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Dec 18. 2019

일찍 결혼한 사람들이 모르는 것

결혼을 해야 어른이다.

상투를 틀어야 어른이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이런 표현들 때문일까. 30대 후반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는다. 눈이 높고 까다롭다는 평은 이미 질리도록 들었고, 후배나 동생들이 이제 본인이 형 또는 누나라고 놀리듯 얘기하는 것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어떤 이들은 또 한 편으로는 결혼을 하지 말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빨리 하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을 때도 있었다.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아주 솔직히 말하면 지인들이 거의 가정을 꾸렸고 나도 어느 순간부터 굳이 일부로 약속을 만들지는 않게 되다 보니 그들을 만날 일도, 시간도 거의 없어져서 이젠 그런 얘기들을 들을 일이 자주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 결혼한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해야 아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결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말이다.


그중에 한 가지는 '그냥 싱글 생활을 즐겨'라는 말이다. 싱글을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들은 그들이 지금도 싱글이라면 삶이 멋있고 연애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들 생각하더라. 그럴 수밖에. 그들의 싱글로써의 삶은 결혼을 한 시기,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결혼한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기 전 즈음에 멈춰있으니까.


그런데 30대 후반까지 싱글로 있다 보면, 학부를 졸업하고 10여 년을 법적으로 구속받는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살다 보면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혼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흥미가 떨어지게 되어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을 알아갈 수 있고 본인의 패턴이 만들어져서 삶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게 그렇게 엄청나게 즐겁고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네가 결혼해서 구속되어 보지 않아서 그래'라고 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깊이 있게 취미 등을 즐기는 게 아닌 이상 무엇인가를 하는 즐거움은 2-3년 이상을 잘 가지 않더라.


그리고 그들은 '내가 싱글이면 실컷 연애를 하겠다'라고 하지만, 그 역시 그들의 싱글로서의 삶이 지금의 아내와의 만남 이전에 멈췄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소개팅은 가만히 있어도 들어오고, 때때로 지겨워서 거절하며, 만나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도 없지는 않던 시절 말이다. 나도 그랬다. 30대 중반까지는. 그런데 어느 순간서부턴가 '현실적으로' 소개를 받을 수 있는 루트가 줄어들고, 연애가 피곤하고 귀찮아지는 시점이 오더라. 이는 현실의 무게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이 점점 많아지는 영향이기도 하다.


사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많이들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일찍 결혼한 사람들은 이 글에서 지금까지 내가 쓴 이야기들과 같은 맥락에서 '내가 그때 결혼을 안 했다면...'이라는 너무 큰 가정을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마치 본인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삶이 무조건 나아졌을 것처럼, 더 나은 사람을 만났거나 엄청난 무엇인가를 이뤘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봤고 그들은 아주 가끔 만나도 그런 얘기를 한다.


물론, 정말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지인들의 경우에도 매우 오래 연애를 하고 결혼했더니 의처증이 있는 사람인 경우도 있었고, 알고 보니 폭력적이었던 사람, 연애할 때부터 다른 이성이랑 잠자리를 하고 있었던 사람인 경우도 있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어떤 이들은 '그런 경우 그냥 이혼하겠지'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이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나는 지인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런 배우자와 결혼한 사람들 중에 이혼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내게 결혼을 하지 말라는 식의 조언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의 조언을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 가정을 꾸리고 1-2년 이상 살았고, 상대가 비정상적이거나 변태 또는 무책임함으로 중무장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고, 심지어 [결혼]까지 결심하고 식장에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인연은 대단한 인연이란 것이다. 너무 어려서 그 결정을 내려서 그걸 깨닫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얼마 간의 연애와 얼마 간의 이별, 그리고 얼마간의 싱글 생활과 평생 미혼의 삶을 살아보니 그렇더라.


무의식 또는 호르몬 작용의 영향으로 누군가와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두 사람에게 모두 무의식 또는 호르몬이 작용해야 하기에. 그리고 그러한 생물학적인 영역의 변화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되어야만 나타나는데, 때로는 두 사람 안에서 그 요소가 다른 타이밍에 작용해서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갖고, 좋아하고 사랑하기까지는 사실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변수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인에게 인연이란 표현을 쓰는 것일 테다.


하물며 연애도 그러한데, 결혼은 더하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과연 '이성적으로' 본인이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유연애'가 허용되는 현대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모두 그 계산이 맞아야 하거나 그 계산을 쓸어버릴 만한 감정적 소용돌이가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못 봤던 면이 있을 수 있다. 아니, 내 경험에 의하면 사실 연인에 대해서 못 보는 것은 없는데 그게 문제가 되지 않게는 되더라.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두 사람이 서로를 쳐내지 않을 정도의 강도라면, 그 정도 다름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를 낳아준 부모와도 그러한 다름이 있는데, 어떻게 한 집에서는 살아보지도 않은 다른 사람과는 그런 게 없겠나?


그만큼 두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엄청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가 이 정도 들어서야 그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았다. 그걸 내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때 만났던 사람을 그런 마음으로 대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아주 매우 가끔씩 한다.


어떤 이들은 '상대가 결혼하고 변했다'라고 말한다. 상대가 먼저 그러했을 수도 있고, 본인이 상대를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실제로 결혼한 후에도 변한다. 그리고 그렇게 변하는 것은 보통 두 사람이 각자의 '일'을 하느라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거나 대화를 많이 안 함으로 인해 서로 너무나도 달라지게 될 경우 이혼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두 사람이 모두 과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만약 본인과 상대가 결혼까지 결심할 정도로 서로를 당기는 것이 있었다면,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자주 일어나지 않을 일임을 안다면 과연 두 사람이 서로를 그렇게 대했을까?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빨리, 일찍 갖거나 이루고 싶어 한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빨리, 일찍 이루는 것은 평균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우리 삶의 길이 속에서 더 오랜 기간을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전혀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이룬 것이 유지되는 것]이라는 너무나도 큰 전제를 깔고 있다. 빨리, 일찍 뭔가를 이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이룬 그것을 아주, 매우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이상해서 본인이 엄청나게 고생하고 오랜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갈망했다가 그것을 이루거나 받았을 때야 비로소 그 목표 또는 대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는 결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빨리, 일찍 결혼한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함부로 대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오롯이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믿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나마 본인 탓을 하면 다행이지... 주위 사람들 탓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결혼을 하기로 하는 결심은 '이성적'으로만 생각해서는 내려지지 않는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양반으로 살고 있지 않은 이상 그에 대한 결정은 이성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작용을 해야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심지어 두 사람이 '동시에' 그래야만 한다.


물론 정말로 객관적으로 이상하거나 잘못된 선택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동시에 같은 감정과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를 깨닫지 못해서 서로를 덜 소중하게 생각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두 사람이 그 사실을 일주일에 한 번씩만 깨달아도 우리나라에 행복한 가정의 숫자가 더 많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