표준’계약서라고 한들 저작권에 관한 지식이 웬만큼 없는 사람이 내용만으로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할까? 혹시 표준 계약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출판 생태계의 변화양상도 들여다봐야 한다. 출판 방식은 다양하고, 1인 혹은 독립출판사도 부지기수다. 나 또한 출판인이기 이전에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고 운 좋게 출판사와 계약해 정식 출간한 작가다. 나아가 유행처럼 작가가 출판사를 차리고, 편집자가 책을 낸다. 여러 모로 이제 독립출판과 기성출판의 경계는 모호하다고 보는 마당에 출판업계 종사자와 작가(창작자)의 경계 또한 모호해질 차례다. 그러니 출판권도 흑백처럼 상반된 권리로만 보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



국제신문 210406자 청년의소리 칼럼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10407.2202100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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