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6일 한겨레 [미디어 전망대]
<뉴미디어 시대에 살펴보는 3·1절 격문>
빠르게 공유 가능한 축약 메시지
격문엔 해시태그 역할 문구도
“내일 없는 듯 목숨 걸고 했던 트위트”
사회관계망 서비스(SNS)가 없던 1세기 전, 어떻게 3월 1일 정오를 맞춰 거국적 만세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을까? 독립운동가 이종일 선생이 운영하던 인쇄소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2만 1천 부를 인쇄해 이를 기차 편으로 전국에 배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각 지역에 무사히 갔어도 부수가 한정적이었고, 내용이 길어 다수가 읽고 공유하기엔 시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인구의 70~80%가 문맹이었고 만세운동에 참여한 60%가 농민층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독립선언서를 ‘대한독립만세’ 여섯 글자로 축약한 선열들의 지혜가 감탄스럽다. 독립을 했으니 만세를 부른다는 명쾌한 선언인데다, 모든 이들과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메시지 형식이었다.
실제로 짧은 형식의 다양한 격문과 지하신문은 이 시기 만세운동 지속 전개에 큰 역할을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격문을 보니 “대한독립만세 아니 부르면 주의하시오”(1919년 3월 26일), “누구든지 열성으로 외우고 다니시오”(혈성가) 등의 문구는 리트위트 독려할 때의 글과 흡사하다. 어찌 보면 독립운동 선각자들은 트위터나 해시태그의 개념을 미리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다.
14자 글쓰기가 신기해 가입했던 트위터를 거의 보지 않다 10년 만에 다시 눈팅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때문이다. 이들은 멤버 개인 계정 없이 트위터 계정 하나를 활용해 각자 트위트를 남기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이 트위트를 남기자마자 삽시간에 여러 언어로 번역된 답글(멘션)이 달린다.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세계 각국의 아미(ARMY) 번역계정에서 실시간으로 번역해 리트위트(RT) 하기 때문이다. 영어, 중국어, 아랍어, 스페인어, 타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러시아어, 힌디어, 포르투갈어 등의 트위트는 예삿일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팬 번역 계정은 케이팝의 세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기사나 영상을 번역할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낯선 문화를 설명하고, 때로는 아티스트가 받는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평했다.
케이팝 팬들은 해시태그를 활용해 ‘#실트총공’과 같은 이벤트도 적극 펼친다. ‘총공’은 ‘총공격’, 실트는 ‘실시간 트렌드’의 약어다. 해시태그 총공은 우리나라 케이팝 팬들의 독특한 참여문화로 특정 시간에 특정 트위트를 필사적으로 공유한다. 이를테면 그래미 시상식 날 실트총공은 #TearItUpBTS였다. ‘마음껏 놀다 오라’는 이 해시태그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트위트 하라!’는 독려 문구와 함께 24시간 동안 2천만 건 이상 공유되어 그날 전세계 실트 1위를 했다. 방탄소년단의 아르엠(RM)은 한 시상식에서 “오직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백범의 말을 인용해 수상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이에 각국의 아미 번역계정들은 소감 번역을 트위트 하면서 김구 선생을 ‘한국의 독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대한민국이 일제 강점기를 겪고,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음을 아는 외국인이 얼마나 될까. 아티스트와 팬 모두 참 고맙고 대단하다. 독립운동 공간에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목숨 걸고 외치고 트위트 했던 ‘대한독립만세’ 여섯 글자의 지혜가 100년 후 미래인 오늘, 우리 고유의 미디어 형식으로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2019년 3월 6일 한겨레신문 [미디어 전망대] 지면에 발행된 글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과 평양의 3.1 운동> 전시와 방탄소년단의 트위터 계정이 모티브였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비밀스럽게, 빠르게 메시지가 확산되었을까' 궁금증이 출발점이었지요. 독립운동 당시 뿌려졌던 격문과 트윗이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쉽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는 점,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메시지로 간단히 자기 의견을 피력한 점 등등. 일제가 삼일 운동을 단속하기 어려웠던 것도 너무나도 다양한 많은 양의 '대한독립만세' 메시지가 생산되어 정보의 진위여부 확인이 불가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정보가 정말 많았던 것이지요. 누구나 쉽게 한 장짜리 간단한 메시지를 생산했기 때문에 삼일 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 트윗에서도 일단 동일 해시태그에 흘낏 봐도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 많이 RT 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편이지요. 때로 잡음(noise)이 진짜를 더 진짜이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한겨레 신문에서 고수하는 한글 표기로 인해 RM을 '알엠'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르엠'으로, 트윗을 '트위트'로 표기한 점은 글 쓴 이로서 좀 아쉽습니다. 트윗이 트위트로 표기되니 인지적으로 생각의 브레이크가 한 번 걸리게 됩니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공유합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884711.html#csidx31de1d923b42827a054be31f9f1e65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