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삶과 죽음, 그 경계에 대하여
*주의사항*
해당 글은 “신시컴퍼니 연극 햄릿”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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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이쇼의 전언으로, 새벽 성벽에서 선왕의 혼령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들은 햄릿은 그날 밤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멈춰라! 너는 선한 혼령인가, 저주받은 악귀인가! 그대에게서 불어오는 이 바람은 천상의 미풍인가, 지옥의 도끼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너는 내 아버지의 모습으로 내게 왔으니,
난 네게 말을 걸겠다.
나는, 너를 이렇게 부르겠다.
덴마크의 왕, 햄릿! 내, 아버지!!
햄릿이 선왕의 혼령으로 추측되는 무언가를 좇아가려 할 때, 모두가 정체 모를 혼령이 그를 홀려 낭떠러지나 바닷속으로 밀어 넣으면 어쩌냐며 만류한다.
왜, 두려운 게 뭐냐. 목숨이야 본디 부질없으니 죽어도 그만이고, 내 영혼은 불멸이니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다.
육신은 필멸이나, 영혼만은 불멸이라는 선언은 믿음보다 생존을 위한 기제에 가깝다.
육체가 아닌 불멸의 영혼을 붙잡음으로써,
햄릿은 무너져 가는 자신을 간신히 지탱한다.
그러나, 햄릿의 영혼은 선왕의 영혼과 마주한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의 육신은 멀쩡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파괴되어 버렸다.
일어나! 이 밤을 떠도는 나는 네 아비의 넋이니,
네가 날 사랑한다면, 단 한순간이라도 햄릿!
네가 날 사랑한 적이 있다면 들어라, 들어라!
이제 곧 낮이 찾아오면, 영원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생전의 죄업을 태워야 한다.
햄릿, 들어라, 햄릿!
선왕이 낮잠에 빠진 사이, 클로디어스는 조용히 다가가 그의 귀에 극독을 쏟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참회할 시간조차 없어,
그는 자기 죄를 씻을 새도 없이 연옥 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선왕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이 복수가 네 마음을 좀먹도록 두지는 말라고.
그의 유언은 모순 그 자체다.
복수의 본질은 결국 파괴다.
살인을 종용하면서 영혼의 안녕을 바라는 아비의 명령은, 햄릿의 마음속에 이중적 폭력을 심는다.
결국, 선왕 또한 완전무결한 선인이라 볼 수 없다.
안녕, 안녕. 나를 잊지 마라!
그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작별 인사이자,
고통 속 절규였다.
선왕의 혼령을 만난 후, 햄릿은 고뇌에 빠진다.
아버지는 끔찍하게 살해당했고,
악당은 멀거니 눈을 뜨고 있는데,
이 쓸개 빠진 놈. 간이 콩알만 한 겁쟁이.
누가 내 수염을 잡아 뜯고, 내 코를 비틀고
새빨간 거짓말쟁이라 침을 뱉어도 난 할 말이 없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살해한 자와 재혼했고,
나는 그 현실 앞에서 무력했다.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복수해야 한다.
그러나 복수는 또 다른 살인이다.
숙부를 죽이는 순간, 나는 그와 같은 존재가 된다.
혈육이자 살인자 — 새아버지이자 원수.
이 모순 속에서 햄릿의 자기혐오는 점점 자신을 잠식한다.
그러하다면 이제 나는 누구인가.
산 자도 햄릿이요, 죽은 자도 햄릿.
죽은 햄릿이 일어나고 산 햄릿이 지워졌다.
죽은 햄릿이, 산 햄릿 속에 들어앉았다!
이 극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듯,
죽은 자의 영혼은 무대 위에 다시 일어서 퇴장한다.
때로는 산 자가 그들과 함께 떠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랑 극단의 배우들은 말한다.
이제, 산 자는 잠에 들고, 죽은 자, 눈을 뜨는 때.
그리고, 그들은 산 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죽은 선왕의 영혼을 본다.
거기 누구냐! 대답해, 모습을 드러내라!
오오, 너는 서럽구나. 너는 노엽구나.
너는 끔찍하구나! 지옥 같은 한숨이다.
산 자가 깊은 잠에 빠진 밤, 죽은 자의 시간이 열린다.
눈을 뜬 영혼을 누군가는 바라보고, 그들을 발견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렇게 시간을 공유할 때,
그 차이는 무엇일까?
연극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리며, 관객에게 묻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묵묵히 참고 견딜 것인가,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밀려오는 고해의 파도에 맞서 결연히 싸우다 쓰러질 것인가. 어느 쪽이 더 고귀한가.
극에서는 죽는다는 것을 영원한 잠에 드는 것이라 표현한다.
죽음, 그래. 죽는다는 것은 영원히 침묵하는 것.
그런 관점으로 보았을 때 죽음은 잠드는 것과 비슷하다 볼 수 있겠다.
알 수가 없구나, 사람의 마음이여.
알 수 없는 세상을 잘도 살면서,
알 수도 없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으로 이 알 수 없는 세상을 견디는구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이 연극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흐릿하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혼이 일어나 퇴장하며,
때로는 산 자와 함께 무대 위를 떠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과 미지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하나다.
연출자가 묻는 것은 단순히 ‘삶이냐, 죽음이냐’가 아니다. 중요한 건 죽음이 아니라, 죽음이 오기 전의 현재, 살아 있는 시간이다.
먼바다를 떠도는 텅 빈 영혼이여,
다시 한번 그 목소리를 기억하라.
파도도 씻어내지 못할 그 피를,
바람도 지우지 못할 그 피비린내를
가슴 가득 머금어라.
일어서라, 움직여라! 돌아가야 한다.
햄릿은 이를 깨닫게 되면서 삶과 죽음,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못하던 상태를 벗어났다.
마침내 삶을 회복했다기보다,
삶과 죽음이 얽힌 이 구조 속에서 움직이기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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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출처표기는 마지막 글에 할 예정)
• 연극 햄릿(신시컴퍼니, 2024)
2년 전, 너무 좋아서 두 번이나 관람했던 연극 〈햄릿〉을 보고 쓴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당시에는 네 장으로 나누어 썼던 글을 하나의 글로 묶어 두었다.
이번에는 그 글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도려낸 뒤, 네 개의 부로 나누어 차례로 업로드하려 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며,
끝내 비극 속으로 스러진 햄릿의 여정에 함께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