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대기업 현황의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회사의 수가 10개가 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새벽에 올라온 글에서 보여주는 회사의 리스트는 33개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대기업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우리나라 기업 전체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33개가 3,300여개의 회사를 나타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분명 해당 회사 밑에는 1차 혹은 2차 벤더 회사가 속해 있을 것이며, 그 밑에는 또 다른 하청 회사가 속해 있을테니 말이다.
그 보다 가슴 아픈 현실은 이 글이 "유머 게시판"에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과연 웃으며 넘길 수 있는 현실일까? 한 가장(엄마가 되었든, 아빠가 되었든)이 실직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유머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겠지만, 그 현실은 바로 누군가의 비극이 또 다른 누군가에는 웃음이 되는 현실이 또 다른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유머 극장의 한 장면이 되어가고 있다.
예전 글에서 이야기를 하였듯, 글을 쓰는 나도 대기업의 주요 보직을 경험하였으며, 승부수를 띄우고자 대기업의 자회사로 전배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자회사는 여러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이슈가 겹쳐저 최근 폐업 결정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나는 그 회사가 폐업결정을 하기 전 희망퇴직이라는 절차를 거쳐서 퇴직 위로금이라는 적절한 보상과 함께, 평생 하고 싶었던 업종으로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지만 나 처럼 이렇게 모든 것을 부드럽게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얼마전 진심으로 존경하던 이전 회사 담당님에게 전화가 왔다.
"정군. 이제 나도 퇴사를 하게 되었어."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이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회사는 2년 전부터 희망퇴직을 받아왔으며, 여러 정치적 리스크를 해소한 그 순간 폐업이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폐업이라는 결정이 내린 그 순간부터 회사는 급여를 책임질 이유도, 퇴직금을 책임질 이유도 없었다. 단지 주요 보직자 몇 명의 급여만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었다. 2년전 담당님 밑에 리더 직급을 수행하며, "희망 퇴직"의 순서를 정하며 팀원들을 어떻게 내보내야 할지 의견을 나누곤 했었다. 난 그 일을 쉽게 수행할 수 없어, 제일 먼저 그 이야기를 팀원들에게 전달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남짓입니다. 3개월 안에 결정을 하게 되면 근속 연수 X 1개월 추가 급여를 지급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더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거기에 더해 3개월의 추가 위로금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팀원들이 각자 떠날 수 있는 길을 알아봐 주기 시작했다. 우선 이직을 희망하는 팀원과 다른 계열사로 전배 가길 원하는 팀원들을 나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난 술 영업을 하며 그 인원들의 갈 길을 챙겨주었다. 다행히 내 밑에 있던 팀원 5명은 모두 이직 혹은 전배가 결정되었고, 희망 퇴직을 결정하기로 한 날 함께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날 함께 먹었던 참치회와 순대국과 소주 여러병은 다음날 숙취로 되돌아 오긴 했지만 모두들 좋은 길을 떠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마지막 인사가 되기는 충분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와 담당님의 거취였다. 팀원들을 전부 떠나보내고, 그 중 일부는 정치를 선택해 더 높은 임원과 정치적 결탁을 선택한 한 직원은 회사 내에서는 "암내 풍기는" 짓을 한다며 수군덕 대곤 했다. 불과 몇 달전 전략기획 팀장과 서로 머리 끄댕이를 잡아댕기며 싸워대고 퇴사를 하겠다는 그 팀원은 회사의 배려로 내가 있는 팀으로 전배를 갔으며, 그 이후 또 다른 배려로 그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임원의 직속 비서 혹은 부관과 같은 역할로 이동을 하던 직후였다.
"팀장님. 쟤는 도저히 정을 줄래야 줄 수 없어요. 어떻게 우리가 희망 퇴직이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아는척도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랬다. 그 순간 모두들 할 수 있는 것은 남은 자들은 억지로라도 떠나야 할 자를 애써 외면해야 했다. 그리고 그 외면하는 그 순간에 대해서 자신들은 그들이 속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에 속해있다는 듯 애써 눈을 감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마지막으로 남은 시점에서 내 거취를 정해야 했다. 이전 계열사의 동기들, 특히 팀장 역할을 하는 동기들을 만나 술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의 말은 냉담했다. 소주 한 잔 하는 그 순간에는 웃고 떠들었지만 그 이후 내 부탁에 대해서는 욕설부터 시작했다.
"왜 그런 부탁을 하는데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 해?"
그랬다. 난 사실 떠나도 그만이었고, 그렇게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러는 동안 내 후배들의 소식, 혹은 선배들이나 동기들의 소식이 조금씩 들려오던 차 였다. 그러다 4년 전 쯤 내가 경력직으로 받았던 한 후배는 전화를 하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형님. 밖은 어떻습니까?"
