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너무나 부담스러워!

by 별빛바람

* 들어가기에 앞서


본 연재글은 시작할 때와 동일하게 카메라를 가지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존재들을 사진으로 담아내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부는 어느 한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시작된 카메라를 왜 들고 다녀야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꼭 세상에 아름답고, 특별한 존재만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찍기 위한 발걸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당시 저와 긴 시간 통화를 하였던 선생님은 직접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우연히 카카오톡의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연락처를 나누게 되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항상 앞만 보며 달려왔던 제가 카메라를 가지며 잠시 주위를 둘러보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기가 두려웠던 선생님의 생각을 조금씩 열어보고자 나누었던 이야기에 저의 생각과 실제 사진을 조금씩 덧 붙여가며 시작했던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 그 선생님과의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현업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걸 확인하였고, 가끔씩 카카오톡을 통해 안부를 나누며 조금씩 발전하여 자녀들과 서울에서 전시회를 보러 가곤 한다 하시니 저 때문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순간 저도 불과 몇 년 전 쉽게 밖을 나가지 못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되었는지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되었고, 그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찍으며 주위의 사소한 것들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가 찍는 사진의 주제는 항상 똑같습니다. 집 주위부터 시작하여, 우리 눈에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쓰레기통이 될 수 있고, 이제는 열기가 사라진 연탄재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론 빨래가 걸려있는 빨랫줄이 될 수 있고요. 그 모든 것들이 제가 주위를 바라보며 남기는 사진의 주제입니다. 즉, 우리 주위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특별한 존재였지만,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우리 주변에 항상 같이 있으면서 사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존재들로 다가오게 되지만, 사진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고자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 글은 여행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심리적인 불안감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희망을 주는 글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부각하고자 하는 글입니다.


"억지웃음을 만들어내는 3류 코미디와 같은 글."


누군가 제가 써 내려간 글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덧글로 남겨주셨습니다. 네. 맞습니다. 3류 코미디와 같은 글일 수 있지만, 때론 우리 모두가 항상 스펙터클하며 아름다운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남지는 않을 겁니다. 연탄재가 하얗게 된 것은 그저 난방을 위한 용도였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 연탄재가 없었다면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그분은 잠시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분에게 연탄재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낸 고마운 존재겠지요. 제가 바라보고자 하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존재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가치에서 잠시나마 행복함을 느꼈을 겁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글은 여행기가 되겠네요.

카메라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했을 그 가치를 사진으로 남기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그 소중함을 글로 남기는 과정.


이 글은 그 소중함을 남겨보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여행은 참 즐겁습니다. 새로운 것을 바라보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해 보기도 합니다. 평소에 먹기 힘들었던 음식들을 먹기도 하고, 잠시나마 일탈을 경험해 보기도 합니다. 언제나 다람쥐 챗바퀴와 같았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보고, 내가 느끼고 싶었던 것들만 바라봅니다. 당연히 먹고 싶은 것들만 먹게 되고, 사고 싶은 것들만 사지요. 잠시간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만큼은 나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그 순간만큼 힘든 순간이 없습니다. 해외여행을 간다면 여권도 준비해야 하고, 비행기 티켓도 예매해야 하며, 당연히 숙소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지요. 숙소를 잡았으면, 여행 일정에 맞추어 어떻게 여행을 가야 할지 계획을 짜야합니다. 공항에 내려서 숙소까지 어떻게 가고, 숙소에 도착하고 나면 첫째 날은 어딜 가야 하며, 둘 재 날은 어딜 가야 하는지 목적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야 할 목적지가 있으면 어떻게 가야 할지도 정해야겠지요. 요즘은 우버나 그랩을 타고 저렴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교통비가 비싼 나라라면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그 방법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더 힘든 순간은 여행 가기 직전입니다. 커다란 캐리어에 여행 기간 동안 입을 옷부터 시작하여, 필요한 물건들을 담아둬야 합니다. 혹시라도 어린아이가 있다면 분유와 기저귀는 필수입니다. 금방 커다란 캐리어가 꽉 차게 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모든 기능을 다 하긴 하지만, 가끔은 고프로와 같은 액션 캠을 챙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아니면 카메라를 챙기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곤 합니다. 스마트폰은 지도가 되기도 하고, 택시를 이용하는 좋은 예약 수단이 되기도 하며, 순간 말이 막힐 경우 통역을 해 주는 멋진 비서 역할도 합니다. 그리고 종종 멋진 풍경을 바라보게 되면 사진을 찍는 역할도 하고, 동영상도 담아주기도 하지요. 그러나 스마트폰이 너무 많은 기능을 가지게 되면서 "사진"에 대한 기능은 점점 뒤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여행 갈 때 디지털카메라가 필수품이었고, 싸이월드에 여행 사진과 본인의 셀카를 올려놓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였지만 이젠 사진을 담기 위해 여행을 가는 행위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준비할 때 카메라를 챙기는 건 이제 불필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진을 안 찍는 것은 아닙니다. 공항에서, 혹은 여행지 곳곳에서 사진을 찍곤 합니다. 당연히 주변의 풍경보다는 나와 함께 여행을 동행한 사람들을 남기기 위한 용도로 많이 사용합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인증숏은 내가 그곳을 바라보며, 감동받았던 순간을 남기기보다는 단지 내가 그곳에 다녀왔다는 "인증"을 하기 위한 용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번 겨울 방학 때 디즈니 랜드에 가서 미키마우스를 봤어."


