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만에 그림을 시작했다

소소하게 즐기면서 오래오래

by 브릭

사실 오늘은 쓰려고 계획한 글이 있었는데, 도무지 써지지가 않아서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하고 마음을 내려놨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데 억지로 쥐어짜 내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활동적인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활동적인 게 뭐가 있으려나. 구직활동...? 잠시 생각했다가 공고를 보는 것으로도 기가 빨려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좀 더 에너지가 있을 때 봐야겠다고 미뤘다. 그러다 '그림'이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만화책도 좋아했고 웹툰도 좋아했다. 뛰어나게 잘 그리는 건 아니지만 좋아했다. 걱정 없이 몰입하는 그 시간이 마냥 즐거웠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진 노트에 끄적이는 걸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고등학교를 가면서 끄적거리는 걸 멈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학교 내신과 수능 공부만 생각하게 됐다. 대학을 가서도 시간은 많았지만 그 시간에 딱히 그림을 그리진 않았다.


그런데 작년, 글을 쓰고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많은 글과 그림을 만났다. 그림이 직업인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었다. 각자의 개성이 묻어난 그림을 보면서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브런치는 여러 방면에서 사람의 동심을 일깨워주고 꿈을 심어주는 공간인 것 같다. 그림은 그냥 그릴 수도 있겠지만 배워보고 싶었다. 아는 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온라인 사이트에서 그림 강의를 들었다며 언니도 들어보라고 권해줬다. 그 동생 덕분에 그림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됐다.




나에게도 맞는 그림 강의를 듣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벤트로 다른 강의를 구매하면 0원에 그림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연필그림이었다. 원래 들으려고 했던 강의보다 그림 강의가 더 듣고 싶었다. 이벤트여서 그런 것도 있겠다만. 좋은 기회다 싶어서 강의를 결제하면서 그림 강의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왕 할 거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 준비물 키트도 따로 구입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준비물은 1월 7일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시작하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그전까지 준비물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먼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계속 머릿속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마음이 바빴다. 왜 바쁜지도 모르겠는데 계속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새나님이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 걸 보고, 나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쁘다고 생각했지만 낭비하는 시간도 많았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그림은 영영 그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미룰 수 없었다.


왜 나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 그림 그리기를 미뤘을까? 취미로 소소하게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나중에는 내가 쓰는 책에 넣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야망(?)이 부담이 되어 쉽게 시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글쓰기는 나에게 즐거움과 동시에 고통을 주는데, 그림도 그렇게 된다면 너무 힘들 것 같기도 했다. 결국, 글도 잘 쓰고 싶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좀 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여전히 내 책에 그림을 넣고 싶다는 꿈은 있지만 그것도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천천히 되는 만큼 하기로 했다. 나의 글과 그림에 목표를 설정해두면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떤 것을 계속 성취해야겠다는 압박감이 있다면 쉽게 지칠 것이다. 글쓰기와 그림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림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즐기면서 오래오래 그리고 싶다.

따끈따끈한 오늘의 그림






표지 사진은 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이다. 지난달 상자 안에 보관해둔 것을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됐다. 과거의 내가 남긴 흔적을 마주하며, 소중히 그림을 보관했던 나를 발견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주변 사람에게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이렇게 내 모습에 동기부여를 받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어떤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고, 마냥 즐겁게 그림을 그렸던 학창 시절 미술 시간으로 돌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