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얼굴들

어쩌다 만나는 얼굴들 덕분에 사는 기분이 드는, 살아지는 하루가 있기를

by 이정진

“구축 아파트 사는 건 어쩐지 무섭더라.”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살 집을 찾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지어진지 30년이 훨씬 넘은 낡은 아파트에 혼자 살기 적당한 평수가 나왔다기에 보러 갔더니 복도식이라 꺼려진다고. 그 말에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구축 아파트 사는 건 무서운 일 같다고. 그 친구는 사는 내내 밤잠을 설쳤다면서 오래 전 신혼시절을 떠올렸다. 처음엔 나도 가볍게 동조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됐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캄캄한 복도를 걸어 집을 찾아오는, 몇 걸음 안 되는 그 길이 참 무서웠으니까. 등 뒤에 누가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움켜쥔 채 현관문까지 걸어오는 그 길을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숨죽여 걸었던 기억이 내게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KakaoTalk_20241204_112144970.jpg


그날 우리의 대화는 무수히 많은 주제를 넘나들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헤어지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친구들이 말했던 ‘무서운’ 복도에 도착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곳을 무섭다는 한 마디로 결론짓는 건 어쩐지 좀 부족한 일 같다고. 지어진지 30년 넘은 복도식 아파트에 4년째 살고 있는 나는 처음 이사 왔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이미 잊고 꽤 다양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정, 거주자 다수가 느끼는 만족은 분명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친구들에게 말해줬어야 할 무언가를 놓치고 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뒤늦게 자꾸 든다. 이곳에 산 덕분에 내가 사는, 살고 있다는 분명한 기분을 자주 느꼈던 경험을 말이다.


아이를 낳고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와 뱃속부터 연결되었던 아이가 이제는 눈앞에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홀로 있다는 느낌, 고립감이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이 순간이 다시 안 올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호르몬의 지배를 받았다. 괜찮다가도 어느 순간 물밀 듯 우울감이 찾아오면 나는 아직 제대로 기지도, 앉지도 못하는 아이를 유아차에 태워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들이더라도, 그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마음에 빛이 드는 기분이었다. 카페에 홀로 앉아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옆 테이블 대화의 일부를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나의 텅 빈 마음은 조금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하루에 두 번씩 유아차를 끌고 산책(사실은 나의 휴식) 하면서 점차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어제 마주쳤던 사람, 지난 번 어디선가 봤던 사람이 됐다.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에 맞춰 산책하다 보니 아파트 같은 동에 거주하는 어르신들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빈도도 잦아졌다. 처음에는 멀뚱멀뚱 쳐다봤다가, 다음에는 슬쩍 눈인사를 했다. 그 다음엔 고개를 꾸벅 숙였던 것 같은데 어느 새 나는 또, 자주, 계속 마주치는 어르신들에게 “어머, 더운데 어디 가세요?” 제법 자연스레 안부도 묻게 됐다. 그 사이 아이는 기고, 잡고 일어서더니, 걸었다. 걷기 시작하면 수월해질 줄 알았더니 아침에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자고 아우성치는, 떼를 부리는 조금 더 큰 아기가 되었다. 이제 엘리베이터 안부 친구가 된 아파트 같은 동의 어르신들은 좀 더 큰 아이를 보면서 “아유, 많이 컸네.”, “이쁘다, 이뻐. 아이 보면 그렇게 이뻐.”라고 하신다. 때로는 먼저 아이와 나를 알아보시고는 “그새 또 컸네. 키우느라 고생 많아.”, “정말 잘 키웠네. 힘들지?” 하시며 알아서 우리집의 층수 버튼을 눌러주시기도 한다.


지난봄에는 유독 아이의 병치레가 잦았다. 오랜 감기가 말끔히 나았다고 생각할 때 아이는 수족구에 걸렸다.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어린이집 등원을 한지 얼마 안됐을 때 또 다시 아이에게 수족구가 찾아왔다. 아이가 아무리 열이 나더라도 집에만 있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아이는 매일 새롭게 충전되어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니까. 부랴부랴 옷을 입혀 바깥으로 나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던 어느 날, 우리 엄마뻘 되는 위층 아주머니를 만났다. “오늘 어린이집 안 간 거 보니 감기 걸렸나봐. 엄마가 하루 종일 보느라 힘들겠어. 그래도 아프면서 또 쑥쑥 커. 조금 힘내.”하며 내 등을 쓸어주셨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힘든 속마음을 알아봐주신 것 같아서. 힘들어 하는 내가 어른답지 못한 것만 같아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말 한 마디에, 등을 쓸어내리는 온기에 굳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덕분에 가까스로 나는 그 주를 버텼고, 아이는 나았다. 정말 말처럼 컸던 기억이다.


