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 후기
*주의사항*
해당 글은 영화 “해피 투게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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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있는 거 아무거나 말해 봐.
슬픈 일도 괜찮아.
세상 끝에 묻어 버리고 올게.
이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조건이 붙어 있다.
그건 바로, “여기서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닿지 않아도 되는 말,
되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고백.
아휘는 그런 것들을 택한다.
등대가 있다는데, 실연당한 사람들이 많이 간대.
슬픈 기억을 다 버리고 오려고.
등대는 세상의 끝에 있다.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 세워진 게 아니라,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을 전제로 존재한다.
아휘는 관계를 끝내지 않는다. 대신, 관리한다.
관계를 끝내지 않고, 감정을 관리하며 망가짐을 늦춘다.
그래서, 떠나는 걸 막는다.
여권을 숨기고, 담배를 쌓는다.
가지 말라는 말 대신 행동으로 관계를 고정시킨다.
보영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완전히 떠나지도 않는다.
다친 상태에서 아휘를 찾는 건 사랑의 증명이라기보다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을 붙잡기 위한 선택이다.
아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가 떠났다는 현실을 잠시 무효로 만든다.
이 관계가 더욱 유독했던 건, 서로 다른 방식의 불안이 맞물리며 이미 끝난 관계를 살아 있는 것처럼 유지했기 때문이다.
보영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빨리 낫지 않기를 바랐다.
아픈 그와 있을 때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아픈 보영과 함께할 때, 역설적이게도 아휘는 가장 행복했다.
누군가의 아픔이 안도가 되는 순간,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간병”이라는 이름의 구속으로 변질된다.
아휘는 그가 영원히 자신의 좁은 방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나아야만 하는 연인을 낫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돌보는 것. 이보다 더 유독한 연명이 있을까.
아휘의 미련은 사실 보영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없는 풍경 속에 혼자 서 있어야 할 자신을 향한 불안이었다.
그 불안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그는 보영의 여권을 숨기고, 스스로 관계의 관리인이 되는 길을 택한다.
길을 잃고 한동안 헤맸지만,
드디어 이과수 폭포에 도착했다. 왠지 슬펐다.
왜냐하면 줄곧, 이곳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불안과, 불안을 통해 연명된 관계의 끝에서 아휘는 비로소 혼자 이과수 폭포에 닿았다.
함께 오리라 믿었던 장소에 혼자 도착했을 때서야, 그는 알게 되었다.
이 여행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끝난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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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투게더(감독 왕가위,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