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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나를 걱정해 준 적 있나요

그날의 난 한 마리의 들짐승이었다

by 피존밀크




고양이 집사 부부댁의 집들이를 간 날이었다. 그 집엔 부부의 상관이신 고양이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인간들의 식사와 대화가 길어지자 어느 순간 고양이는 자취를 감췄다. 본인이 낄 곳과 빠져야 할 곳을 정확히 아는 그런 멋진 고양이었다.



빨뚜(참이슬 오리지널 빨간 뚜껑)가 내 몸에 가득 차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각종 주사를 부리다가 그만 남의 집 마룻바닥에 쭈그려 눕고 말았다. 난 왜 술에 취하면 맨바닥에 눕고 싶을까. 알다가도 모를 나의 정신세계란.



남의 집 바닥에서 한참 추태를 부리던 중에 웬 털북숭이가 내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고양이었다. 그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야옹"이라고 먼저 말을 걸어줬다. 술에 취했던 나는 인간이 아닌 한 마리 짐승이었기 때문에 단숨에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야옹"에 담긴 의미는... "저기... 괜찮으세요?"



저 작은 고양이가 날 걱정하고 있다니, 마누라가 술에 취해 몸도 못 가누는 이 모습을 굳이 사진 찍고 있는 남편보다 훨씬 낫구먼. 순간 그 고양이에게 큰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그를 와락 껴안으려고 일어난 순간 고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안기를 포기하고 다시 바닥에 누우니 고양이는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눈이 마주치니 또 "야옹"이라고 말을 건다. 당신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너 따위에게 안기고 싶지 않다, 그런 느낌을 순간 받았다. 그래서 고양이를 껴안으려는 노력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고양이의 걱정을 끝없이 받을 수 있는 그 순간을 혼자 즐겼다.



고대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은 영혼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만 존재할 뿐, 동물과 같은 미물에겐 절대 존재할 수 없는 부분이라 했다. 감정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한 때 동물과 함께 살아봤던 난 이 의견에 반대한다. 동물 역시 참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그들의 소리와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함께 사는 인간들에게 표현한다.



그 날 만난 고양이씨, 오랜만에 뵀는데 추태를 부려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츄르 한 박스 사갈 테니 부디 노여움 푸시어요.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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