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시작하며

도서 입고 요청 메일로 시작한 첫날

by 서은

작년 7월에 사진 책 한 권을 독립출판 했다. 내가 책을 출판할 거라고는 살면서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봐도 맘에 드는 사진은 언젠가 한번 전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내가 좋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감. 작은 건물 지하에 하는 사진전을 지나칠 때면 ‘나도 언젠가 저런 전시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설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어렵사리 사진책 한 권을 출판하게 되었고, 막상 도서를 출판해 보니 그것보다 이 책을 독자들에게 파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사줄지 말지도 모르는 책을 300권 인쇄해서 신발장 한쪽에 쌓아놓았다. 이제부터 입고 전쟁이다. 200권쯤은 서점에 입고시키고 싶었다. 서점에 깔아놔야 한 명이라도 내 책을 들여다볼 텐데 사진책은 입고를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 인지 처음부터 어떤 서점에서 내 책을 받아줄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입고를 진행하다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더 많이 걱정해야 했었다. 하하하.


처음엔 네이버 지도에서 독립서점을 검색해 봤다. 서울을 동네별로 샅샅이 뒤지고 그다음 경기도, 그다음은 내가 살았던 도시, 내가 다녔던 학교가 있는 도시, 친척들이 살고 있는 도시, 제2의 서울이라 불릴만한 큰 도시 부산, 그리고 한때 살아보고 싶었던 제주도, 그러다가 우연히 구글링 중 '동네서점'이라는 사이트를 발견하고 주제별로도 서점을 찾아봤다. 사진책, 여행책을 키워드로 검색해 내 책을 받아 줄 만한 서점을 추렸다.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내가 원하는 느낌의 서점, 그리고 내 책과 어울릴만한 큐레이션을 한 서점이 있었지만 모든 곳에 내가 입고 문의를 할 수는 없었다.


'입고는 문의받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너무 입고하고 싶어도 연락처가 없어서 입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곳도 많았다. 사진책이 많아서 내 책을 받아줄 만한 서점에, 너무 유명해 내 책을 받아 줄 것 같지 않지만 입고시도라도 해보고 싶은 서점에 입고 문의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은 원하는 서점이 나오지 않아 기운이 빠진다. 그러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내 책을 전혀 받아 줄 것 같지 않은 서점에도 메일을 보내봤다.


9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132개의 독립서점에 메일을 보냈고 15군데에서 입고 수락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샘플책을 포함해 90권을 독립서점에 깔았다. 어떤 서점은 한 달이 넘게 메일을 읽지 않은 곳도 있었고, 정중히 거절의 메일을 보내준 서점도 있었다. 입고 성공 확률 11.36%. 너무나 적은 수치에 절망도 했다. 그렇지만 내 책을 받아준 서점에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누군가 내 책에 응답해 줬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했다. 퇴근 후에 책을 포장하며 '실제로 내 책을 받고 실망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했다. 퇴근 후 포장을 하고 12시가 다 되어 편의점 택배를 보내겠다고 무거운 책을 들고 동네를 배회하기도 했다. 가까운 편의점은 기계가 고장 났다고 해서 조금 먼 편의점까지 갔는데 추석연휴라 택배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집으로 다시 들고 온 기억도 있다. 8월에 운동을 하다가 손목을 다쳐서 주사 치료 중이었고, 다음 날 나는 또 주사를 맞으러 가야 했다.


11월 초쯤 되니 너무 지쳐 더 이상 입고 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더 이상 내 책을 받아 줄 서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계획했던 것에 한참을 못 미쳤지만 서점에 입고시킨 90권에 북페어 나가서 판 책, 주변 지인들에게 판 책을 합치면 100권이 넘었으니 반은 한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집을 나설 때마다 쌓여있는 책박스를 보면 마음이 답답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냥 100권쯤 인쇄할걸 그랬나 봐? 어떻게 다 팔지?" 보관할 곳이 없어서 500권을 하고 싶었지만 300권을 인쇄해서 아쉽다고 하던 몇 달 전 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또 두 달쯤 지나니 입고 문의를 할 만큼 정신이 회복되었다. 올 초에 추가로 100권을 입고 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침부터 서점을 검색했다. 작년에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던 서점이 다시 몇 군데 나타났다. 10군데 입고 문의 메일을 보냈다. 15군데 정도 찾았지만 10군데만 보낸 이유는 네이버가 대용량 메일을 하루 10번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일주일에 하루만 입고 신청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매일 입고에 시달리다 보면 또 금방 지칠 것만 같았다.


아침에 메일을 보내자마자 한 군데에서 입고 수락메일을 받았다. 새해 첫날부터 너무 기분이 좋았다. 여전히 10%의 확률이지만, 100권을 또 이 시장에 풀고 말겠다고 다짐해 본다. 지치지 말고 계속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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