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맨] 리뷰
달에 첫 발을 내디딘 사람을 묻는 질문에는 어느 누구나 닐 암스트롱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여정을 함께 한 동료들을 묻는다면 우주에 꾀나 관심 있는 과학도가 아닌 이상 머리를 긁적일 것이다. 영화 [퍼스트맨]은 최초로 달에 간 사나이, 닐 암스트롱의 달까지 도달하기 위한 그 과정 자체에 포커스를 맞췄기보다는, 그 과정 속에서 희생당한 것들에 대해 닐에 초점 맞추어 조명한다.
영화 [퍼스트맨]은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무드를 유지한다. 동료를 잃은 닐(라이언 고슬링)이 추모장소에서 빠져나와 혼자 뒷마당에 있을 때, 또 다른 동료 에드워드(제이슨 클락)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말을 건네지만 닐은 나지막이 말한다.
"나는 말동무가 필요해서 혼자 뒷마당에 있는 게 아니야."
추모 장소에서 눈치 없는 신입의 죽은 동료에 대한 비판에도 꾹꾹 눌러 담은, 절제된 분노를 보여주며, 백악관에서 열린 윗분들의 비위나 맞추고 있는 행사 중 걸려온 동료들의 사망 소식 전화에도 그는 자신의 내면의 분노를 터트리지 않는다. 다만 라이언 고슬링의 허무한 표정만 담아낼 뿐이다. 영화상에서 자신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은 주변 인물뿐이다. 특히 닐의 아내인 자넷(클레어 포이)만이 격양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자넷이 여성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아픔과 상황들을 속으로 감내해야 하는 우주 탐사대 인물들과 그런 그들을 비난하는 언론 및 시위대, 그들의 고립된 상황을 대조되는 묘사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거기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그들이(달 탐사를 목표로 하는 모든 이들) 겪는 고난을 상당히 객관화하려는 모습을 취한다. 닐의 딸 캐런이 종양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도, 자넷의 부푼 배에 있던 막내가 태어나는 것도, 동료들의 죽음도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으며, 빠르게 스킵한다. 마치 일부로 애써 아픔들을 직면하지 않고 외면하다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우리는 때로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신이 겪는 상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르게 흘러가 있기를 바란다. 마음에 상처에는 시간만이 약이지만, 그것을 아주 오래 장기 복용해야 해서 우리가 아물어가는 상처를 견뎌야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영화 [퍼스트맨]은 이렇게 닐, 자넷, 그리고 동료들이 겪는 아픔을 건조한 무드로 아픔을 극대화시켜준다.
언론과 시민들은 우주 탐사 연구를 혈세 낭비라며 깎아내리기 바쁘다. 동료들의 죽음, 일련의 테스트 실패, 좌절되는 과정 속에서 끝내 달 탐사가 그들 눈앞에 왔다. 수많은 기자들은 그들에게 갖가지 질문을 던진다. 달에 가게 되는 소감부터 연신 터지는 플래시 세례까지, 그러나 닐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다.
탐사를 위해 이제 집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러나 닐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을 피하려 하고, 자넷은 결국 폭발한다. 영화 상에서 닐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이 표출되는 것은 처음이다. 참아왔던 자넷의 폭발은 그들의 달로 가기 위한 여정이 진짜 목전에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솟구치는 불기둥 위에 거대한 로켓이 서서히 대기권을 벗어나 성층권, 중간권, 열권을 벗어나 마침내 우주에 도달한다. 달로 가기 위해 쌓아 올렸던 거대한 탑이 추진체를 벗어던지며 조금씩 작아진다. 결국 도달한 달과 흡사하게 영화 역시 극장을 가득 채웠던 소리가 사라진다. 길고 긴 무음 상태의 연속 끝에 관객 역시 숨죽이고 그들을 바라본다. 닐이 달 표면에 첫 발자국을 떼자 실제로 영화관에 계셨던 한 아저씨께서 참을 수 없다는 듯 탄식을 쏟아 내셨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피로감이 몰려왔던 나 역시 그들의 여정을 실제로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지쳐버렸다. 닐은 달의 거대한 분화구 앞에서 캐런이 생전에 하고 다니던 팔찌를 던져 보낸다.
영화 [퍼스트맨]은 우주를 묘사하는 sf물이 아니다. 그들의 무모했던 도전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인류가 처음 하늘을 꿈꿨을 때부터 소망하던 우주로의 여정이 단순히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으로만 남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닐은 캐런이 죽자 딸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마치 캐런을 생각하는 게 너무 아파서 그녀를 지워버린 것처럼. 우리도 닐처럼 때로 좋지 않았던 결과 때문에 그 과정 전부를 지워내려 노력하지는 않았을까? 닐이 달에 캐런의 팔찌를 두고 온 것은, 그녀를 말끔히 털어냈다는 것이 아니라 밤이면 언제나 찾아오는 달을 보며 캐런을 그리워하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결과에 연연해 과정을 죽이고, 외면하려는 과거의 닐에게도, 현재의 나에게도, 시간이 주는 힘은 망각이 아닌 그리움이나 아픔 앞에서 그것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