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비릿한 찬란함에 대해서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이 무거워지는 시대이다.
2시간에서 3시간 정도를 만 오천원이나 투자하기엔 어렵거니와 재밌는 영상은 핸드폰과 태블릿, tv 등등 불빛이 나오는 기계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굳이 영화관까지 찾아가게 만들어야만 영화가 '팔리는' 시대이다.
짠돌이에, 귀찮은 건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영화관에서의 낯선 사람들과 동시다발적인 관람이 심장을 뛰게 한다고 믿기에, 최근 화제작이었던 영화들을 보고왔다. 그 중 하나가 서브스턴스이다.
감독: 코랄리 파르자
주연: 데미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이미지 및 정보 출처: 네이버 영화
서브스턴스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려고 정리하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누구를 주인공으로 소개해야하느냐였다. 'YOU ARE ONE(당신은 하나다)'라고 영화에서 내내 강조했던 것처럼, 주인공은 하나이기에 엘리자베스 스파클(배우: 데미 무어)을 소개한다. 리지라고도 불리는 엘리자베스는 왕년의 스타이다. 오스카 상까지 거머쥐며 연기력을 인정받고 커리어가 대단한 배우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기는 사그라들고 급기야는 오랜 시간 진행해오던 에어로빅 프로그램에서도 짤려버린다. 절망하는 엘리자베스. 교통사고로 들어간 병원에서 젊고 잘생겼지만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남자에게 쪽지와 함께 서브스턴스(SUBSTANCE) USB를 건네 받는다. 서브스턴스 덕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쪽지를 보고 USB의 영상을 틀어본다.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다는 다소 간결하고 이상한 영상을 보고 엘리자베스는 코웃음 치며 이를 버려버린다. 하지만 나이가 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스파클'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버렸던 번호를 주워 전화를 건다. 여기부터 영화의 서막이 시작된다. 수상한 전화를 받고 수상한 장소에 찾아간 엘리자베스는 곧 수상한 박스를 찾아온다. 박스 속 지침에 따라 약물을 투입하고 쓰러지게 되는데. 척추를 가르고 예쁘고 젊으며, 탱탱한 엉덩이(영화 속에서 각종 엉덩이란 엉덩이는 다 나온다)를 가진 '수(배우: 마가렛 퀄리)'가 탄생한다. 서브스턴스에서 알려준 방식에 따라 7일씩 서로를 바꿔가며 수로서의 삶과 엘리자베스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 방식이란 매번 척수를 뽑아내고, 주사를 놓고 피를 보는 등 괴로움을 동반하지만 7일동안 가장 예쁘고 젊으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엘리자베스는 매일 수가 되기를 기다리며 산다. 줄거리를 정리하던 필자도 헷갈렸던 것처럼 엘리자베스도 자신이 수인지, 엘리자베스인지,이 다른 사람인지 혼동하며 정해진 룰을 벗어나는 등 문제가 계속되며 엘리자베스의 삶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지성인들에게 긴 이야기는 접어두고(하지만 뒤에 쓸 것이다. 흥)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다. 볼만했다. 사실 용기만 있다면 한번 더 보고 싶은 디테일과 풍자가 살아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경고한다. 필자는 영화관에서 영화에 대해 처음 접하며 놀라움이나 독특함을 더 온전히 느끼고 싶어하는 습관이 있어 보통 영화의 정보를 보지 않고 가는 편이다. 그래서 위에 정리한 것처럼 평이한 듯한 간단한 줄거리만 읽고 갔었다. 근데 서브스턴스는 예상보다 너무나도 큰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 마치 코 끝에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듯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들에 이게 내 손가락에서 나는 소리는 아닐지 무서워 한번씩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몸속에 얼마나 많은 장기들이 존재했던가를 알 수 있을 정도의 고어한 느낌이 있어서, 고어물을 잘 보는 편이거나 잔인한 장면을 잘 보는 편이라면 상관 없겠으나 아닌 경우는 보기 힘들 수 있다는 점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 한국 공식 포스터 대신 그 공포감이 잘 드러나는 해외 포스터를 고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데미 무어. MZ세대임에도 그의 이름은 섹시 미녀스타로 여러번 이름을 들어보았다. 그의 인생 자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닮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영화 초반부터 데미 무어는 작두를 탄 듯 미친 연기를 시작한다. 엘리자베스의 시간에 따른 자신의 변화에 절망하고 무기력해지는 모습과 끊임없이 거울과 과거 사진을 보며 현재를 비교하는 강박적인 마음들을 온몸으로 표현해낸다. 사랑과 영혼 영화에서 아저씨랑 물레 돌리던 예쁜 언니로만 기억했는데, 그것만으로 그를 설명할 수 없는 대배우임을 이 영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한번도 놓치지 않고 보여주던 여성에 대한 외모지상주의와 성적 어필만 중시하는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데미 무어는 그의 연기로 보여주고 증명하며 자신의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것만으로도 볼만한 영화임이 충분하다.
