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해군 사관학교 입구에서 형식적으로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앞으로 16주간의 훈련이 있을 그곳이었으며, 그동안 흔하고 익숙했다 생각했던 것과 멀어진다는 것 자체도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난 남들보다 조금 늦은 27살이란 나이에 군대에 입대를 했다. 일부는 24살, 그나마 조금 빨리 온 친구들은 23살도 있겠지만 장교가 되기 위한 사관후보생은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지원하여 들어갔기 때문에, 20대 초반의 앳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박사학위를 마치고 30살에 입대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사병 생활을 마치고 군생활이 적성에 맞아 재입대를 결심한 일명 "기립가시"들. 부사관 생활을 하다 사관후보생으로 넘어온 사람 등등 각자의 사연을 마음속에 담아둔 채 군대라는 조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난 특별한 사연은 없었다. 입대하기 몇 달 전까지 대학원생이었다. 그전에는 대학원생이기 이전에 대학생이었다. 파릇한 추억의 연애담도 없었으니, 나의 입대를 슬퍼해 줄 여자친구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그 흔한 군 입대 전 여자친구와 추억을 남기기 위한 여행 또한 당연히 없었다. 친구들은 이미 군대를 전역하고, 취업 준비를 하거나 이미 취업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들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하루하루 다람쥐 챗바퀴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 혼자만 동떨어진 채 비생산적 활동만을 하며 살아갔을 뿐이었다. 그러니 나의 입대를 아쉬워하는 친구도 없었고, 기다려줄 애인도 없었으니 너무나 쉽게 입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난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내 입대를 반대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었다. 나 한 명이 빠지면 분담하게 될 일이 많아졌을 선배 대학원 생과 박사님. 어차피 그 두 명이 몇 년간 도맡아 하던 일을 내가 잠시 2년간 덜어주었으니, 그들의 삶은 다시 2년 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 입대를 너무나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지도교수는 "잘 다녀와라."라는 상투적인 인사도 없이 마지막 날까지 악담을 담은 문자메시지와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 그와 계약 관계상 난 등록금을 납부했지만, 그 교수에게서 어떠한 것도 배운 적이 없으니 이미 계약관계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던 관계였음을 그는 아직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입대 하루 전날 조용히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 2시 입교였으니, 새벽 일찍 출발하면 된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잠이 오질 않았다. TV를 켜면 볼 수 있었던 무한도전이나 다른 가요 프로그램. 귀에 항상 꽂으면 들을 수 있었던 음악들도 이제는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새벽 일찍 어머니는 날 깨웠다. 아침 식사를 차려줬지만, 애초에 아침식사를 즐겨 먹지 않았던 지라 물 한잔만 들이켰다. 내 입대 순간을 바라볼 사람은 오직 어머니 한 분뿐이었다. 아버지는 일을 나가셔야 했으니, 어머니 손을 잡고 가는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기차를 타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진해에 도착했다. 입교 시간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근처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이동을 했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한 곳인 순대국밥집이 있어 어머니와 나는 말없이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나 말고도 머리를 바싹 밀은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아마 나와 똑같이 장교교육대 입교를 준비하는 동기들 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나와 어머니는 유일한 메뉴였던 순대국밥을 두 그릇 시켰다.
"순대도 먹을래?"
국밥 한 그릇도 간신히 먹을 거란 생각이 들어, 순대는 괜찮다고 이야길 했다. 아버지는 항상 어딜 가더라도 주위에 순대국밥집만 찾았다. 여행을 가더라도 항상 똑같았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순대국밥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잃어버리신 듯 아버지는 늘 항상 순대국밥만을 찾으셨으니, 나도 자연스럽게 순대국밥을 어린 시절부터 접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국밥에는 늘 소주 한 병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오늘 나는 소주 없이 맹물에 먹어야 한 다는 것이 다른 모습이었다. 수능이 끝났을 때도 순대국밥에 소주였고,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쁨에도 아버지는 순대국밥에 소주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가족끼리 그 흔한 여행을 가 본 적은 없지만, 그나마 근교로 나들이를 갈 때도 아버지는 순대국밥집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 날, 내가 군대에 입대하는 그날도 순대국밥은 떠나질 않았다. 단지, 아버지와 소주 한 병이 자리를 잡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3분 정도 기다렸을까? 식당 사장은 심드렁하게 순대국밥 두 그릇과 김치와 깍두기 각 한 접시, 그리고 새우젓 통을 던지고 돌아선다. 보통 보던 순대국밥과는 다른 누런 국물이 눈길을 끌었다. 마치 콩가루를 풀어놓은 듯 한 국밥이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파와 다진 양념을 넣고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는다. 익숙하지 않은 맛. 정말 맛이 없었다. 콩 비린내와 돼지 사골의 비릿한 냄새. 그리고 돼지 머리 고기와 순대의 묘한 냄새가 어우러져 다시는 먹기 싫은 그런 순대국밥이었다. 억지로 한 두 숟가락을 먹으려 했지만, 도무지 먹을 수 없었다.
