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의 휴일” 후기
*스포일러 주의*
해당 글은 영화 “로마의 휴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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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나름대로 모두 잊을 수 없지만, 어렵게 정하자면… 로마입니다. 단연코 로마입니다.
살아있는 한 이곳의 방문을 생각하며,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겠어요.
어떤 기억은 기록되는 순간보다 기록되지 않기로 선택될 때 더 오래 남는다.
왕녀 앤과 기자 조.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일상과 의무 속에서 잠시 벗어난 일탈을 통해 하루를 공유한다.
하루 동안 흘러간 그들의 이야기는 비록 시작이 거짓과 속임수로 얼룩져 있었지만, 결국 감정은 진짜가 된다.
조는 처음엔 단순히 기사를 위해 앤을 이용하려 했지만, 점차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에 매료된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특종을 얻는 기자’가 아니라, 책임과 배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앤 또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누리는 자유로움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머리를 자르고, 짧아진 머리카락이 목 뒤를 간질이는 낯선 감각에 괜히 목을 만지며, 조와 함께 미소 짓는 모든 순간들.
그녀에게는 처음이자 특별한 경험이었다.
제가 저 코너를 돌면, 당신은 차를 타고 떠나세요.
날 지켜보지 마세요.
앤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등 떠밀린 복귀가 아니다.
로마의 거리에서 온전한 자유를 만끽한 후에야,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짊어진 의무라는 감옥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주체적 힘을 얻었다.
이제 그녀에게 궁전은 갇히는 곳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여 감당하는 자리가 된다.
앤이 떠난 순간, 조의 마음속에서는 하루 동안의 감정이 천천히 되살아났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창문 너머 먼 곳만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
세상에 내보낼 특종은 이미 손에 쥐었지만, 펜은 손끝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젠 좋은 건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쓸 얘기 없어요.
그는 결국 단 한 줄의 기사도 쓰지 않는다.
기록함으로써 사건을 박제하는 기자의 숙명을 버리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기사보다 더 선명한 진실이 그의 안에 남았다.
아메리칸 뉴스 서비스의 조 브래들리입니다.
만나서 기뻐요, 브래들리 씨.
그녀가 돌아간 다음날 오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과 함께 서로를 마주한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뒤, 마치 하루가 꿈처럼 지나간 듯 제자리로 돌아간다.
비록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때로는 단 하루의 만남, 단 한 번의 경험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울림을 주기도 한다.
비록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고, 현실은 그 순간을 품을 수 없더라도, 그 짧은 순간은 영원처럼 기억 속에 남는다.
결국 앤과 조가 만든 하루는, 각자의 삶에 조용히 남은 흔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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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마의 휴일(감독 윌리엄 와일러, 1955)
지난여름 재개봉 때 처음 봤던 “로마의 휴일”에 대해 쓴 글을 다시 고쳤다.
이 영화가 왜 그토록 오래 남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서.
함께하지 않았기에 사라지지 않은 하루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