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서서 책을 내지 않는 이유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또 오랜만에 보면 반가운 지인이 책을 낸단 소식을 최근에 알렸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진 주제이긴 하지만 그 책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은 짜증이 났다. 내가 보기에 그 책은 분명 '팔릴 책'이긴 하지만 '필요하거나 팔려야 하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은 꽤나 잘 팔릴 것이다. 저자의 학력과 그 책의 주제, 우리 사회의 특성들 때문에.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을 내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갖고 있던 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쓰면서 그 꿈을 접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나서서 책을 내지는 않기로 했다.
지인들은 아주 가끔씩 3년 간 평균 이틀에 하나 이상씩 글을 써왔으면서 (참고로 내 브런치 계정의 글은 많이 발행 취소된 상태고, 브런치가 아닌 다른 공간에 옮겨 담아지고 있는 중이다) 왜 독립출판이나 POD형식으로도 책을 낼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도 그 옵션을 고려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는 왜 책을 내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물었고, 그에 대한 결론을 내린 후에는 누군가가 내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연락이 오면 거기엔 응하겠지만 내가 책을 내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쓰는 일을 했던 강원국 작가는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사람은 모두 관종'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약간 짜증이 났었는데, 그 말을 계속 곱씹어보니 나 역시 그런 면이 있더라. 그런데 글 쓰는 관종들은 다른 부류의 관종과 조금 성향이 다르다. 다른 부류의 관종은 자신이 얼굴 알려지고 유명해지고 싶어 하지만 글 쓰는 관종들은 본인 자신이 알려지거나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구는 크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 (물론, 자신이 알려지고 유명해져서 그것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글 쓰는 관종'이 아니라 글 장사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 쓰는 관종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내용에 공감을 받거나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한다.
본인이 직접 책을 내는 과정에는 한 가지 욕구가 더 투영되어 있다. '나 책 낸 사람이야'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어떤 이들은 '그냥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도 있잖아'라고 할 수 있고, 그게 부분적으로는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는 세상에서 굳이 [책]이라는 매체로 자신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알리려고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출판작가]라는 말이 주는 그럴듯함의 영향이 없다고 하기는 힘들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가 돈을 내고 책을 내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나를 믿지 않기에,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온 후에 내 마음을 내가 지켜서 스스로 높아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세상에 더 널리 알려져야 할 이야기라면,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팔릴 이야기라면 그에 대한 전문가인 출판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이 공간을 통해 먼저 연락이 올 테니 내가 내겠다고 하진 말자고 생각했다. 내가 더 드러나고, 높아지고,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그로 인해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인터넷이 고도로 발전된 이 시대에 굳이 내가 나서서 내 이름으로 책을 낼 필요는 없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낼 바에야 책을 안내서 나무 한 그루, 아니 반 그루라도 살리는게 인류와 지구를 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구체적인 이력과 스펙을 다 공개하지 않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내 글의 내용 자체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고 누군가가 책을 내자고 연락오면 내겠지만, '당신 스펙을 팔면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책을 팔려는 기획 및 편집자와는 책을 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확정된 내 박사학위 논문도 다들 '일단 내 책을 냈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냥 논문 그대로 넘겨'라는 말을 계속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에 더 많은 내용을 보충하고 싶어서 거의 1년째 원고를 넘기지 않고 있으니...
내 생각이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면, 사실 인터넷만 한 공간이 또 없다. 내 생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면 그 매체를 온라인에서 늘리거나 꾸준히 글을 써서 내 매체의 힘을 키우면 된다. 전형적인 '글 쓰는 관종'인 나는 그래서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유튜브를 채널을 운영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에서는 출판업도 장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팔릴 책'들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건 시장에 끌려가는 출판이다. 출판업은 잘하면 시장을 이끌고 세상을 끌고 갈 수도 있다. 어느 업계에서나 그게 쉽지 않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 책을 내는 출판사들이,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난 그런 이야기꾼들이 세상을 바꾸는 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팔려야 한다고 생각되는 부류의 책들은 반드시 새 책으로 산다.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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