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생에 대한 편견과 사실
본인은 원래 미대 지망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긴 했으나, 손재주가 전혀 없어 미대 진학은 꿈도 꾸지 않았었다.
어느 정도냐면, 대학교 붙었다고 했을 때 친구가 '교수님이 쟤랑 캐치마인드를 해보고 뽑았어야 했는데...' 할 정도...
때문에, 소위 말하는 '예술하는 애들'이 있는 환경에 노출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고3. 실기가 없는 미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원했고, 결국은 이렇게 되었다.
집안도 예술 쪽과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주변에 그 흔하다는 예체능 준비하는 친구 하나도 없었다. 미대에 대한 갖은 편견과 허상만 갖고 있던 내가, 특히나 미대 색이 짙다는 학교에 오면서 느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나 빼고 다 돈이 많네?'였다.
여느 돈 많은 집 자제들과 다르게 동기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자연스레 드러내거나, 자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대화해보면 친구들의 가정환경을 추측할 수 있었다.
가령, 카페에서 클래식 음악이 나왔을 때 "어? 이거 우리 엄마가 나 맨날 등교할 때 틀어줬던 건데!" 이 한 마디로 그 집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이 갔다. 그리고 그에 공감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1960~70년대 세대가 클래식을 즐기고, 자녀를 앞장서서 미술관에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적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는 증거다. 친구들은 배려심 깊고, 자신들이 가진 것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왜' 미술을 좋아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혜택인지는 몰랐던 것 같다.
대학 입학 전까지 우리 학교 미대에 다녔다는 사람을 딱 2번 본 적 있다. 이들은 명성에 걸맞은 성격과 인성으로 '역시 거기 미대는...'라는 편견을 가중화 시켰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몇 명을 겪어보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또 정말 틀린 말도 아니고... 그렇다면 왜 미대에는 이상한 애들이 많을까? 진짜 이상한 걸까, 이상하게 보이는 걸까?
2-1. 고정관념이 사라진다.
일단, 인간 군상이 어느 사회보다 다양하다. 정말 작가 활동하고 싶어서 진학한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어쩌다 오게 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한데 섞이다 보니, 학교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미대생 같네'라고 생각할만한 모먼트를 느끼곤 했다.
어느 곳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특이한 인간들과 (잘)지내야 하기에, 일단 갖은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굉장히 관대해진다. 젠더 문제는 물론 성적 취향, 각종 기행(예술이라는 이름하의...) 등등 배우는 학문 자체가 그런 기행(?)들로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다보니...
2-2. 취향 존중!
미대에 진학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문화자본을 소비해 본 경험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미대생은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너도 나도 모두 다 자신의 취향이 소중하기 때문에 이를 침해하려는 발언은 일절 하지 않는다. 그 아무리 이상한 것이라고 해도..
내가 미대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긍정하기다. 나도 인간인지라 정말 생뚱맞은 얘기가 갑자기 훅 들어오면 당황할 때가 있다. 예로, 어떤 과 선배가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겠다 선언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미간이 의문으로 찌그러질 뻔했지만 "응, 그래? 무슨 실험하시나 보네."하고 답했던 내가 기억난다.
예술은 감성을 기반으로 한다. 예술을 통해 여러 가지 감정을 겪어본 사람은 남의 감정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별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과 상태를 모든 이가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에는 물론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이야기해보면 "너 그때 그것 때문에 엄청 기분 나빴잖아~" 식으로 '헐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 같은 점은 양날의 검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기분을 잘 알고, 그에 맞춰 행동해주고 적당한 말을 잘해주기 때문에 좋을 때는 누구보다 좋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상대의 심기를 건드릴 일도 많다. 본인이 조금이라도 무던한 사람이라면, 미대에 와서 자신의 성격을 필시 죽도록 탓하게 될 것이다.
내 사소한 말, 행동, 어투 때문에 누군가가 긴 시간 동안 상처 받는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다. 대범한 인간(공감능력이 없는 인간)이라면 "그냥 걔네가 너무 예민한 거지!" 하고 치우겠지만, 나도 그런 인간은 못 됐던 것 같다. 내가 말한 적도 없는 내 취향의 물건을 선물해주고, "그냥 가다가 너무 너 취향인 것 같아서 샀어!" 하는 따뜻함. 내가 미대에 안 왔더라면 이런 사소하지만 큰 기쁨이 여기서 온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반대로, 내 작은 행동이 남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어디 가서 미대라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TOP 2가 '너네 과에 남자애 몇 명이야?', '걔네 되게 여자애들이랑 잘 지내겠다.'였다.
난 살면서 이렇게 case by case가 잘 적용되는 사안을 본 적이 없다.
본인도 기본적으로, 미대 남학생들의 환경(80~90%가 여성)과 배우는 학문(페미니즘, 젠더학 등도 배우게 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그들의 가정환경을 따져봤을 때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내 학번대는 남녀 간의 교류가 전혀 없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구도였다. 반대로 다른 학번이나, 다른 과를 보면 블러셔의 코랄과 핑크의 차이를 논할 정도로 말이 잘 통하고 잘 지내더라.
같은 것을 배우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미대는 완전한 여성 상위 사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또 그 구조 안에서도 온갖 성희롱, 성추행, 단톡 방 사건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공대 경영대보다 그 비율이 현저히 낮기는 하다. 아마도...)
이상으로, 미술밖에 있던 문외한이 처음 미술계에 발을 들여놨을 때 깨졌던 편견을 중심으로 작성해보았다.
더 많은 편견들과 상황들이 있지만, 미술계는 대표적인 상황들만 떠올려도 머리가 아플 만큼 편견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내가 이곳에 오게 돼서 완전히 변하게 된 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상황들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