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양연화 특별판” 후기
*주의사항*
해당 글은 영화 “화양연화 특별판”의 쿠키영상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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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화양연화 특별판”에는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이후 공개되는 9분짜리 쿠키영상이 존재한다.
쿠키치고는 꽤 긴 분량이라 나 또한 기대를 가지고 끝까지 관람했는데, 뚜껑을 따 보니 본편과의 연관성에 대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봤을 땐 군더더기라고 생각했지만, 감독이 이 장면을 굳이 넣은 이유가 무엇일지를 탐구하다 보니 갑자기 영화 속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지나간 세월은 먼지 쌓인 유리창처럼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기에, 그는 여전히 지난 세월을 그리워한다.
만약 그가 먼지 쌓인 유리창을 깰 수 있다면,
지나간 세월의 그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화양연화의 사랑은 처음부터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고,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질 것 같은 상태.
해당 쿠키영상은 본편의 연장이 아니다.
오히려 본편에서 끝내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에 가깝다.
본편에서 주모운과 소려진은 끝까지 선을 넘지 않는다.
충분히 넘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저 사람들(불륜을 저지른 자신의 배우자)처럼 되지 않겠다는 의지에 가까웠다.
쿠키 속 세계에는 그런 규율이 보이지 않는다.
이름이 없고, 직업과 시대가 틀어졌다.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 있다.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아마 이 감정에 닿지 않았을까?
본편에서의 감정은 끝내 실체가 없었다.
함께하는 장면은 그림자, 거울에 비친 모습,
구조물에 반쯤 가린 모습 등으로 애매하게 표현된다.
존재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모습으로 봉인됐다.
그런데, 쿠키영상에서는 감정이 행동으로 변화한다.
입맞춤이라는 분명한 행동으로 나타나고,
이유 또한 뚜렷하다.
더러워진 입 주변을 깨끗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러나 그 행위는 결코 깨끗해지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입술을 닦아주겠다는 명분으로 입을 맞추는 순간,
둘은 같은 상태가 된다.
더러움을 없애는 대신, 더러움 안으로 함께 들어간다.
본편에서 그들이 끝까지 피하려 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렇게 같은 종류의 사람이 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같은 자리에 서 버린 순간, 설명은 의미를 잃는다.
사랑이라면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 그랬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말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같은 자리에 서 버린 이들에게는 행위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의미를 만들기 전, 행동이 먼저 일어났기 때문이다.
본편의 주모운은 먼지 쌓인 유리창 너머로 세월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에게 먼지는 과거를 만질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이지만, 그와 동시에 시간을 그대로 보존해 주는 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닦지 않는 쪽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쿠키 속 그는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닦아내고, 투명하게 만드는 쪽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과거를 흐릿하게 남기기보다
현재를 분명히 보는 쪽에 가깝다.
유리창을 닦으면 잘 보이겠지만,
그 너머를 그리워할 여지는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특별판의 입맞춤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다.
절제의 결과가 아닌, 절제를 포기한 뒤 남은 잔해에 가깝다.
여기서의 비절제는 파국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더 이상 의미를 붙잡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대신, 그저 행동으로 옮긴다.
본편의 사랑이 깊은 여운을 주는 이유는 끝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컸지만, 끝내 서로를 건드리지 않았다.
반대로 쿠키영상의 사랑은 빠르게 작동한다.
의미를 묻기 전에 행동이 끝나고, 그 순간 감정은 멈춘다.
감독은 두 사랑 중 어떤 것이 옳은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한쪽은 끝까지 손대지 않아 남았고,
다른 한쪽은 손을 대는 순간 더 이상 남을 필요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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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양연화 특별편(감독 왕가위,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