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욕망에 정직한 두 얼굴
*주의사항*
해당 글은 “신시컴퍼니 연극 햄릿”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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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 연극을 보다 보면 이 둘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이들은 선악이 아니라, 욕망에 정직하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거트루드는 도덕적 평판보다 왕비라는 지위를 지속하려는 본능에 충실했다. 재혼은 그녀에게 선택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욕망의 결과였다.
그러나 곧 거트루드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트루드의 재혼으로 그녀의 아들 햄릿이 미쳐버렸다.
영민하고 섬세하던 왕자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독배를 대신 마심으로써 아들의 죽음을 지연시켰고, 그 대가로 제 목숨을 내놓았다.
끝까지 본능에 충실했던 삶의 역설적인 결말이었다.
그렇다면, 클로디어스는 어떠한가.
형을 독살한다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통해 왕위와 왕비, 이 모든 것을 얻었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이 그를 시험하기 위해 꾸민 연극을 본 후, 홀로 자신의 죄를 한탄하며 제 행위를 카인과 아벨에 비유한다.
아, 나의 죄여. 온 천지에 악취가 진동하는구나.
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처럼, 나는 피를 나눈
내 형을 죽였다. 저주받은 이 두 손으로.
하늘이여, 내게 빗물을 내려다오.
피에 물든 이 두 손을 눈처럼 하얗게 씻어 다오. 나에게 자비를, 부디 용서를.
카인처럼, 클로디어스는 왕위와 왕비, 이 모든 것을 가진 형을 시기해 그 자리를 빼앗고자 그를 죽였다.
그는 죄의 열매를 손에 쥔 채, 용서를 구하는 모순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가증스럽구나, 죄의 열매인 이 왕관을, 왕비를, 불같은 야심을 고스란히 손에 쥔 채 자비를 바라다니, 용서를 구하다니. 하지만 어쩌란 말이냐?
그것 없인, 그것 없이는, 난 살 수가 없다!
악마가 있다면 그의 가슴은 눈처럼 새하얗겠지.
죄책감 따위는 그에게 없을 테니까!
오, 차라리 내가 악마였다면!
허나, 나는 덧없는 인간. 내 가슴은 죽음처럼 검구나.
클로디어스의 비극은 그가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느끼는 “인간”으로 남아 있다는 데 있다.
죄책감과 야망 사이의 고통스러운 분열이 그를 가장 현실적인 악인으로 만든다.
죽음, 그래. 왕관도, 왕비도, 야심도 아니다.
이 죄의 대가는 죽음!
허나, 나는 인간이다. 나는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언젠가는 거꾸러질 목숨,
그때까지는 기를 쓰고 살아야겠다!
돌이킬 수 없다면 멈추지도 않겠다.
이토록 냉철한 자기 객관화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는 냉철하게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공포의 근원을 알고 있다.
신은 악마를 사랑하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세상이 이토록 악으로 넘쳐날 리가 없지.
자비와 용서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죄지은 자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참회와 기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 올가미에 걸린 채 방황하는 내 영혼이여,
녹슨 강철 같은 심장이여, 삐걱이는 무릎이여!
이제, 잠시 멈추어 기도하라. 구하라.
그의 자기 합리화는 여기서 완성된다.
클로디어스는 파렴치한 악인이 아니라, 지독히도 현실적인 악인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엇보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클로디어스는 기를 쓰고 살기로 했다.
이미 멈출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모든 인간이 죄를 짓고,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신의 역할이라 믿으며, 죄책감을 덜어낸다.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 이 둘은 모두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본인이 했던 선택에 대해서도 제각각의 결론을 내렸다.
거트루드가 모성이라는 본능으로 아들의 죽음을 지연시켰다면, 클로디어스는 생존이라는 본능으로 타인의 죽음을 설계했다.
햄릿의 등장인물은 제 욕망에 충실하다.
복수심, 권력욕, 야망…
햄릿 속에 일차원적인 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모순된 채 살아가는 인간일 뿐이다.
극은 모순되거나, 혹은 참회하는 인간들의 고뇌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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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출처표기는 마지막 글에 할 예정)
• 신시컴퍼니 연극 햄릿(2024)
처음 읽을 때 클로디어스는 악당이었고,
다시 읽을 때 그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 무서운 악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