영화에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엘리자베스를 보는 시선들이 3가지 존재한다. 첫번째는 엘리자베스 자신의 시선. 앞서서 언급했던 것처럼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끊임없이 과거의 영광과 비교하며 거울을 보며 확인하고, 수가 태어나고(척추로 낳았다고 봐야하나... 싶어서...) 수와 확연히 다른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하는 시선이다. 엘리자베스가 이런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든 것은 바로 다음의 두가지 시선 때문이다. 첫번째는 그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이고 두번째는 매스미디어의 시선이다.
영화에서는 여성들의 모습과 남성들의 모습을 확연히 구별해서 보여주었는데 꽁꽁 싸매고 다양한 옷을 입은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모두, 온.통. 살색이다. 친구에게 영화 후기를 알려주며 했던 말인데, 정말이지 엉덩이란 엉덩이와 가슴이란 가슴은 죄다 구경했다. 꽁꽁 싸맨 남성들은 여성들의 가슴과 엉덩이에만 집중하는 '시선'을 보여준다(때로는 가슴과 엉덩이만 보이며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 엘리자베스가 했던 에어로빅 프로그램의 새 MC를 뽑는 오디션에서 춤을 무척 잘 추는 댄서를 보고 "차라리 코에 가슴이 달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하거나 그 다음 들어오는 예쁜 수에게 "모든 게 제자리에 박혀있는 사람이 왔구나"라고 말하는 심사위원을 통해서 영화는 좀 더 남성적 시각을 과감히 드러내기도 했다. 여성이 가진 능력에 대해서 보다도 가슴, 엉덩이 사이즈와 예쁜 얼굴 그리고 예쁜 얼굴에 드리운 웃음(설사 여성이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더라도 억지로 웃게 만드는 그 웃음)을 중시하는 남성적 시각이 얼마나 여성을 옥죄게 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매스미디어의 시선은 여성이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고 옥죄는 수단이면서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서 잘못된 시선을 가지게 만드는 요소임이 잘 드러난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카메라의 렌즈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때마다 춤을 추며 자신의 엉덩이와 가슴을 드러내고 섹스어필을 하는 수의 모습을 담는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골반이나 가슴을 클로즈업하며 되돌아보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매스미디어의 앞에서 자신의 엉덩이에서 무언가 튀어나오진 않을지, 갑자기 내장이 튀어나오지 않을지 걱정하는 수와 가장 예쁘고 날씬하게 찍힌 수의 광고사진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가려버리고 숨으려고 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서 매스미디어가 만들어 낸 사회적 압박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항상 외모지상주의와 싸우려 하고 스스로의 편견을 없애보려 노력하지만 정말 어렵다.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사방이 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서 사방의 적과 스스로를 이기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한번 더 느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내가 이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특징이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영화의 특징은 색감과 구도의 아름다움이 필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서브스턴스 또한 그러했다. 비비드한 색깔들 사이에서 대칭과 대비를 적절히 보여주는 구조와 소품들이 있었다. 특히 필자는 그 중에서도 방송국의 주황색 복도가 너무 좋았다. 영화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면서도 인물의 특성과 상황을 독특하게 나타내는 소재로 쓰여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미술감독이 일하면서 이렇게 많은 빨간물감을 써보셨을까 싶을 정도로 빨간색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매력적인 시각적 요소들이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찬란함이 피비린내와 절망 속에서 피어난 거라면 난 예쁘지 않아도 되는 삶을 택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