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by 그리다

[영인의 시간]


숙소 앞 의자에 앉아 영인은 가방에서 꺼내온 영단어책과 수학 문제집을 꺼냈다.

시원한 바람과 나무 그늘 아래 친구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러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하지만 영인은 머릿속을 한 층 더 집중시켰다.


'여기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결국 이거라는 걸까'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문제집을 펼쳤다. 복잡한 함수, 미분방정식, 그리고 증명 문제들이 펼쳐졌다.


누군가는 산과 나무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지만, 영인은 수학 공식과 풀이 과정에 몰입하는 것이 자신만의 '느림'이라고 여겼다. 문제 하나하나를 주관적으로 바라보며 어디를 어떻게 풀어야 이 문제를 정복할 수 있을지 걱정과 풀었을 때의 쾌감이 동시에 몰려와 도파민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공식을 따라가며, 답이 맞는지 한 줄 한 줄 검산을 했다.

밖에서 새가 지저귀고,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있지만, 영인이의 세상은 방정식과 그래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문제풀이 사이사이, 숲의 공기와 잔잔한 자연의 소리가 영인을 조금씩 풀어주고 있었다.

'아무리 공식 속에 파묻혀도, 이곳의 고요함은 나를 조용히 다독여 주는구나.'


영인은 천천히 문제집 사이에 노트를 끼워 놓고, 산과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느림과 나만의 집중이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을 더 다져줄 거야.'

마음 한편에서 확인과 평온이 스며들었다.




[서영의 시간]


서영이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계속 생각해 보지만, 돌아오는 건 멍한 머리 속이었다. 혼자서 목적 없이 있었던 적도 없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찾아본 적이 없어서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막막했다. 가장 만만한 게 누워있는 것과 산책하는 것이었는데, 누워있는 건 잔다고 한 송현이가 있어서 나는 선택지 중에 남은 산책을 선택했다. 영인이와 손을 흔들며 '다녀올게.'한마디를 건네고 숙소를 나왔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온통 물과 풀과 나무들 뿐이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눈으로 푸르른 것들을 담아낼 뿐이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꽂고, 플레이 리스트에서 들을 노래를 골랐다.

서영이의 플리에는 온통 가사 없는 노래들 투성이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게 습관인데, 가사가 있으면 따라 부르느라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최신곡이며 인기 있다는 노래들도 들어보지 않았다.


공부할 때 듣기 좋은 피아노곡 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그냥 수능 금지곡을 들어볼까? 지금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히 자신의 플리를 지우고, 이번 주 탑백으로 플리를 채웠다. 그래도 수능 금지곡을 들었다가 징크스 생기면 안 되니까라고 핑계를 대본다.


'두둥두둥 위이이이위이이이'

노래들이 EDM으로 가득한 시작을 하며 귀에 엄청난 자극이 오는 것만 같다.


"이건 아니야."

그러다 유튜브로 알게 된 이무진의 '과제곡'이라는 노래를 알고리즘에서 보게 되었다.

[과제곡 - 이무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은 네모상자 안에서 그의 모습은 매우 행복해 보였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자신으로 꽉꽉 채우진 모습이었다. 서영이에게 그는 매우 단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부러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은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저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워너비 캐릭터라고 할까?


서영이는 영상에 푹 빠져서 계속 몇 번이고 영상을 되감기 해서 봤다. 다 들으면 앞으로 또 앞으로.

한 자리에 서서 영상만 계속 봤다. 산책이 아니라 서서 영상 보기였던 것.


과제가 아무리 많아도 다 해결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아직도 최선을 다 한 것 같지는 않다.

산책이 영상 보기로 변질된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 주는 이 하루가 잠깐의 일탈감을 줘서 돌아가면 헤어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직진하며 '아무 생각 없이 못했던 일탈을 다 해보고 집에 돌아가리라' 다짐하며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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