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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Sep 16. 2019

서른여덟이 되어 보이기 시작한 것들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직접 경험해야 이해하고 알게된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내가 틀렸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큰 효용이 없다. 같은 내용을 읽어도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테니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보내거나 충격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사실 어른들이 해주셨던 말씀이 옳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을 동반한다. 그와 함께 어른들도 대부분 그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삶으로 알 뿐이지 이해하고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지 않기에 그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정과 이유 없이 결론만 말해주면 그게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겠나?


그렇게 서른여덟이 되어보니, 결혼과 관련된 사람들의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결혼을 절대 하지 말라는 지인들의 말도, 결혼은 해볼 만하다는 사람들의 말도 모두 이해가 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으로 결혼에 대해 얘기할 뿐이란 것을 알기에.


그리고 만으로 삼십칠 년이 조금 넘게 싱글로 살다 보니 그들의 말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 것은, 결혼을 하지 말라거나 하라는 얘기에 흔들리게 되지 않게 된 것은 그들이 서른여덟까지 싱글인 삶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짧으면 이십여 년, 길어도 30년 조금 넘게 싱글로 살았고, 싱글로 7-8년을 더 살게 되면 그 기간이 어떠한지를 모른다. 그들은 대부분 본인이 살았던 싱글로서의 삶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내 지난 7-8년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상황들로 인해 그 시간들이 꽤나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행복하고 좋았던 것들도 많았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었고,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변수도 적었다. 어디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싱글들이 운동을 하고 '취향'이란 표현이 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유 때문이고, 그 자유는 분명 싱글이 아니면 누리기 힘들다. 싱글인 게 좋은 가장 큰 이유는 그 '자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유도, 어느 정도 이상 기간 동안 누리게 되면 질린다. 결혼을 일찍 한 사람들은 제발 자유를 좀 질릴 정도로 누려보고 싶다고 하겠지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의 저자들이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본인은 혼자 사는 게 행복하고 잘 맞는다고 말하려면 10년 이상은 혼자 살아보고 하는 게 맞다. 자유도 구심점이 있고, 적당히 구속되어 있을 때 가장 좋다.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여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자유를 계속해서 부여받게 되면 그 자유에도 질린다.


인간은 꼭 결혼은 아니어도 가족이, 공동체가 필요하단 것을 서른여덟, 아니 사실 몇 년 전부터 느낀다. 겉으로 보이는 게 중요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본인이 행복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쉽게 밖으로 얘기하지 않지만 뒤에서는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치과의사, 변호사, 의사. 연봉이 상당한 수준이 되는 지인들조차도 싱글로서의 자유를 10년 전후로 만끽한 후에는 인생 참 무료하고 재미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취향'이라는 말로 포장된 다양한 모임들이 성행하고 유행하는 것도 어쩌면 사람들이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책임지지는 않아도 되고,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적절한 거리가 있는 가벼운 관계. 그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통로로는 '취향' 정도의 모임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 그런 모임을 다녀오고 나면 오히려 더 허한 느낌이 많이 들더라.


오늘 오전에도 얼마 전에 아이가 생긴 친한 형과 한참 카톡을 했다. 싱글로 살라고, 싱글은 나쁜 게 하나도 없다고. 그런데 정말 결혼이 완전한 무덤이었다면, 평생 싱글로 살겠다던 그 형은 왜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기기 전에 싱글로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성병이 걸릴까 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을 정도로 문란하게 살던 내 지인은 왜 오래전부터 알던 지인과 결혼을 한 것일까?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어떤 것이든 생기는 게 있다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서른여덟이 되고, 나를 포함한 친한 싱글들의 삶을 보면 인간은 '자유'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고, 일정기간 동안 행복을 주는 행위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심리적, 정신적 보상이 희석될 수밖에 없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부담이 되지 않는 적절한 거리가 있는 가벼운 관계만으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느낀다.


어떤 이들은 '평생 연애'를 말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연애는 시작하기도 힘들어지기에 그건 대부분 사람들에게 희망사항일 수는 있어도 현실이긴 힘들다. 그런 삶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삶일 것이다.


결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가족 같이 함께 사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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