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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Sep 14. 2022

공감한다며 조언하는 착각

누군가의 인생을 공유하는 것만큼 조심스러운 일도 없다

같은 경험을 했다고 다 같은 마음일 거라 착각했다. 특이나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 내가 아팠던 것처럼 힘들거라 믿으며 너무 깊숙이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오히려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었다고 해서 내가 다 감당하고 보듬어 줄 필요까지 없다. 그냥 상대는 지금 아픔을 조금 덜고 싶을 뿐이다. 그 이상은 내 마음이다. 그래도 난 여전히 그녀가 걱정이 된다. 


작년 가을 추석을 보내고 가족들 사이에 나만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 다독여보아도 출산은 출산이고, 하고 나면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누구나 하는 일이 되었다. 결국, 불어난 내 몸뚱이를 처리하지 못한 것이 오롯이 내 몫이었다.. 출산 후 6개월.. 그렇게 난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남은 근육이라고 찾아보니 누구 말대로 괄약근 정도 있고.. 여전히 육아는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잘해나가야 하는 일이라 판단되었다. 그래서 일단 몸 쓰는 것부터 하자 싶어서 필라테스를 선택했다. 임신 전 꽤나 운동을 하던 나도, 출산 앞에 무릎 꿇고 겸손해졌다. PT부터 요가, 각종 운동이라 불리는 것들을 해본 적 있던 나지만, 결국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얄팍한 근육이라 믿었던 것들은 나에게 굴욕이라는 모욕감을 선물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운동이라 개인 레슨을 받기로 했다. 남편의 적극적 권유와 지지가 지난날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그냥 그의 마음만 받고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사흘 밤낮을 뒤져 오래되고 잘 가르친다는 곳을 찾고 마침내 전화를 했다. 난 원장님께 레슨 받고 싶다고 하니, 이미 스케줄이 다 차서 안된다고 했다.. 물러설 수 없었다. 아니, 욕심부려서라도 하고 싶었다. 


-원장님, 그러면.. 저 경력 많은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출산하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몸도 잘 쓰지 못합니다. 그리고 처음 경험하는 필라테스 안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지 않고, 해보고 다시 선생님 바꿔달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잘 배워서 오래 레슨 계속하고 싶기도 하고요..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원장님의 목소리 넘어 차가움과 '너 꼴값이다'라는 표현의 말투가 뒤섞여 느껴졌다. 

-아... 예... 네.. 여기 다 선생님들 5년 이상 경험 많으신 분만 모시고 합니다. 걱정 마시고요.. 그럼, 내일부터 오시고요. 레슨 2시간 전 아무것도 드시지 말고, 필라테스 양말 가지고 오세요. 내일 10분 일찍 오셔서 수납 하시고요. 그럼 내일 뵐게요.



대꾸할 틈도 없이 끊으셨다.. 다소 민망하고 괜한 짓 했다 싶기도 했지만, 난 좋은 인연을 맺고 싶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SJ선생님과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작은 체구에, 조막조막만 하게 생긴 얼굴, 까무잡잡한 피부,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필라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베스트 비율의 몸매에 마르고 탄탄한 체형을 가진 그녀는 나로 하여금 의욕을 불타오르게 했다. 어디가 제일 불편하냐 가장 먼저 물어봐 주었다. 그리고 혹시 물리치료나 재활 병원 다니지는 않는지 여부도.. 출산 6개월 이면 아직 힘들지 않냐고 나의 안부도 물어봐 주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아주 따뜻했고, 나를 편하게 이끌어 갔다. 그리고 항상 잘하고 있다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휴직 중에 시작한 필라테스는 나에게 가장 큰 치유가 되었다. 스트레칭을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유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가장 잘 못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육이 너무 수축되어 있고, 잘 뭉치고 또 잘 풀리는 근질을 소유한 나는 레슨 후 몸은 금방 달라졌다. 피가 도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상쾌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선사했다. 항상 50분 수업 동안 한 번도 잡담 없이 운동만 하던 어느 날..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싱댁님은.. 배우자를 고를 때 어떤 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얼굴이 화장도 하지 않고 아주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전 카톡 프사도 여러 번 바뀌었다. 남친이 있는 것 같았는데...  

