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저, "전쟁으로 보는 세계사" 서평
어린 시절 전쟁 영화가 참 멋있고 재밌다고 생각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나쁜 독일군을 무찌르는 정의로운 연합군의 모습. 혹은 나쁜 북한군과 싸워서 이기는 정의로운 국군의 모습. 독일군의 멋진 제복과 정모를 보며 알게 모르게 군인에 대한 동경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게 된 SF 소설인 "은하 영웅전설"의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의 지략. 그리고 친구들과 모여서 컴퓨터 한 대에 둘러앉아 열심히 지략을 짜 내던 코에이의 "삼국지" 그러고 보면 전쟁은 우리에게 일종의 유희와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수많은 전쟁들 속에서 머릿속 기억에 남는 걸프전은 아버지 부시와 후세인과의 대결이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CNN을 통해 TV로 생중계되는 전쟁의 모습. 그리고, TV의 앵커가 항상 속보임을 강조하며 현재는 어디까지 점령했고, 현재는 어디까지 밀리고 있다는 상황. 쿠웨이트의 유전에 테러행위를 한 이라크 군에 대한 규탄 속에 특파원의 사파리 재킷을 입은 모습은 마치 TV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사실 전쟁이 우리에게 막상 와닿지 않는 것은 전쟁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실제 전쟁에 대한 이미지는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씬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종군기자인 로버트 카파의 사진 촬영으로 더욱 유명한 이 장면은 무언가 정형화되고 스펙터클 하고, 광활한 평원에서 규칙적으로 싸우는 모습이 아닌 무질서하며 피아 구분이 불가능한 그런 혼란의 모습으로 처음 이미지가 각인되기 시작한다. 그 이후 "에너미 엣 더 게이트"에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혹은 "글래디에이터"의 초반 전투 씬 등. 전쟁은 더 이상 정형화된 이미지가 아닌 무언가 규칙적이지 않고 무질서함으로 다가왔던 것도 "미디어"의 역할 때문이 아닌다 싶다.
먼 옛날로 돌아가 보자. 수많은 영화에서 전쟁의 무질서함을 통해서 전쟁의 스펙터클함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저 멀리 신기루 같이 보이는 사막 한가운데서 일열로 늘어서 낙타와 말을 타고 달리는 아랍 연합 부대의 모습. 혹은 로렌스 올리비에의 "헨리 5세"에서 처럼 전쟁은 참으로 낭만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던 시절도 있었다. 기사들의 규범에 의한 전쟁은 공중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붉은 남작은 비행기는 격추해도 사람은 격추하지 않는다는 낭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두 전쟁의 이미지 속에서 전쟁을 통해서 겪게 되는 민간인의 고통은 결여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에너미 엣 더 게이트"에서 소비에트 치하의 고통받는 민간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긴 하였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오히려 "은하 영웅전설"에서는 몇십만이 죽는 상황을 한 문단으로 표현하니 마치 게임 속에 빠진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다가오고 각인되어 있는 전쟁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전쟁의 실상은 너무나도 참혹하다.
과거 코소보 내전의 학살. 인종 청소의 한 장면에 대해서 다루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론에서도 침묵한 상황이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가에서 발생하는 내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침묵을 하고 있다. 시리아의 내전. 중동의 IS와의 격전. 그 많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전쟁을 선별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히려, 백인과 백인의 전쟁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수천 Km가 떨어진 우리나라에서 조차 실시간 유튜브 및 TV를 통해 속보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실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무차별 폭격을 한 그 상황은 단신으로 나왔을 뿐이지만 말이다.
우리가 선별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지도 반년이 다 돼가고 있다. 서방의 여론은 선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탐욕을 벌이는 악한 러시아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단순히 이 전쟁을 서방과 러시아와의 물리적 충돌로 보는 것 이상으로, 전쟁으로 인해 벌어진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할 수 있다. 항상 옳은 판단을 할 것이라 믿어왔던 미국의 판단 착오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진행을 위한 빅 스텝. 항상 진보의 길을 갈 것이라 생각했던 유럽의 행보 등 전쟁의 양상은 국제 관계를 새롭게 바꿔 놓았다.
초기의 전쟁 양상은 러시아의 대 실패인 듯 보였다. 수많은 군인이 죽어가고, 수많은 전쟁 물자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전쟁을 규탄하기 위해 경제적 제재에 동참한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계 3위 곡물 생산 지역인 우크라이나의 밀과 옥수수의 수출길이 막히게 되자 세계 여러 나라의 식량 위기가 닥쳐온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상상하게 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세계 경제는 위기로 다가오게 된다. 특히, 곡물 자원 중 하나인 옥수수 수급의 불균형과 밀 수급의 불균형은 개발 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식량 위주로 점점 다가오게 된다. 두 나라의 전쟁이 이렇게 세계 각국의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역사는 다양한 사건 속에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사건의 "선별작업"이라 했다. 수많은 상황 중 현재의 사건도 우리는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특히 역사적 중요 맥락에 대해서도 학자로서, 작가로서 선별작업을 통해 역사의 중요함이 하나의 흐름으로 선택되고 각인되게 된다. 이광희의 "전쟁으로 보는 세계사"는 어린이 잡지의 기사를 작성하던 기자 출신답게 학생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쓰인 역사 소개서이다. 다양한 역사적인 사건 중, 세계 각국의 역사의 흐름 중 전쟁이란 흐름을 통해 역사의 패권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려나가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역사적인 전쟁들 중에서 동양과 서양의 최초 만남인 페르시아의 전쟁과 그리스의 패권이 결정되는 필로 폰테 소스 전쟁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양을 아우르며 각 국가의 전쟁을 통한 세계사의 흐름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물론, 이 책의 주요 독자는 세계사를 막 공부하기 시작한 중학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양상을 복잡한 정치 관계로 풀어내기보다는 역사의 흐름에 따른 인과관계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에 막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전쟁"이라는 소재는 참으로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훌륭한 영웅담 속에 펼쳐지는 승리와 선택의 역사는 자칫 지루하기 쉬운 역사의 흐름에서 흥미를 유발하게 만든다.
전쟁의 역사는 한 국가를 뛰어넘어 세계 역사 흐름의 중요한 틀을 차지한다. 실제로 우리의 역사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한반도의 식민지배가 일본으로 결정되었으며,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의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 등 전쟁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흐름을 바꿔놓은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그 전쟁의 측면은 한 편으로는 정치적인 관계에서 발생했을 수도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이유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제1차 세계대전의 경우 식민지 지배 이후 상품 판매를 위한 시장 개척의 목적으로 세계대전의 양상으로 발생하였으며, 이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석유 패권에 따른 전쟁의 양상으로 발전해 나가듯, 경제적 이유도 또 하나의 측면에서 전쟁의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광희는 수많은 전쟁 중, 세계에서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 전쟁에 대해 여러 단계를 통해 나누어 정리를 하게 된다. 특히, 중세 봉건사회의 교황과 봉건 영주의 세속적 욕망에 따른 성지 쟁탈전의 상황에 대하여 1차부터 3차까지 담담하게 그려나가는 묘사는 한 편의 슬라이드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해 준다. 결국 전쟁은 전쟁 당시의 상황에서는 고통뿐이 없겠지만, 실제의 상황에서는 폭발적인 역사의 변화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본 책은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굵직한 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지금 시점에서 전쟁을 통한 역사의 움직임을 인지하는 것 또한 국제 역학 관계의 변화를 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