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울컥하고 치미는 감정이 수시로 잇따르지만, 눈물이 흐른 건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다. ‘사랑’을 얘기하면서다. 내가 누군가의 아내고, 가족이기 때문에 더 와 닿은 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니까. 단지 전쟁에서는 어떠한 기약도 미래도 함께 꿈꿀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랑을 택한 사람들에 공감한 탓이다.
“우리의 사랑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어요. 오직 오늘만 할 수 있는 사랑이었죠.”
“지금은 사랑하지만 일 분 후에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쟁터에서는 모든 게 너무도 빨리 일어났어요. 삶도 죽음도. 겨우 몇 년 사이에 우리는 그곳에서 인생 전체를 산 셈이에요. 그곳에선 시간이 다르게 흐르죠.” (437p)
“전쟁터에 나가본 사람이면 하루를 떨어져 지내는 게 어떤 의미인지알 거예요. 기껏해야 하루인데도…” (523p)
‘사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사랑’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전쟁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고, 어느 하나 똑같지 않다.
“사랑은 전쟁터에서 사람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개인적인 사건이다. 사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공동의 사건들일뿐. 죽음까지도.” (409p)
작가는 여성 참전 병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죽음보다 사랑에 더 솔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은 사랑에 더 솔직할까? 그들은 실제로 전쟁 당시 사랑에 대한 기억을 구체적으로 표현했고, 여전히 그때의 감정을 붙잡고 있었다. 그들이 사랑한 사람 중 상당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하지만 사랑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지금도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으며,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 아닐까. 죽음은 과거형이지만, 사랑은 현재형이니까.
“나는 남편 만날 날을 기다려요. 만나면 낮이고 밤이고 남편한테 이야기할 거예요. 남편한테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내 이야기 들어주는 거 말고는. 남편도 그곳(하늘나라)에서 많이 늙었겠지요. 나처럼.” (480p)
전쟁에서 승리 후 그들은 생명과 함께 일상의 삶을 되찾았으나, 현실은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행복이 펼쳐질 줄 알았던 사람들.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지리라 기대했던 이들은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평생 사무치게 느꼈다. 전쟁에 참전한 여성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버린 배신자에 전쟁터에서 수많은 남자와 즐기다 돌아온 더러운 여자 취급을 당했다. 전쟁터에서 함께 생사를 가르며 싸웠던 남자 병사들은 전쟁 후 태도를 바꿨고 그들이 중요한 역사의 기록에서 소외되는데 일조했다.
악몽과 함께 찾아온 외롭고 긴 인생길.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가장 빛났던 젊은 시절. 전쟁터에서 지켜낸 ‘사랑’을 회상하며 위안을 얻는다. 작가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길이라고 고백한다.
“길은 오직 하나.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279p)
중요한 역사의 기록에서 제외되기 일쑤인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이해하고 상황을 공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전쟁으로 얼룩진 그들의 인생 가운데 펼쳐진 사랑의 의미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면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의 글에 매료됐다. 실화가 가지는 힘과 소설 같은 구성이 이끄는 강렬함에 사로 잡혔다. 그녀의 다른 책도 봐야겠다!
어제는 전쟁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그들처럼 전쟁에 뛰어드는 대신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책을 읽으며 수없이 '나였다면...'하고 생각해봤지만, 역시 난 나대로 선택하지 않을까. 마지막 장을 덮고서 서둘러 그녀의 다른 저서를 찾는다. 이번에는 <체르노빌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