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생활자의 수기 - 1

by 데미안


문학청년 이란 말은 있어도 미술청년 이란 말은 들어보진 못했다.
미술청년이라니,
추운 땅에서 파릇하게 피어나는 청보리 같은 시린 감성의 피돌기, 그런 걸 일컫는 말인가..

미술학교 진학을 고집부려
(바닷가 벽지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 달동네에 망루처럼 까마득한 자취방 한 칸을 얻었다.
절개된 산밑에 바짝 붙여 지은 여러 가구가 모여사는 다세대 주택의 옥탑방..

이층 베란다 난간을 지나 옥탑방으로 오르는 녹슨 철계단은 작은 책상 하나 들어 나르기에도 비좁고 위태했다.
달랑 수도꼭지 하나 붙어 있는 반평 부엌과 가재도구 하나 없는 두세 평 남짓한 허름한 방,
양은냄비 몇 개와 작은 석유난로가 취사도구의 전부였지만 지상에서의 유일한 나만의 방 한 칸이 주어졌다는 그 기쁨만으로도 날아갈 듯 배가 불렀다.
옥상 난간에서 바라다보면 저
멀리 한강 건너 남산이 보이고
가깝게는 내리막 골목 저편에 바글바글한 재래시장이 보였다.


널브러진 화구들과 테레핀 냄새
쌓여가는 술병..
미래에 대한 전망과 그리고자 하는 그림은 요원하고 절망과 허기만이 명료해져 가는 저녁이면 쓸쓸히 술이 나를 찾아왔다.
진로가 암담하다고 느낄 때마다 또 다른 眞路는 궁벽한 식도를 타고 흘렀다.
그 순간만큼은 절망도 행복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의 예배당 종소리,
그 참회의 종소리..

뒷산 약수와 낡은 벤치에 누워 올려다본 맑은 하늘과 아카시아 꽃잎(향)만으론 은 피폐한 정신과 육신을 정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카시아 꽃잎 사이로 들려오는
웃음소리,,
아래층 외딴방에 홀로 사는 여자와 가끔씩 찾아오는 중년의 남자..

옥상 건너 산비탈에는 동네 사람들이 한두 평 작은 땅을 골라 이곳저곳 야채를 심었다.
매양 라면뿐인 끼니가 지겨웠다.
그날은..
대파라도 잘라 넣을 요량으로
칼을 들고 옥상 난간에서 산을 향해 펄쩍 뛰었다.
아뿔싸 ~!
순간, 베란다 삼층 빨랫줄에 발이 걸려 몸이 균형을 잃고 난간 아래로 떨어지면서 빨랫줄을 잡아매었던 각목들이 부러졌다.
연이어 아래층 유리장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에는 집주인과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저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빙 둘러 서
있었다.
코피가 나고 발가락이 깨져 피가 흐르고 손에는 그때까지 부엌칼이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대파를 자르려고 쥐었던 칼을 오해하고 주인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꾸짖었다.
"이렇게 칼 들고 쌈질할 테면 우리 집에 더 이상 세를 줄 수 없으니 당장 나가라 "라고 소리쳤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 칼부림하는 폭력배로 오해받은 피의 일요일..

다음날,
아래층 창문이 깨졌다는 걸 알고 그 여자의 쪽방으로 내려갔다.
유리창이 없는 휑한 문밖으로 나를 내다보며 그녀는 희미한 목소리로 "아무렇지 안 아 요..? "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손목에는 하얀 붕대가 말려 있었다.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생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그림과 함께 했다 해서
불안한 오류 투성이인 지난날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모든 예술은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지만 예술이란 이름의
(거지움막 같은..) 삶은 얼마나 디폴트인가.

덧없고도 무상한 지나간 시간은 빛바랜 회전목마처럼 그립고도 쓸쓸하며 감미롭다.

늦은 밤 버스에 내려 지친 하루의 몰골로 올려다본 까마득한 옥탑방..
세월이 흘러도 나의 기억 속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 자그마한 방 한 칸이 있다.



얼마 전 이제 막 미술대학을 졸업한 딸내미가
서울의 달동네 다세대 주택에 방을 구했다.
격세지감과 교차하는 만감으로
몇 자 적어본다

#oilpaing #향연 #안기호 #청보리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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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하얀 붕대 30-1, oil on canvas, 30F(91x72.7) 안기호 作

한줄기 빛이 비스듬히 (부분) 50-1, oil on canvas 50F (116.8x91) 안기호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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