이제 아이는 낯가림이 심해져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큰 사람(=어른)만 보면 내 뒤로 꼭꼭 숨던 시기를 지나, 짧은 단어로 의사표현을 하는 시기까지 자랐다. 1층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이미 어르신들이 타고 있으니 서둘러 타자고 재촉해도 기어이 자기 스스로 걸어가겠다고 떼를 쓰느라 모두가 기다리는 일도 빈번하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초조해지지만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 “괜찮다”며 기다려주고, “아유, 장해. 이렇게 스스로 하겠다니. 얼마나 귀엽고 장해.”하는 것도 모두 엘리베이터를 타며 오가다 마주치는 어르신들이다. 나만 있었다면 내게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을 반전의 미소를, 무장해제된 웃음을 보여주는 분들. 허리를 굽혀 바쁘게 분리수거하다가 아이가 인사하겠다는 말에 쓰레기를 집던 손을 털고 일어나셔서 가장 환한 얼굴로 손 흔들어주는 경비 아저씨까지. 그런 분들의 관심과 “아이 낳아 키우는 엄마가 장하지.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칭찬에 정말로 나도 사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힘에 부치고 유독 오후 시간이 더디게 간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아이를 앞세워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칭찬받고 싶어하는 아이 같은 덜 큰 내가 부끄럽지만 어쨌든 그렇게 나가면 반드시 엘리베이터에서 누구든 만나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한번은 듣게 된다. (우리 동은 100세대가 넘는 가정이 두 대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웃을 마주칠 확률도 그만큼 높다.) 그 짧은 순간으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얼굴들’ 덕분에 올해의 긴 시간을 무사히 건너왔다고 생각한다. 등을 쓸어 넘기며 다독여주는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잘하고 있다. 정말 장해.” 군더더기 없는 칭찬이 듣고 싶어서 나는 매일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시는 옆집 어르신을 복도에서 만났다. 우리가 동시에 현관문을 연 것이다. 어르신은 이미 엘리베이터 통로를 향하여 저만치 앞으로 가셨는데 아이는 여전히 움직이질 않았다. 복도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만져보느라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할 때, 아이의 멈춘 발걸음에 시동을 걸어준 건 옆집 어르신의 인사였다. “얼른 가자, 같이 가.” 그 한마디에 아이는 어르신 뒤를 따라 드디어 움직였다. “가자.”하면서. “아자씨.” 부르면서 아이는 걸었다. 떼쓰지 않고 얌전하기에 어쩐 일이냐고 내가 아이에게 물으니 “원래 얌전히 잘 가는 아이인데, 뭐.”하고 너그럽게 품어주는 것도 어르신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아이는 등원했고, 나는 나만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신축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으니까 이렇게 넘겨짚는 게 나의 그릇된 판단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오래된 동네만이 주는, 정말 소소하지만 아주 확실한 기쁨이 아닐까 점점 확신하게 된다. 캄캄한 복도를 혼자 걸으면서 등 뒤가 서늘해지는 게 구축 복도식 아파트가 가진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그 복도를 같이, 때로는 한 줄로 줄지어 걸을 수 있는 것, 그래서 등 뒤가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낡고 오래된 아파트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끝내 친구에게 내가 경험한 기쁨을 말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저 친구에게도 친구만의 ‘사는’ 기분을 분명히 느끼는 계기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만 가져보려 한다. 어쩌다 만나는 ‘얼굴들’ 덕분에 살아지는 하루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KakaoTalk_20241204_111035680.jpg
KakaoTalk_20241204_112458460.jpg
KakaoTalk_20241204_112641629.jpg




위 내용은 메일리 뉴스레터 '일류여성'으로 발행된 내용입니다. 여자 셋이 돌아가면서 매주 금요일 편지를 보내고 있고, 저는 3주에 한 번 편지를 씁니다.


* 일류여성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maily.so/1youwomen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을 찾아 다니는 심심한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