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탄생한 위대한 작가

조지 오웰, 혹은 에릭 블레어가 내게 말했다 - 2부

by 별빛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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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인 조지 오웰(Grorge Orwell), 혹은 에릭 블레어의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우선 그의 탄생부터 이야길 해 봐야 한다. 1903년, 인도 벵골의 아편국 하급 관리 리처드 블레어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 블레어. 인도의 아편국 관리라는 아이러니는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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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중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인도의 "아편". 어찌 보면 "아편"을 통해 바이엘 사는 헤로인을 만들고, 모르핀을 만들며 의학에 큰 역할을 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편"이란 존재 자체는 식민지 착취의 수단이었으며, 영국으로 모든 재화가 흘러들기 위한 식민주의의 상징이었다. 결국, 아편을 통해 전쟁은 본격화되었다는 아이러니를 만든다.


인도 식민지의 하급관리 었던 아버지 리처드 블레어 - 그리고 에릭 블레어의 집안은 부유하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1904년 영국으로 귀국을 한다. 에릭 블레어는 그 또래에 비해서는 영리하였던 모양이다. 그 결과 1913년 사립 예비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을 하였지만, 귀족들과 브루쥬아를 위한 교육의 분위기 때문에 "지옥" 같은 삶을 산다. 그래도 에릭 블레어는 학업도 뛰어났던지, 1917년 다시 장학생으로 이튼 칼리지에 진학을 하였으나, 부조리한 삶에 염증을 느낀 모양이다. 그 결과 에릭 블레어는 공부를 하기보다는 독서에 몰두한다.

대학을 진학하고 싶었지만, 성적은 점점 떨어지게 되고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학을 포기하는 길 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유하지 않은 집안은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귀족들 위주의 대학 교육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 결과 에릭 블레어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 경찰 시험에 응시를 한다.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던 탓에 버마의 제국 경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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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제국경찰에서 이튼 칼리지 출신은 에릭 블레어가 유일했다. 에릭 블레어의 집이 부유하였다면, 혹은 학생 시절 부조리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분명 재능 있는 학생이 되었을 것이고,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위대한 학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의 부조리는 에릭 블레어를 연구실에 은둔하는 학자로 만들어두진 않았다. 부유하지 않은 현실. 그리고 인도 아편국에 근무하는 제국주의 최 하층의 아버지를 둔 에릭 블레어는 다시 인도의 제국 경찰로 시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에릭 블레어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똑같은 사람이었음에도 피부색 때문에 배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 자신도 영국에서는 상류층이 될 수 없었음에도, 똑같은 인간인 인도인과 버마인은 그 영국 사회의 영국인 보다도 더 하층민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인간보다 더 하찮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조리를 에릭 블레어는 5년이나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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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부터 1927년까지 약 5년간 제국 경찰로 근무를 하였던 에릭 블레어는 참 성실하게 생활을 하였던 듯하다. 그가 "동물농장"으로 성공하기 전까지, 에릭 블레어는 주급으로 14파운드를 벌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90명의 백인 경찰 밑에 약 1만 명의 버마인 현지 경찰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이었기에 에릭 블레어의 권력 또한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에릭 블레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은 시장 포화상태 속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시작했다. 자국 내 내수 시장의 한계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그 결과 유럽을 제외한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모두 착취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특히 벨기에 국왕인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영지였던 콩고의 현실을 바라보자. 콩고는 벨기에의 고무나무 플랜테이션으로 국왕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재산을 불리던 곳이었다. 그곳의 식민지 원주민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무를 채취하기 위해 고생하였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문화 동치는 기대할 수 없었다.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은 할당된 고무를 채취하지 못하면 약간의 채벌을 주었다. 바로 팔과 다리를 자르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팔과 다리가 아니라 자녀의 팔과 다리를 말이다. 이 당시의 콩고인을 찍은 사진을 보면 다 손이 하나씩 없는 사진을 보게 된다. 악어가 잘라먹거나 유행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레오폴드 2세의 개인 고무 할당량을 채취하지 못하였을 때 내리는 약간의 채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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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현실 속에 벨기에는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유럽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한 보따리씩 면세점에서 사는 초콜릿의 의미를 안다면, 그 초콜릿을 보자마자 분노해야 옳을 것이다. 이건 그 당시 말을 안 듣던 콩고인들의 손목을 빗 데어 만들었고, 우리는 그 달콤함을 여전히 초콜릿으로 치환하여 기쁘게 먹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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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ight.co.kr/news/338778




에릭 블레어는 식민지 경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돌연 사퇴를 한다. 이때의 생활을 쓴 글이 바로 "코끼리를 쏘다"이다. 담담한 수필 형식의 글이지만, 그 당시 제국주의자 백인으로써 느끼는 에릭 블레어의 절규는 끝이 없었던 것 같다. 이후 에릭 블레어는 이모가 사는 프랑스로 떠난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을 계속 살기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릭 블레어는 조지 오웰이 되었고, 그 유명한 르포르타주의 걸작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란 책을 쓰게 된다. (제목의 번역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 더욱 그럴듯하다.)


XL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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