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연습한 시간> 리뷰
나는 신유진 작가님을 사실 잘 모른다. 그저 올해 시민대학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글쓰기 선생님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이기만 기다릴 만큼, 끝나가는 수업이 아쉬울 만큼 정말 좋았다. 작가님이 들려주는 매 수업의 이야기들은 뜨겁고 반짝였고 아름다웠다. 놓치는 게 아쉬워 첫줄에 앉기 시작했는데, 뒤늦게 알았다. 나도 모르게 작가님의 글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걸. 이토록 열정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글쓰기의 세계를 나눠주는 작가님은 어떤 글을 쓸까. 더 알고 싶고, 더 이해하고 싶었다. 제목부터 끌렸다. <사랑을 연습한 시간>이라니.
<사랑을 연습한 시간>에는 ‘엄마의 책장으로부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엄마로부터,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영향 받은 귀한 것, 대체될 수 없고 환산할 수 없는 인생의 값진 것 그러나 아주 모호한 것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작가님에게 글쓰기의 토대가 됐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엔 작가님이 엄마의 우산 아래 있다가 엄마의 우산 밖으로 나갔다가, 이제는 나란히 손잡고는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려졌다. 작가님이 엄마를 이해하면서 다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방식이 내게는 타인을 이해하고 돌보면서 함께 가는 방법을 찾는 길로 들렸다.
“나의 근원, 엄마와 내가 여성으로서 통과한 삶, 그리고 타자였다. 내게 가장 가깝고 그래서 늘 멀어지는 엄마라는 타자와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확인하는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함께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내 존재의 빈칸을 타인의 이야기, 그 안에 담긴 믿음으로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가 타자의 그리움에 대한 응답이라면, 나는 타자의 믿음으로 온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누군가의 그리움과 슬픔을 기쁨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게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도, 내 삶도, 내 글도 존재해야 할 이유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이 사소하고 하찮고 때로는 외면해버리고 싶은 순간들을 차곡차곡 이야기로 길어 올려 펼쳐준 것이 좋았다. 아름답지 않고, 의미 없고, 별 게 아니라 생각한 것, 외로워 침묵해버린 것들을 건져 살게 해준 이야기들이 무척 좋았다.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싶을 수도 있었을 내밀한 영역을 솔직하게 고백해준 덕분에 읽는 동안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와르르 무너져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얻었다. 또한 드러내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던 비밀, 욕망이나 갈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표출할 때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힌트를 얻었다.
“슬픈 존재가 슬픔이 새겨진 것들을 만나 한 번 더 슬픔과 마주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내게 슬픔이 새겨진 것들을 여름의 텅 빈 거리, 혼자 빈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엄마의 책. 책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슬픔을 찾아내는 일이 슬픔을 떠나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주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슬픔과 비참함이 다르다는 것도.”
“나는 비밀을 글로 쓴다. 글로 쓰인 비밀은 말로 전하는 비밀과 다르다. 비밀의 일부를 골라 다듬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비밀의 전부가 필요하진 않다. 비밀을 다룰 용기, 그거면 된다. 쓰는 나와 읽는 당신 사이에는 비밀의 내용보다 우리가 누군가의 비밀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의 나약한 모습을 본 순간, 우리 안에 어떤 것이 무너진다는 사실과 그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간직하며 살게 된다는 것, 그 진실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
“세상에 나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글쓰기가 내가 손에 쥔 돌멩이 하나라면, 나는 그 돌을 어디에 둘 수 있는가? 무엇을 짓는 데 기여할 수 있는가? 겸손함을 가장한 거대한 욕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당한 돈’이라는 표현만큼 애매모호한 말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니 들키고 싶지 않아 감춰둔 어두운 감정들, 이를테면 불안, 우울,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외면하지 않고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서 있는 곳이 또 너머의 세계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작가의 언어 앞에서 경이를 느끼는 동시에 내 언어의 결여를 깨닫고 절망한다. 나에게는 ‘없음’을 ‘있음’으로 바꿔놓는 통찰력과 과감히 땅 위로 날아오르는 용기 같은 것이 없다.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결여에서 오는 욕망뿐이다.
욕망이 없는 글이 존재할 수 있는가? 나는 욕망이 빠진 글을 만나본 적이 없다. 세계를 즉시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욕망,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욕망,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심지어 덜어내려는 마음조차도 욕망이다. 이 욕망들이 없는 세상은 무음의 세계다.
