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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May 20. 2022

세 가지 자유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시간, 공간, 마음

출근시간 쫓기지 않게 부족한 잠을 미루고 일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빠듯하게 허둥지둥 집을 나서게 된다. 오피스 앞에선 꼭 비밀번호는 틀려서 뒤를 한번 돌아보게 된다. 머릿속은 문을 여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밀린 일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가장 고마운 시간 오전 10시.. 한숨 돌릴 수 있고, 커피도 한잔 내릴 수 있고, 지나가는 동료에게 안부를 건넬 수도 있고, 나에게 가장 활기차면서 차분한 시간 오전 10시.. 나는 이제 다른 세상으로 간다..


한 달 전부터 새롭게 자리 잡은 내 스케줄 1번, 작가의 서랍 열기.. 두서없이 줄지어 있는 제목들..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멈춰지는 단어들이 있다. 오늘 아침 내 마음과 같은 제목 앞에 멈춘다. 그렇게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습관처럼 생긴 버릇이다. 


머리에 맴도는 단어들 서랍에 제목으로 저장해 둔다. 예전에는 스치는 순간의 감정에 몰입해서 상황을 기억했다면, 요즘에는 그 감정을  불러일으킨 느낌을 담아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 둔다. 모바일 작가의 서랍은 나에게 이제 소중한 메모장이 되었다. 맥락 없는 제목들... 뒤엉킨 내 생각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


1. 시간 내기 자유

소박하다고 표현하려니, 나한테는 쉽사리 얻기 힘든 자유라서 조심스럽다. 하루에 조금씩 욕심내어 먼저 시간을 만든다. 하루 꼬박 7시간 정도 일할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 늘 점심은 책상에서 직접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이런 스케줄 중에 아침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하루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설렘도 사라진다. 서랍 속에 단어들이 하나씩 내 곁으로 온다. 내 삶의 구속에서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의 자유가 계속 주어졌으면 좋겠다. 첫 번째로 딱 이 만큼만 시간의 자유가 나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2. 공간 사 자유

퇴사할 때도 여기 비전임으로 올 때도 아무것도 바라는 바가 없었다. 그저 내가 폐가 되어선 안된다는 마음만 있었다. 예전처럼 활발하게 연구를 못할 텐데, 나에게 기회를 준 교수님께 폐가 되면 어쩌나 하고 마음 졸이며 출근한  첫날, 감사하게도 내 이름이 쓰인 무실이 주어졌다. 가방 하나 놓을 곳과, 책상만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꿈이 과하게 이루어졌다. 아무도 없는 이 공간.. 작자의 서랍을 열기에 과분한 장소다. 이 공간 덕분에지금, 이곳에서 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룸넘버 220호.. 나의 서랍 속 이야기들이 꿈꾼다. 사실.. 2년 후 난 백수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확률로 따지면 백수일 확률이 좀 더 높다. 그래도 미래를 걱정하느니, 금 여기 글을 쓰는 현재를 감사하며,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220호의 공간의 자유가 계속 주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서랍을 자유롭게 열 수 있는 딱 그만큼만 공간의 자유가 두 번째로 주어졌으면 좋겠다.


3. 마음 담을 자유

13개월 아기와 아침인사는 만만치 않은 작별인사와 같다. 딱 7시간 후 다시 만남을 기약하기에 더 애틋한 것 같다. 돌아서는 발걸음을 재촉해보지만,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이 결국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무거운 마음 안에는 아쉬움보다 여느 워킹맘들의 마음과 같이 미안함으로 온통 뒤덮인다. 뿌연 연기 속에서 빠져나오려 매일 아침 애쓴다. 오늘도 달래어본다. 마음에게 진정할 시간을 주고, 커피로 쓸어내려며, 작가의 서랍을 연다. 이내 편안해지고 진정된다. 목적지를 찾아 나선 여행자와 같다. 낯선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겨가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날, 그때 내 마음들이 여기 서랍 속에 고스란히 놓여있다. 하나씩 꺼내어 볼 마음의 자유가 계속 주어졌으면 좋겠다. 지금 서랍 속 이야기들을 들여다볼 마음을 담을 딱 그만큼의 자유가 세 번째로 주어졌으면 좋겠다.


살면서, 시간도 내 것이었고, 공간도 내 것이었다. 마음이란 건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다. 내 것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브런치가 생기고 나니, 들여다볼 시간,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필요했다.. 누군가로부터 얽매이지 않을 자유.... 오롯이 혼자 서랍을 열고 내 세상 속으로 들여다볼 자유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세 가지 자유가 매일 나에게 주어질 수 있게 나의 또 다른 하루를 잘 살아가며 오늘도 작가의 서랍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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