단지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그곳을 다녀왔다는 증명서 용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은 단지 "나 여기 다녀왔어."라는 목적의 용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 여기서 맛있는 음식 먹었어." 혹은 "우리 여기 가봤어."라는 용도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사진의 기능과 용도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 여행지에 다녀보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분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소수이지요. 이젠 어르신들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곤 합니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찍으며 "내가 바라본 느낌" 혹은 "감정"을 사진으로 남기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젠 그 마저도 사라지기 시작하였지요.

그러다 보니 여행의 목적도 점점 퇴색하는 느낌입니다. 내가 다녀왔다는 것을 인증하려면 어디에 남겨야 할까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남기곤 합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이미 멋진 곳을 다녀왔다고 인증을 남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사소한 곳을 남기면 안 된다는 중압감 때문에 무언가 특별한 곳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나 자신은 사라지고,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 혹은 인증을 하기 위한 목적의 여행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종종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곤 했지만, 그리 인기가 많은 채널이 아니다 보니 얼마 안 돼 사진 올리기를 포기했습니다. 팔로워도 많지 않았고, 사진을 올려도 크게 반응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잠깐 블로그를 해 보기도 하고, 동호회에 사진을 올렸지만 크게 인기를 끌 만한 사진을 남기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사진은 큰 의미를 남기며, 감동울 주는 사진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사진을 올리며 늘 남겨두는 일관된 주제가 있습니다.


"우연히 길을 걷다, 내 눈에 띄는 그 어떤 존재를 사진으로 남기면 어떨까?"


주위를 돌아보며, 남기는 사진 자체는 너무나 평범한 것들이 있습니다만, 그 사진을 찍기 위한 과정은 평범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카메라를 사고 나서도 한 달 가까이 어떻게 밖을 나가야 할까? 고민을 하곤 했습니다. 그저 무엇을 찍어야 할지도 고민이 많았거든요. 어쩌면 그 당시 멋진 펜션을 빌려 바닷가의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남기는 사진 한 장, 혹은 멋진 펜션에서 준비한 맛있는 음식들의 준비 과정을 바라보며 한 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쉽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만 하더라도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갈 사람도 없었고, 그저 혼자 마트에 가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조심히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문 밖을 나왔을 때 카메라를 들고나가기로 마음먹은 거죠. 평소에는 목적지만을 향해 걸어가다 보니,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바라보지도 못했던 그것들을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아... 저곳은 내가 평소에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곳이구나."


"붕어빵 아저씨는, 낮에 장사를 하지 않을 땐 저곳에 놔두시는구나."


분명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글로 쓰고 남기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보니, 사진과 함께 무언가 남기다 보면 분명 큰 의미가 있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의 한 순간을 마치 퓰리처 상을 받을 만큼 멋지고 스펙터클한 순간을 남기고자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남기는 멋진 글 한 덩어리. 그거면 충분한 의미를 가지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문 밖을 나선 순간, 따뜻한 햇살과 함께 보이는 풍경은 스펙터클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저 제 주위에 있었던, 무심코 지나쳤던 그 모든 것들이었지요. 단지 우리가 지나쳐왔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그동안 눈길조차 주지 못했던 순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저 정신없이 뛰어갔기 때문에 혹은 출근 시간에 늦기 때문에 정신없이 뛰었던 그 순간. 혹은 저녁에 반주 한 잔 걸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니 지긋이 바라보는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단지 주위를 바라보며, 그 모든 것들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여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우리 주위에는 참 신기한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다기보다는 그저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풍경들이지요.


그러니 잠시 문 밖을 나가기만 하더라도 멋진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경험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닌, 그저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여유를 찾으며, 그 주위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 그 순간을 위해 다가가는 것. 그것이 여행이라 생각하고 문 밖을 나섰습니다.


그러니, 제가 떠날 때 꼭 필요한 것은 카메라 하나밖에 없었지요.


L1000093.JPG 처음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갔을 때 바라본 마을 버스정류장
L1000107.JPG 찰옥수수와 뻥튀기를 파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질 못했으나, 주말이라 잠시 쉬지 않았을까?
L1000138.JPG 늘 지나가던 그곳의 우체통과 공중전화. 항상 정신없이 뛰다 보니,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L1000151.JPG 이젠 신문을 느긋하게 읽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제목만 읽는 시대가 되었다.
L1000152.JPG 이젠 혈액원도 사라졌다.
L1000217.JPG 이젠 열지 않은 구멍가게에 마지막 남은 흔적. 담배를 판다는 간판마저 점검 흔적이 사라져 간다.
L1000236.JPG 추운 겨울 핫바와 어묵을 파는 노점상 앞에서...

여행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내 눈을 통해 지긋이 바라보는 것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단지, 우리가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놓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순간을 향해 한 번 떠나보는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능하다면 사진 한 장 남겨보는 거지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