"왜? 맛이 없니?"
솔직히 이야기했다. 너무 맛이 없어서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도 똑같은 이야길 했다. 민간인으로서 마지막 식사는 현실에서 최악이라 이야기하고 싶은 정말 맛없는 순대국밥 두 그릇으로 마무리를 했다. 어머니는 돈이 아까웠는지 억지로 한 두 숟가락 더 입에 넣었지만, 억지로 먹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던지라 그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반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군 입대 전 마지막 식사를 할 수 있던 유일한 곳이었던지, 그 식당의 손님은 빈자리 없이 꽉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물을 한 잔 따라 입에 대기 시작했다. 물에서도 콩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사회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이 이렇게 입에 대기 조차 민망한 음식이라 생각하니 어머니와 난 순간 웃음이 나왔다.
"고깃국이 맛없을 수 없는데... 여긴 정말 요리를 못하나 보다."
우린 간신히 식사를 한 뒤, 교육대 정문을 지나갔다. 그때 마침 어머니의 전화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나였다. 누나는 어머니와 10초 정도 통화를 한 뒤, 나를 바꿔달라 한 모양이었다. 입대를 지켜보지 못한 누나가 잘 다녀오라는 인사라 기대하고 전화를 건네받는다.
"야! 컴퓨터 비번 뭐냐? 니 컴퓨터 이제 내가 쓴다."
난 순간 오르는 짜증을 참고, 컴퓨터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누나는 내가 오늘 입대하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관심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내 컴퓨터를 자기가 갖게 된다는데 기쁜 모양이었다. 나보다 3살 많았던 누나는 전문대를 졸업한 뒤, 그 이후로 쭉 집에만 있었다. 하루 종일 인터넷 게임만 했으나, 그나마 내가 아는 게임은 "리니지" 하나뿐이었다. 게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난 누나와 같이 게임을 해 볼 생각도 없었고, 누나의 게임 생활을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내 공부에 방해만 되지 않았으면 할 뿐이었지만, 반대로 누나는 방에서 불 켜놓고 공부하는 내 모습이 게임에 방해가 된다고 늘 짜증만 냈을 뿐이었다. 이제 누나는 내가 사라지고 나니, 자기 혼자 넓은 방을 차지한다는 것 - 그리고 그 방에서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을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내가 입대하는 그 순간을 가장 마음속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 단 한 명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늦은 나의 군 입대를 위로해 줄 리 없었다. 그저 이제서라도 군대에 입대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한심한 듯 쳐다봤을 뿐이다. 잠깐 시간을 내 소주 한 잔 하며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대학 동기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이제 내 옆에는 그저 내 입대를 슬퍼하는 어머니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제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다. 우린 위병소를 통과하고 연병장에 대기를 했다. 그때 마침 칼 주름에 빳빳한 군복을 입은 한 중위가 연병장의 마이크를 잡으며 이야길 했다.
"금일 입대를 하게 되는 사관후보생 여러분들은 연병장 앞으로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웅성 웅성 대며, 머리를 민 사람들 혹은 아직 밀지 않은 사람들 등등 이제 막 군 입대가 예정된 사관후보생들은 연병장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질서를 지켜 2열 횡대로 줄을 서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횡대가 뭔지 종대가 뭔지 몰랐다. 그 주위에는 "교관"이라 적혀 있는 철모를 쓴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 들을 선글라스까지 써서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자. 모두 2열 횡대로 줄을 서 주시기 바랍니다. 질서를 지켜주세요."
우리는 2열 횡대인지? 종대인지? 모른 채 줄을 섰다. 그리고 그 줄을 선 상태로 구부정하게 혹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었다.
"부모님, 그래고 애인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 - 아들 그리고 딸들은 오늘 부로 자랑스러운 해병대 장교가 되기 위해 보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안전하게 책임지고 훌륭한 해병대 장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지켜드리겠습니다."
부모님들은 이 방송이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저 내 아들, 아니 내 딸이 어디 있는지 계쏙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TV에서 본 대로 큰 절을 하고 연병장을 통해 내무실로 들어간다. 그 순간 우리를 보던 군인들은 큰 소리로 외친다.
“빨리빨리 안 걸어? 니들이 아직 민간인인 줄 알아? 너희들은 군인도, 민간인도 아니다. 너흰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
그렇게 빡빡했던 16주의 훈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