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30 한겨레 [최선영의 미디어 전망대]
밤 11시쯤 드라마를 보다가 새벽배송 앱으로 식품을 주문해 보았다. 가입과 주문까지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라디오 앱으로 뉴스를 듣던 중 배송 완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과연 현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물건을 받는 순간 첫 구매 고객 할인 혜택 문자가 왔고, 연달아 배송 만족도 조사와 할인쿠폰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리는 하루도 안 된 사이인데 이토록 애정 가득한 고객 관리라니. 개인 일상에 집요하게 말을 거는 흡사 스토킹 같았다. 이 경험의 흐름에서 텔레비전 시청과 라디오 뉴스 청취라는 미디어 행위는 몇 번씩 단절되었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동영상 시청, 쇼핑, 메일, 검색, 뉴스 읽기, 게임, 채팅, 통화 등 여러 이벤트가 단일 단말기인 스마트폰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업체들이 알고리즘과 기계학습을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기성품 웹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자동 푸시 알림을 받는 일이 빈번해졌다. 유튜브 구독채널 알림에서부터 에스엔에스(SNS) 게시물 알림, 오티티(OTT) 서비스 신작 알림은 미디어 이용을 재촉한다. 긴급재난 문자와 같은 자동 메시지도 수시로 경험하는 푸시 알림이다. 요즘 들어 사람이 보내는 메시지보다 자동화된 알림 메시지를 더 많이 받게 된 것도 같다.
얼마 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아마존 웹서비스 서밋(AWS Summit)에 참석해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계학습을 이용한 개인화 사례 발표를 보며 데이터 자원의 가치가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데이터가 발생되어도 이를 소유할 뿐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기업이 있는 반면, 이용자 경험 데이터를 창의적으로 활용·해석하고 데이터에서 스토리텔링을 발견해 급성장한 스타트업 기업도 있다. ‘우아한형제들’ ‘알지피코리아’ ‘마켓컬리’ ‘쿠팡’ 등이 후자의 경우다. 이들은 이용자 통계에서 추세 분석에만 그치지 않고 시간에 따른 이용자 심리 변화까지 파악하는 소비 예측 분석을 한다.
이용자 행동패턴 분석 알고리즘이나 기계학습 등의 웹서비스 기술이 나날이 진화하면서 미디어와 미디어 행위의 경계를 지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8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텔레비전 시청 중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응답자는 텔레비전 이용자의 약 55%로 이러한 행위의 주요 이유는 채팅(61.4%), 습관적 사용(44.3%), 정보 검색(29.8%)으로 나타났는데, 이 결과에 대해 텔레비전 시청 형태가 ‘능동형’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과연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능동적’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것에 이끌리지 아니하고 스스로 일으키거나 움직이는, 또는 그런 것”이다. 미디어 동시 이용 행위를 설명하는 개념은 능동성보다 다중작업으로서 멀티태스킹이 적합하다. 예측으로 유도된 능동성은 이미 능동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능동적 결정에 의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나 고도화된 푸시 알림 기술에 의해 서로 다른 속성의 미디어 서비스를 따라가기 바쁜 것은 아닌지, 알고리즘과 기계학습 프로그램의 결과로 부지불식간에 습관이 형성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 글은 2019년 4월 30일 한겨레신문 [미디어 전망대]에 실린 내용입니다. 원래 '모든 기업은 미디어 기업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다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아마존 웹 서비스 서울 서밋을 다녀와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성품' 웹 서비스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하나의 예시로 앱 알림의 작동 원리를 좀 쉽게 써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독자이자 교정을 봐주시는 아버지께서 내용이 너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국문과를 나오신 아버지께서는 우리 남매가 어렸을 때 어린이 국어사전을 만들어 주실 정도로 국어와 쉬운 표현을 잘 아십니다. 독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연마해야지요.
수시로 울리는 알림음이 나를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는데 지면은 늘 원고지 8매 기준으로 압축하다 보니 점프하게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웹서비스와 스마트폰과 관련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더 쉽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92154.html#csidx9f328fb987e88c48312a9135542509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