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릭 Dec 13. 2020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 느리게 가는 중입니다>, 셀프 추천합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한 미팅이 잡혔다. 미팅 장소는 집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초행길이다 보니 넉넉하게 2시간을 잡고 출발했다. 약속시간은 오전 10시였는데 집에서 8시쯤 나왔다. 평소에는 시간에 딱 맞춰서 헐레벌떡 출발했던지라, 이렇게 여유롭고 가벼운 발걸음은 내게 드문 일이었다.

백수 생활 10개월 만에 드디어 내게도 일이 생기나 싶어서 설레고 긴장되었다. 첫 미팅이니까 면접이라면 또 면접일 수도 있는 자리였다.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출근길 만원 버스는 반갑지 않았다. 사람들로 꽉 찬 버스에 몸을 싣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오늘은 차가운 오전 공기도 마냥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설레는 아침이었다. 여유란 좋은 거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 역 안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런데 개찰구 앞에서, 내가 타려는 방향의 급행 지하철이 당역 도착으로 뜬 게 아닌가. 서로를 앞다투며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같이 달렸다. 뛰지 말라는 에스컬레이터 계단도 사람들을 따라서 열심히 뛰어 올라갔다. 분명 좀 전까지 여유를 만끽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갔던 것이 애석하게도 내 앞에서 전철 문이 닫히고 말았다. 허무했다. 주변 사람들이 달리니까 왠지 모르게 나도 달려야 할 것만 같아서 죽어라 달렸는데 그게 소용없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다음 열차 타도 넉넉한 시간인데, 미팅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침부터 힘만 뺐다. 에라이.



문득, 나만 이런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주변에 사람들이 달리니까 나도 달려야 할 것 같아서, 쉬어가거나 천천히 걸어가면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살아온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발맞추기 위해서 어느새 '나'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돌아보니, 껍데기만 남은 삶.

잠시 멈춰서 나를 돌아보려면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달리기를 멈췄을 때 길고 어두컴컴한 이 터널은 언제쯤 끝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고인 물 같기도 하다. 하지만 멈춤은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바쁘게 달려가기만 하는 내 삶을 돌아보며 멈추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건 결코 뒤처지는 게 아닌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며 내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그 시간은 잃어버린 '나'를, 누구와 비교할 필요가 없는 '나'를 찾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아픔에 익숙해져서 삶이 무기력해진 당신에게, 현재 내 모습에 만족이 없어서 방황하는 당신에게,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 느리게 가는 중입니다>를 추천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rick1


나의 아픔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를 통해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아가 마음과 생각이 조금씩 치유되고 이제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당신이 맹목적으로 달리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후회와 허무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삶의 여유를 만끽하며 기쁘고 행복하기를, 나 또한 그러하기를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