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슬기로운 직장생활
작년은 고난의 해였다. 누가 알까 그 고생을.
새로 입사한 상사는 내 고생에 보상을 주고 싶어 했다. 대표도 그에 동의했고, 난 '장'이 달린 직책을 받게 되었다. 올해 성과가 좋다면 팀'장'이 될 수 있는 '장'.
좋은 일일까. 처음엔 그냥 연봉도 오르고 직책 수당도 준다니, 그만한 보상을 받을 만하지 않았나. 이정도 연차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했다. 이제 내 연차 정도면 중간 관리자가 되긴 해야겠지, 했다.
그런데 막상 '장'을 달고 보니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직장 생활의 문이 열린 기분이다. 더 솔직히는 이걸 이 돈 받고 해야 한다니, 왜 다들 이걸 하고 싶어 하는 거지? (그건 내 착각이었다. 사실 정말 영리한 사람들은 '장'을 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단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나를 상사로 인정하도록 내 역량 관리도 신경 써야 하고, 팀에 방해가 될 정도로 일을 못하는 사람도 어떻게 해서든 자기 몫을 할 수 있도록 끌어야 한다. 솔지기 내가 왜 저 멍청이 때문에 이렇게 고민해야 하나 생각하면 울화통이 치민다. 정작 본인은 해맑게 '저 정도면 일 잘하죠.' 라며 퇴근하는 뒷모습을 보자면, 그가 해 놓은 빨간색 투성이의 문서와 대비되어 인류애가 사라진다.
장이 되고 내가 담당하는 직원들이 생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를 테면 보고서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업무 습관이 대강은 보인다. 놀랍게도 사실이다. 이 사람이 업무 지시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지시받은 그 정도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아니면 대강 이전 자료들을 복붙해서 크게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수준을 만들어 제출했는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훤히 보인다.
부하 직원들의 보고서를 보면서 가끔 내가 팀원이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어떤 팀원이었을까. 내 상사는 나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다른 본부에서 나를 부서 이동 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그 제안에 가고 싶어 쭈뼛대던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던 상사는 왜 나를 다른 부서로 보내지 않으려고 했을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플젝에 합류하지 못하게 한 그 상사를 오랫동안 원망했었다.
지금 나의 상사는 인연이 오래된 분이다. 전직장에서부터 나를 눈여겨 보고, 내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던 분이라 무척이나 따르고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다. 그분은 내게서 무엇을 본 걸까. 뭘 봤길래 다른 부서의 낯선 직원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그때 그녀는 내게 '언제든 궁금하거나, 업무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 이후로 10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는 나의 상사가 되었다.
이제는 일만 잘해서는 안 되고, 내 팀원들이 각자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 차원에서의 고민(이전에는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도 해야 한다. 무능력한데 뻔뻔한 팀원을 향한 울화통도 관리해야한다. 가끔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도 잘 추스려야 한다.
그렇게 죽어라 일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나는 이전에 내 상사가 그랬듯, 자신의 판단 착오를 팀원 탓으로 돌릴 만한 인성은 못되니 말이다.
직장은 계속해서 나에게 도전하라 말한다. 새로운 역량이 필요하다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태도와 생각이 필요하다가 말한다.
지금의 나는, 어떤 과제를 만났을까. 이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어떤 새로운 문을 열게 될까.
이 시간이 마지막 순간 내 인생에 어떤 가치를 가질까. 딱 그정도만 할 생각이다. 마지막 순간에 인생을 회상하거든, 그때 이 순간이 가지는 가치만큼만. 그 이상으로 나를 혹사하거나 괴롭히지 않을 생각이다. 내 인생이 이 시간에 부여한 가치만큼만 필요한 시간이다. 나는 지금 그 시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