-저요? 저는 딱하나.. 당시에 제가 살고 있는 삶의 테두리를 크게 바꾸지 않을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과 꽤 오래 연애를 했어요.. 배우자의 기본은 상호존중이 바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를 항상 존중해 줬어요..선생님..남친하고 문제 있으세요?



그녀는 처음으로 연애사를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서, 종종 시간이 남거나 여유가 있으면 우린 연애 이야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의지는 여전히 불타올라 복직 후에도 꾸준히 운동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와 인연을 맺은 기간 동안 남친이 자주 바뀌셨다. 말하지 않아도 선생님의 프사는 항상 알림처럼 업데이트되어 그간의 연애를 다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일상처럼 흐르던 어느 날..



-선생님, 오늘 얼굴이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세요? 참, 속초 휴가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서 피곤하구나..

-싱댁님.. 아.. 저.. 임신했어요.. 하하하


아.. 뭐.. 이게..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2년 가까이 그렇게 죽어라 준비해도 안 되었던 그 임신 말인가? 내가 퇴사와 맞바꾼  그.. 내가 아는 임신?.. 그니까.. 혼전임신.. 오히려 내가 너무 놀라고 당황했다. 


-아이고.. 선생님.. 축,, 하.. 해요.. 그럼 그 아빠 될 분은.. 그때 그 어리다는 그분 아니다, 헤어지셨다고 했나..

-아.. 그 사람 아니고, 동갑이고요.. 만난 지 3개월 되었어요..남친도 임신 사실 알고 기뻐해서 우리 다음 달 1일에 결혼하기로 했어요..^^


불과 한 달 뒤 결혼식을 한다고 했다.. 축하한다고 입으론 말했지만.. 마냥 축하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도 힘든데, 임신까지.. 기쁘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고.. 며칠 전까지 이제 30넘은 선생님은 결혼은 서른 후반에 할 거라고 임신은 정말 아직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는데.. 오늘 그녀의 표정은 걱정보다 기쁨만 보였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뭔가 안 편하고 걱정이 앞설까.. 뭐라고 튀어나오려고 하는 말을 겨우 누르고 몸도 안 좋으신데, 오늘 운동은 여기 까지만 하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임신 4주.. 정말 조심해야 하는데 운동을 하며 가리키는 이 직업이 괜찮을까?.. 곧 입덧이 시작될 텐데.. 커피를 마시는 선생님 아니 아기는 괜찮을까.. 그날 이후 난 계속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불과 다음 날 선생님은 임산부나 다름없었다. 먹지도 못하고 감정 기복에 너무 힘들어했다. 난 개인적으로 선생님이 레슨 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 앞섰지만, 그녀는 그냥 힘든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결혼을 앞둔 신부라 하기에 임산부임이 사실이고.. 얼굴은 너무 형편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웨딩 촬영 준비로 목요일 레슨을 빼자고 했다. 과제 준비와 창업으로 정신이 없던 터라 나는 화요일 레슨을 빠지면서 결국 한주를 통으로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주가 지난 화요일..



주차장에 선생님의 차가 보여서 반가워 인사하려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모르는 척하고 레슨실로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항상 먼저 와서 담소를 나누었는데, 시간 딱 맞춰 올라오셨고, 데스크 원장님과 인사도 하지 않고 바로 오셨다.. 정말...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셨다..



-선생님~~ 아이고 웨딩촬영 힘드셨구나.. 얼굴이 말이 아니네요.. 몸도 힘드셔서 더  그런가 봐요

-싱댁님.. 저.. 유산했어요.. 아... 그리고.. 파혼했고요..

-잘하셨어요. 파혼하셨는데 아기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선생님, 괜찮으세요?

