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

책임의 두 가지 방법

by dilettante

*주의사항*
해당 글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

백성을 두루 살피어 곤궁치 않게 하는 것은 왕의 몫이지만, 마을을 건사하는 것은 촌장의 몫이다.

잘 들어. 마을의 생사가 달린 일이야, 그렇지?
금맥이 왔다, 금맥! 웃어, 웃어!

그래서 그는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인 인간이다.
계산속도 빠르고, 때로는 비굴해 보일 정도로 권력 앞에 납작 엎드린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건 긴 수염의 고관대작도, 형조판서도 아닌 노산군 이홍위.

당나귀를 데려올 인맥도,
아들을 입신양명시켜 줄 연줄도 없는
내가 와 실망하였겠구나?

그런 그에게 이홍위의 존재는 퍽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저밖에 몰라 죽으려고 하는 철없는 소년일 뿐.

지난밤, 나으리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드시는 걸 보고 가려고…

그러나 이홍위가 호랑이를 잡아 모두를 구한 순간,
엄흥도는 더 이상 그를 예전처럼 볼 수 없게 됐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글을 가르치며, 이홍위는 점점 사람들 곁에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왕의 자리라는 높은 곳에서 내려온 바로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진짜 왕이 된다.

왜 혼자 짊어지십니까…

절체절명의 순간, 이홍위는 엄흥도를 살리기 위해 버린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짊어지고 떠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엄흥도는 관아 앞에 멍석을 깔고 꿇어앉음으로써 그와 함께했다.
그건 보수주인의 일도, 촌장의 일도 아니었다.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그대는…아닌가?

이홍위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 엄흥도가 포함되었듯, 엄흥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의리도, 충성도, 대의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소중해졌을 뿐.


아들 “태산”을 위해 비굴을 마다치 않던 현실은,

또 다른 산인 노산” 앞에서 전례 없는 단호함으로 치환된다.

생존의 무게가 존엄의 무게로 옮겨간 순간이다.

전하. 보수주인 엄흥도입니다.
… 갑니다. 강가에 다 와 갑니다…

엄흥도는 제 손으로 이홍위를 보내주는 순간, 그를 전하라 부른다.
처음 청령포에 오던 날 강을 건너 배소로 안내해 줬듯,
그는 이홍위가 마지막 강을 건너는 것을 돕는다.

차갑지요? 나갑시다…따뜻한 데로 갑시다…

그는 물었었다. 왜 혼자 모든 걸 짊어지느냐고.
그리고 그 질문에, 끝까지 남음으로써 답했다.


책임의 방식은 혼자 짊어지는 것과 곁에 남는 것으로 나뉜다.

결국 이홍위와 엄흥도는 “책임”이라는 윤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현했을 뿐,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이다.
——————————————————————————————————————————————

참고 자료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 2026)


이홍위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끝을 스스로 결정했고,

그 끝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를 찾았다.

그리고, 엄흥도는 그 끝을 단정히 받아들인다.


처음 이홍위가 청령포에 왔던 그날처럼,

고요히 그 곁을 지켰다.

매거진의 이전글지키기 위해 떠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