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많은 것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잊혀지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들이 대체 되며, 그 것들이 마치 그동안 함께 있었던 것 처럼 자리 잡을 뿐이다. 벌써 3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아니면 40년 정도 되었을 그 순간. 청량리 시간 끝 자락에 있었던 "오백냥 하우스"는 처음 가게를 오픈할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500원이었기 때문에 중국집 이름같지 않은 "오백냥 하우스"라는 이름을 골랐다. 물론, 그 당시에도 오백원이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내 기억으로 안성탕면 한 개가 80원 ~ 120원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니, 오백냥 하우스의 500원짜리 짜장면 가격은 분명 그 당시에도 상당히 저럼한 가격이었음에는 틀림 없을지 모른다. (지금 생각나는건 커다란 밀가루 범벅 핫도그가 100원, 프랑크 소세지가 든 핫도그가 200원 하던 시절이었고, 떡볶이 한 접시 - 정확하게 10개에 1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500원은 분명 저렴한 가격이었을지 모른다.)
난 그 오백냥 하우스를 찾을 수 없었다. 대충 어디즈음 일거라는 기억이 나긴 하지만, 그 곳이 위치한 곳에는 다른 식당이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함께 먹었던 감자탕 집이나 순대국집의 위치는 대충 기억이 날 듯 하지만, 막상 어디에 위치했는지? 혹은 그 가게가 내가 어린 시절 갔던 그 곳이 맞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그저, 그 곳과 비슷한 모습으 가게를 찾아보며 이 곳이 아닐런지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찾고자 하는 어린 시절 그 식당을 찾는 이유는 단지, 내가 살던 그 곳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는가? 아는 기억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노력 때문일런지 모른다. 당연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이었던 "경기 유치원"은 장소가 어디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유치원이 피아노 학원과 미술 학원을 같이 했었다는 기억과, 피아노를 치다 한 번씩 틀리면 선생님이 자로 손바닥을 때렸기 때문에 그게 무서워서 더 이상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싫다고 울고 불고 때를 써, 바이엘 상권 조금 넘은 순간에 피아노를 포기했던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당연히, 어린 시절 걸어갔던 그 유치원이 어디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그 주위에 큼지막한 시장의 입구나 오래전 부터 자리 했던 그 식당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그 당시에도 비싸서 먹지 못했던 홍능갈비는 마치 어떤 맛이었을지? 혹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먹어 본 기억이 있는지? 상상을 하며 그 주위를 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가끔씩 아버지 손을 잡고 먹던 순대국집은 아버지가 얼큰히 취하시던 소주 한 잔을 바라보며, 그 순대국 집에 사라졌다는 것을 여전히 기억할 뿐이다. 당연히, 청량리 시간 한 켠에 위치해 있던 돼지갈비집은 한 두 번 간 기억보다는 마침 유명한 배우의 부모님이 그 곳에서 돼지갈비집을 운영했다는 것이 더 화두가 되어 기억에 남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돼지갈비 맛이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치 특별한 맛이 있었을까? 하는 기억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는 아지만, 지금의 기억에 남는 것은 몇 번 맛있게 먹었던 기억 - 그리고 돼지갈비 뼈를 맛있게 뜯어 먹었던 기억까지 조금씩 기억속에 자리 잡게 되었을 뿐이다. 그저 그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이제 내 기억속에 남는 곳은 찾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먹던 허파 볶음이나 수구레 볶음 집은 어디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굵은 쌸 떡볶이에 붉은 고추장 양념의 떡볶이 집도 그 곳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가 순대국집에 들러 "강아지 밥으로 주려는데 남는 고깃 찌꺼기 있어요?" 라고 하며 봉투에 담아 왔던 그 가게가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기억에 나는 그 순간들을 나는 사진으로 남길 뿐이다. 그 어린 시절 기억속에 잊어버렸던 그 곳을 다시 찾기는 어렵니지만, 지금의 이 순간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