뭔가 텀을 두고 말을 하면 그녀가 울 것만 같아서 끝말을 물고 말을 내뱉어버렸다.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선생님, 몸은 어때요? 오늘 왜 나오셨어요? 많이 힘드시죠?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예비남편은 임신과 동시에 급변하는 자기 상황과 정상이 아닌 예비신부의 심경의 변화가 사랑이 변했다로 결론지 우며 원인은 그녀에게 있다며 매일같이 감정 다툼을 했다고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늦은 밤까지 수업을 병행하던 그녀는 지난 주말 하혈을 하고 월요일 소파 수술을 했고, 다시 학원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대타가 없어서 화요일부터 수업을 나왔다고 했다.. 잔인했다.. 모든 것들이..



그녀는 다소 흥분되어 나쁜 놈의 만행을 퍼부을 때도 기운이 넘쳤지만, 유산을 이야기하면서 펑펑 울었다. 우린 그렇게 밖에 누가 있었던지도 모르고 한참을 부둥켜 울었다. 괜찮다고 힘내라고 시작한 나의 유산 경험을 이야기하며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주저리 주저리 위로랍시고 공감을 가장하여 한참을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에.. 그만 말을 멈췄다.. 앗불싸.. 이건 아닌데.. 내 이야기가 공감이 아닌데.. 우린 다른데.. 그냥.. 들어만 줄걸.. 잘했다.. 다 잘했다.. 힘내라고만 할걸..  



-싱댁님.. 고마워요.. 많은 걸 배웠답니다.. 제가 너무 모든 걸 쉽게 생각했어요.. 이제 철이 드나 봐요.. 결혼을 그냥 어차피 할 건데,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요. 정말 제 생각이더라고요.. 다르더라고요.. 상대는.. 그리고 임신하면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는지 몰랐어요.. 이제 정말 임신 못할 것 같아요.. 하하..


정적을 끊고 그녀가 이야기를 이어 나가 주었다.


-그리고 저 학원 이번 달까지만 하려고요.. 이런 일 겪으니 주변 사람들의 태도 변화를 보게 되었어요.. 제가 좀 더 자립력을 키워야 할 거 같아요. 

-그만두세요? 그럼 저도 이번 달까지만 할게요, 어차피 선생님 아니면 저 여기 안 다니려고 했어요.

갑자기 의리라도 내 세워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함께한 지난 1년이 그냥 쌓은 것은 아니라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남편이 있어도 힘든 유산을 오롯이 혼자 이겨내야 하고 다시 또 인생을 이어나가야 하는 그녀가.. 대견하면서도 위태로웠다. 마지막 남은 수업까지 난 밤마다 그녀가 생각났다.. 편하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 주길 바랬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부터 내 마음이 자꾸 싱숭생숭했다.. 무슨 마음에 그녀가 수업할 맛이 날까.. 그녀에게 마지막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수업시간보다 일찍 학원으로 갔다. 그리고 선생님 이름이 쓰인 수업일지의 마지막 칸에 나는 먼저 사인을 했다. 메시지와 함께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제 선물은 휴강입니다.^^



선생님께 선물하고 싶었다.. 휴식을.. 잠시라도.. 나에게 그녀와의 마지막 수업은 휴식 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커피 한잔 사도 되냐고 물었다. 우린 그렇게 학원 근처 커피숍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좀 먼 곳에 학원에 원장으로 간다고 했다. 여전히 월급쟁이지만, 그래도 원장이라 이제 여기저기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았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꺼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선생님의 인생에 한 부분 함께한 시간이 있어서 감사했고, 운동 예쁘게 잘 배워서 즐거웠다고도 했다. 가장 젊은 날을 사는 선생님이 부럽고, 앞으로 더 펼쳐질 일만 남은 선생님을 응원한다고 했다. 



이제 절대 아무나 만나지 말고, 자신을 더 강하게 키우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단단한 사람이 되길 바라고,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힘들어도 자신을 들여다보며 마주하고 이겨내서 다음에 만날 때 지난 일처럼 이야기 나누길 바란다는 언니 같은 조언은 묻어 두었다.



나중에 아들을 꼭 한번 데려오라고 했다. 이제 그래도 원장이니까요 라면서.. 우린 그렇게 웃으며 헤어졌다..

누군가의 가장 힘든 시간은 나를 통해 공감하고, 그렇게 내 인생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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