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무대

내리지 못한 막과 사라진 이름

by dilettante

*주의사항*

해당 글은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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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번 같은 문장 앞에 선다.

태어남은 선언이 아니라 학습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 문장 앞에서 망설이지도, 틀리지도 않았다.

그것이 첫 깨짐의 순간이었다.

‘데이’는 사라지고, 무대가 허락하는 이름만 남는다.

나는 본디 계집으로 사내도 아닌데…

옳게 말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자기’일 수 없다.

그것은 배반이 아니라, 학습된 파괴였다.


격변의 시대다. 권력자가 바뀌고, 국가를 지탱하는 사상이 변화한다.

누군가는 시대에 적응해 살아가고, 누군가는 적응에 실패한 채 사라진다.


샬로와 데이, 두 사람의 삶은 평생 경극에 얼룩져 있었다.

경극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비단 데이뿐만이 아니다.


샬로는 정치와 시대라는 가변하는 무대 위에 선 배우였고,

변화하는 무대에 맞춰 지금 필요한 연기를 했다.

그래서 살아남았지만, 경극과 현실 그 어딘가에 발을 걸친 채 부유(浮遊)했다.

경극도, 현실도 모두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가면을 쓰는 법을 배웠다.


그에게 경극의 분장은 지울 수 있는 화장이었으나,

데이에게 그것은 벗기려 하면 함께 찢겨 나가는 피부였다.

샬로의 유연함은 생존의 기술이었으나,

그가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에 반해, 데이는 무슨 일이 오든 변화하지 않았다.

그는 적응하지 않았다기보다 이미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린 배역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사람이다.

우희는 역할이 아니라 ‘정체성’이 되었고, 노래는 연기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 되었다.


그래서 데이는 시대를 무시한 게 아니라,

이를 인식할 수 없을 만큼 한 인물로 고정돼 버린 상태였다.

저항도, 계산도 아닌, 존재 그 자체였다.


샬로는 연기를 바꾸며 살아남았고,

데이는 연기를 바꾸지 못해 끝까지 무대에 남았다.


데이는 샬로를 사랑하지만, 샬로는 데이를 ‘무대 위 우희’로만 사랑했다.

그랬기에 데이는 샬로에게도, 관객에게도 끝없이 연기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무대는 끝나지 않는다. 관객이 있는 한.


결국, 데이가 도달한 죽음은 탈출이 아니라 예정된 마지막 공연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무대 위에 남는다.

내려오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희의 화장 아래 데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예술은 개인의 삶을 가린다.

그리고 그 가려진 자리에는, 다시 개인이 돌아올 수 없다.

데이가 치른 대가는 단순히 시간이나 노력이 아니라,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었다.

네가 그랬잖아. 경극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살아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역할과 함께 사라지는 것.

그 순간, 경극이란 ‘끝나지 않는 무대’는 비로소 완성된다.

언제나 경극은 멈춰선 안 된다고 했던 데이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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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감독 천카이거, 1993)


떼려야 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한 명은 자신을 바꾸었고, 다른 한 명은 바꾸지 못했기에 파괴됐다.

자신을 바꾸며 연명하던 샬로조차 끝내 살아남지는 못했다.

이제 그에게 남아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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