나는 내 욕망을, 말하고 싶은 이 충동을 침묵의 무덤에 묻을 수 없다.”
“이 혼란과 불완전함과 불안을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의미를 모른 채 말하는 게 괜찮을까? 완전한 답은 알 수 없지만, 나는 말하는 것을 택했다. 혼란과 불완전함과 불안.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의미. 그게 내가 과거를 뒤져 찾아낼 수 있는 진실이니까. 진실은 어떤 모양이든 가치가 있다. 그것이 내가 엄마와 나눈 일기장에서 배운 것이다.”
“살아내려는 각오와 살아남으려는 의지 같은 것. 가벼우면서도 진한 그 글자들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나눌 수 없고, 오직 흩어진 채로 한 여성의 세계를 구성할 뿐이다.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 탄생한, 청중도 독자도 없는 말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여성의 텍스트들이 감춰져 있을까. 나는 그 말들의 조련사가 아니라 조력자가 되어야 했다. 네모 칸 안의 네모 칸, 그 속에 들어가 볼펜으로 그은 빗금을 거둬내고 그 말들을 해방시켜야 했다. 나는 말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했다. 그것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한 여성의 삶을, 그 삶의 의미를 묻고 따지고 외치는지 증언해야 했다. 나는 그 말들을 절실하게 쫓되 개입하지 않는, 겸손한 추적자가 돼야 했다. 나는 한 여성의 야성을 길들이려는 힘에 저항하고, 그 야성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에 동참해야 했다.
흩어진 말을 모아봐, 문법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마, 문학적 표현도 필요 없어. 비린내 나는 말도, 푼돈 냄새 나는 말도 아름다워. 틀린 것을 드러내봐. 틀린 것으로 하나뿐인 정답을 만들어봐, 엄마만의 글을 써줘. 내가 독자가 될게.”
삶은 ‘사이’에 있을 수 있으니까. 작가님의 표현을 잠시 빌린다면 “꿈의 매끈한 포장지와 현실의 뾰족한 가시를 거두고 틈을 파고들면, 거기에 내가 찾는 게” 있을 수 있으니까. 틈을 내고, 균열을 만들고 싶어진다.
내가 글쓰기 수강생이 되었을 때 칠판 앞에 선 작가님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사람만이 작가가 되는 것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깃털처럼 가볍고, 금세 부서지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주 깊은 이면까지도 구석구석 등불을 켠 채 보고, 이해하고, 부정하고, 다시 부수고, 찢고, 때때로 저항하면서 끝끝내 남은 것들이 모두 응축된 결정체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뒤늦게 알았다.
단단함이 아름다울 수 있구나.
슬픔이 아름다울 수 있구나.
침묵과 외로움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욕망하다 주저앉고 다시 욕망하기를 멈추지 않는 그 마음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고.
그 사랑은 끝없이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이라고.
나는 <사랑을 연습한 시간>을 이렇게 읽었다.
“엄마 말에 고개를 들어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우리와 눈 맞추는, 우리와 만나는 길 위의 여자들을 본다. 시장의 상인들, 집안의 가장들, 60세, 70세 선배 노동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들의 삶을 고통을 기쁨을 슬픔을, 그들의 생활 터전을, 노동 현장을, 저녁이 되면 모두 떠나고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이 거리를 덮는 이 시장을 달래는 그들의 노래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온몸으로 살아보고, 내 피부로 느껴 본 후에. 그들의 삶, 그편에 서서 같이 걸으며 써볼 테다. 물론 끊임없이 의심할 거다. 써도 괜찮을까? 쓸 수 있을까? 세상에 함부로 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도. 온몸으로 느끼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좌절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옮겨보는 것. 최선을 다해 옮겨보는 것, 그게 글쓰기일 것이다. 그래도 쓸 수 없는 것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자 그게 삶일 것이다.”
아이가 한글을 알게 되면 가족 일기를 써 보자고 해야지.
신유진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엄마뻘 되는 어르신들을 만나며 엄마에게도 글을 써보라고 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더 엄마에게 권해봐야지. 부담가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엄마와 나란히 이야기를 자주 해보아야지.
보잘 것 없고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또한 자주 주저하지만 나는 나대로 계속 써보아야지. 아주 솔직하게. 그리하여 단단함을, 건강함을 차곡차곡 쌓아봐야지.
*해당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