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기 위해 떠나는 길

끝까지 지키는 힘

by dilettante

*스포일러 주의*
해당 글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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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노산의 눈이 달라졌어.
힘없고 병약하던 노산의 눈이
이곳에 와서 범의 눈이 됐다.

이마는 생각의 자리이자, 결단이 시작되는 곳이다.
주체가 태어나는 문턱이기도 하다.

한명회의 화살이 인간의 의지를 죽이는 것이라면,
이홍위의 화살은 인간에게 가해지던 폭력을 멈추기 위해 날아간다.
그가 범의 이마를 쏜 순간은, 그가 왕이었을 때조차 끝내 하지 못했던 일을 왕이 아닌 몸으로 처음 행한 순간이다.

네 이놈!! 네 상대는 나다!

그래서 이 장면의 이홍위는 더 이상 힘없고 병약한 선왕이 아니다.
그는 마침내 범의 눈을 가진 인간이 된다.

그 순간, 이홍위를 바라본 한명회는 더 이상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그저 제거 대상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한명회는 이홍위란 인물의 주체가 탄생한 순간을 목격했다.
권력은 계산 가능하지만, 주체는 계산되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 이홍위는 정치적 대상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가 된다.

이홍위와 엄흥도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한다.
한 사람은 왕이었고, 한 사람은 그 왕의 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다.
시작도 다르고, 걸어온 방향도 다르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는 길은 결국 하나로 겹쳐진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을 아느냐?

이홍위는 생애 처음으로 제 의지대로 선택한다.
숙부인 금성대군의 거사에 함께하기로 한 것.
그리고, 그 책임까지 올곧이 혼자 감내하려 한다.

자기 곁에 남은 사람들,
그리고 끝내 놓지 못한 작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길이다.

저들의 손에 죽고 싶지 않다.
저들이 내린 사약에 죽는 건… 죽기보다 싫다.
부디 그대 손으로 강을 건너게 해 달라.

이홍위의 자결은 도피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더 이상의 희생을 끊는다.
자신 때문에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런 이홍위를 장사 지낸 엄흥도의 선택 또한 다르지 않다.
이홍위가 죽음으로 책임을 마쳤다면,
엄흥도는 삶으로 그 책임을 감당한다.

권력은 승자를 기록하지만,

역사는 선택한 자의 눈빛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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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 2026)


영화를 보는 내내 울음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다.
눈앞에서 펼쳐진 감정의 홍수에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영화관을 나서는 내내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세상을 지키려 한 이들의 결기.
그 결기는 잔혹한 시대 안에서조차 이상하리만치 깨끗했다.

이 이야기는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두 인물 사이에 흐르던 무언의 정서적 공명이,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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