"응. 난 이왕 남아있으라 한다면 거기서 남아있으라 하고 싶어. 그래도 10년, 20년 동안 만들어온 인맥도 무시 못하거든."
"근데... 전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루이스 그 씨발롬 때문에 더 못다니겠습니다."
예전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사수 루이스는 어느 순간 팀장에서 담당이 되어 있었고, 나를 괴롭히던 그 행동은 자신의 팀원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더욱 발전해갔다. 그러면서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들 한 명, 한 명 떠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가장 마지막에 남은 후배 한 명이 너무 힘들어 떠난다는 이야기였다. 경쟁사 D에서 이직을 한 그 친구는 그래도 안정적인 회사보다는 아무래도 다이나믹한 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싶어 이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이나믹함이라기 보단 인간적인 괴롭힘이 더 크다는 것을 모르고 한 소리였다. 그 어려운 점을 열심히 겪어가던 어느 순간. 그 후배는 결국 이직을 결정하였는데, 그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배와의 이야기속에서 15년간의 기억이 머릿속을 떠 올렸다. 그리고 그 때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의 자세"였다. (물론, 그 글은 계속 작성을 하다 보니, 현재 남아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 거론되는 듯 하여 잠정적으로 연재를 중단했었다. 언젠가 그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은 솔제니친이 "수용소 군도"를 쓰며, 그 시절의 비인간성을 고발했던 그 당시의 모습이 되어야지, 현재 진행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누군가에게도 여전히 상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비단 루이스와 그 후배의 일화 뿐만이 아니었다. 15년간 회사 생활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 담당은 "독사" 혹은 "메기"라는 별명에 걸 맞게,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동안 수 많은 직원들을 잘라댔다. 그리고 그 순간에 대한 무용담을 술자리에서든 - 업무중이던 너무나 자신있게 이야길 했다. 그리고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순간에는 가차 없이 잘라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언제나 고결하고 무결할 것이라 생각했다. 막상 자신이 괴롭히던 부하직원이 그의 비리 사실을 잔뜩 찾아내어 그 내용을 전부 공개하였을 때, 그동안 임원 후보군 중 1순위였던 그는 나락의 순간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망치듯 회사를 떠났다.
또 한 사람은 그의 후임으로 온 "따거"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 주재원을 오래 했으며, 따거라는 별명 답게 알콜 중독 수준으로 술을 먹던 사람이었다. 술을 마실때 마다 자신의 무용담. 중국 고위직 공무원과 백주를 사발째 마시며 형 - 동생을 텄다는 이야기. 그 회사에서 자신 만큼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자신있게 이야기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콜 중독이 너무나 심했는지 점심에도 소주 한 병은 마셔야지만 정상적인 업무가 가능했고, 저녁에도 반주로 마시는 소주가 3 ~ 4병. 본격적으로 회식때 마시는 수준은 10병이 넘어섰다. 그 일을 1년 365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
하지만, 그는 술은 사랑했지만 사람을 사랑하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도구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갈아치우는게 일상이었다. 그러니 "따거"의 눈 밖에 들면 그의 미래는 불투병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이제 수 많은 사람들이 "퇴직"의 사유가 그 사람 때문이었다고 명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정기 임원 인사때 자신의 이름이 빠진것을 확인하게 되고 떠나야 할 순간을 알게 되었다.
루이스의 모습은 그 둘을 섞어 놓은 듯 했다. 그리고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진절머리가 난 듯 도망치듯 떠나갔다. 그러니 그는 이제 전략을 바꾼다. 절대로 떠날 수 없는 중간급 인원들을 자신의 밑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다시 한 번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있었던 그 회사가 33개의 회사 중 가장 먼저 순위로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동기와 카톡은 한 순간이었다.
"너무 불안해. 밑에 애들은 루이스 때문에 점점 떠나가고, 결국 윗 사람들은 자기 살기 바쁘고... 이제 중간 계층을 갈아 내고 있는데... 이제 타겟은 우리가 된거 같아."
그 타겟에 대한 압박. 그리고 33개의 리스트에 올라가진 않았지만 그 리스트 안에 살며시 숨겨져 있는 그 대기업의 계열사들. 그 곳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고, 여전히 주요 임원이나 오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받는 순위 중 최상위권에 오르곤 하였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젠 누군가 실직을 하고 떠나는 그 순간이 유머가 된 순간.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설마 나는 아닐거야"라고 이야기 하며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 하지만 실제 그 순간은 내가 되었든 - 혹은 다른 누군가가 되었든, 그 결과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곤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대리, 과장이던 시절. 수 많은 선배들이 좋은 일이든 - 혹은 나쁜 일이든 그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을 때 난 그저 내 일이 아니다 생각하고 애써 외면했으니 말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실직의 순간을 막상 바라보질 못한다.
그 순간은 내 주위 혹은 나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현실인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