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인 친구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하나 둘 숙소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웃는 얼굴로 누군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럼에도 친구들을 보니 매우 반가워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서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혼자 있었는지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눈빛에 피곤함 대신 편안함이, 말없는 미소 속에는 '각자가 필요한 시간을 잘 보냈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침묵을 깬 건 맛있는 냄새와 함께 온 인준의 목소리였다.
인준 : 다들 마침 모여있었네요. 저녁 준비해 뒀어요. 오늘 저녁 메뉴는 시골 밥상이에요.
영인 : 5첩 반상 이런 건가요?
인준 : 맞아요. 간단히 반찬이랑 밥 준비했는데, 보리밥 먹고 싶은 사람은 말해주세요. 보리밥으로 담아드릴게요.
서영 : 점심도 맛있게 먹었는데, 너무 궁금하다 들어가서 밥 먹자~~
송현 : 나도 맛있는 냄새 맡으니까 배가 더 허기지는 거 같아.
[저녁 시간]
눈앞에 펼쳐진 밥상에는 된장국과 여럿 반찬들이 놓여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거부감 없이 반찬들을 하트가 뿅뿅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분명히 저 반찬들은 맛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 반찬들 중에는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손주들 왔을 때 꺼내놓으시는 동그란 햄에 달걀을 묻혀 구운 햄 반찬도 있었다. 혹시 나물 반찬이 입에 맞지 않을까 봐 밥상에 올라오는 치트키 같은 그런 메뉴.
그 외에도 고사리, 묵은지, 우렁쌈장, 쌈채소, 달걀프라이, 콩나물 이렇게 적당한 간으로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양념 그리고 메인인 제육볶음이 있었다. 고기는 오겹살인지 껍데기 부분이 쫄깃해 보여서 네 친구들의 입이 떡 벌어져 곧 침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서영 : 나는 평상시에 쌀밥 많이 먹으니까 보리밥 먹어볼래.
서영을 따라 다른 친구들도 보리밥을 먹겠다고 인준에게 말했다.
부드럽게 윤이나는 보리밥.
정제되지 않은 듯 투박한 모양의 낟알들이 빛을 받아 은은한 황금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밥 안에는 흰 쌀알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영인 : 보리밥이라고 해서 보리만 들어있는 건 아니었나 봐. 쌀알도 같이 보이네.
인준 : 보리만 넣고 밥을 짓게 되면 식감이 거칠고 딱딱해지는 것을 완화하려고 흰 쌀이랑 같이 섞어 밥을 짓는 거예요. 밥을 더 부드럽고 먹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요.
송현 : 밸런스를 고려한 밥 짓기네~~
밥부터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어서 맛을 봤다. 보리 특유의 탱글 하면서 살짝 거친 질감이 전해졌다. 쌀밥처럼 찰지지는 않지만, 한 알 한 알이 제 존재감을 잃지 않은 채 고슬고슬하게 뭉쳐 있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은근한 단맛이 밀려왔다.
이때 제육볶음을 한입 크게 넣었다. 곡식이 주는 단맛과 양념이 적당한 제육볶음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다들 점심을 먹을 때와는 다르게, 조금씩 음미하며 먹었다. 음식 하나하나를 기억하려는 듯이.
먹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빠뜨린 듯 곱창김과 간장 양념을 가져다주었다.
아무런 조미가 되지 않은 불에 구운 김에 보리밥과 반찬을 올리고 간장 살짝 찍어 먹어보면 맛있다고 인준이 추천했다.
고소함에 얕은 짭조름함이 입에 쫙 퍼지면서 간장의 감칠맛이 올라온다.
반찬에 들어간 참기름도 코를 찌른다.
학교 다니며 일상을 보낼 때는 느끼지 못한 먹는 즐거움을 되찾은 것만 같다.
한 숟가락의 보리밥이 모든 맛과 기분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잊고 살던 '천천히 씹는 밥 한 숟갈의 여유'를 따뜻한 밥 한상에 진짜 느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었다.
네 친구들은 모든 음식에 감탄하며 인준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 후식으로 받은 수정과를 받아 앞마당 벤치에 앉아 캠프파이어가 준비되는 것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현 : 고깃집에서 밥 먹고 나온 거 같다. 수정과 마시니까
서영 : 그렇게 들으니까 캠프 아닌 거 같다.
현서 : 나는 먹으면서 되게 행복하더라. 이런 맛이 있구나. 새로운 맛은 아니었지만 내 기분이 위로가 되는 맛이라고나 할까. 할머니 밥상 같기도 하고
영인 : 할머니 밥상 그거 공감. 하나하나 반찬들이 손주들을 위한 반찬 같잖아. 그리고 양도 많고 '많이 먹고 가 아가' 이러시는 것처럼
현서 : 그래서 내일 여길 떠나 돌아가면 이 밥들이 많이 생각날 것 같아.
송현 : 완전~!! 생각날 거 같아.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이야기하면 다 부러워할 듯
서영 : 우리끼리 여행 같다는 것만 말해도 부러워 할거 같은데ㅋㅋㅋ
영인 : 리마인드 웨딩처럼 우리도 우리 추억에 감성 추가를 위해 몇 년 후에 또 오고 싶을 거 같아.
송현 : 그거 좋은 생각이다. 다음에 다 같이 또 오자. 그땐 우리가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겠지?
대학생이라는 단어에 모두들 소리 없는 웃음을 내비치며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말을 아꼈다.
그 침묵 속에는 서로 함께 미래를 바라보는 따뜻한 연대감도 함께 담겨 있었다.
현서 : 그때까지 우린 어떻게 변해 있을까?
모두가 대답 대신 지금 이 순간의 평온함을 더 깊이 새기려는 듯했다.
그리고 벤치 앞에 완성된 캠프파이어와 하늘에 떨어질듯한 별들을 보며 여름 저녁의 끝자락, 캠프의 추억은 천천히 마음속에 자리 잡아 불확실한 미래에도, 이 따스한 '느림'의 순간이 그들 곁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