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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치남편 Dec 29. 2023

네가 아픈 밤은 너무나 길더라

대신 아플수 있는 초능력이 가지고 싶어

나은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나은아. 너의 의지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발 아프지 말아줘. 그래 이건 사실 네가 아니라 조물주에게 바래야 하는 것이겠지. 그간 소설이나 영화에 잘 이해가 가지 않던 장면이 있었는데 자식이 아플 때 부모가(주로 엄마가) 하는 말이야.


“아이고, 대신 아팠으면 좋겠구나”


네가 태어나기 전에는 머리로는 알겠고, 어느 정도 이해는 될 것 같았지만, 네가 아픈 날 정말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확실하게 공감하게 되었단다.아파하며 끙끙대는 아주 작은 너를 보며, 확실한 슬픔과 거대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어. 그렇게나 간절하게 무언가를 빌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하늘에 대고 빌었어, 너의 회복을 말이야.


병실 앞에서 아빠는 중얼중얼하며 기도 아닌 기도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걸 엄마가 듣고는 놀라서 되물었단다. 아빠가 중얼거린 내용이 뭐였냐면 ‘착하게 살았고 더 착하게 살겠습니다. 제발 낫게 해주세요’였는데, 엄마는 스스로 착하게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해.


아빠가 좀 뻔뻔한 측면이 있잖니. 엄마의 지적에 사실 낯부끄러웠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내가 무슨 말을 못 하고, 무슨 창피를 못 당하겠니.(그리고 착하게 산 거 맞는 것 같은데… 물론 모든 일은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는 엄마와 아빠가 좀 웃었단다. 덕분에 복이 온 것인지 너는 큰 탈 없이 퇴원할 수 있었어. 퇴원할 때 간호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있는데, 네가 정말 목청이 크다고 하셨단다. 그 병실에는 많은 아기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발군이었나 봐. 물론 고생하셨을 간호사 선생님께는 연신 90도로 인사하며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건강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 같아. 우렁차게 우는 아이니 건강할 것이라고 말이지.


아빠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그 당직 간호사 선생님이 그때는 그렇게나 듬직해 보일 수가 없었단다. 아픈 너를 치료해주고 달래주고 응원까지 해주시다니, 그분들에 대한 존경이 새삼스레 생겼단다. 내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어.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는 초능력이 가지고 싶더라. 그림 나은 엄마

퇴원 후에도 너는 종종 병원에 갔어. 원래 다 아프면서 크는 거래. 물론 아빠 엄마가 네가 조금만 아파도 호들갑을 떠는 면이 좀 있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넌 엄마의 그 유난함에 감사해야 한단다. 그게 널 살렸거든. 아니 우리 모두를 살렸지.


어떻게 된 이야기냐면 네가 퇴원하고 병원에 있던 기억이 슬슬 뒤로 갈 무렵, 우리가 동물원에 갔다 온 날이었어. 갑자기 너는 시름시름 앓더니 열이 나고 기침하기 시작했단다. 아빠는 사실 대수롭지 않은 감기인 줄 알았는데, 엄마는 달랐지. 네 어깨에 9개의 붉은 반점(bcg 주사 자국)을 보고는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병원에 가야 한다고 소리쳤어.


알고 보니 정말 인터넷에 나와 있던 그 병이 맞았데, 병원에서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았냐고 놀랐지. 그 병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큰일 난다고 하더라, 정말 다행이지? 이것이 바로 엄마의 눈썰미이고, 맘카페의 전능함이란다.(아빠의 말 잘듣기도 한몫했음)


그 병으로 네가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은 코로나로 오로지 엄마만이 네 곁에 있을 수 있었단다. 아빠는 저 멀리 유리창에서 널 보고만 있었지. 엄마가 널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덕에 넌 금방 기운을 되찾았어. 그러니까 내 말은 앞으로 십여 년 뒤 이유 없는 반항이 하고 싶을 때 이글을 보고 엄마 말 잘 들으렴. 이왕이면 내 말도 좀 들어주면 고맙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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