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최근 2-3개월 정도는 남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을 대가로 비용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란 호칭이 붙지만 작가는 아닌 그런 역할을 통해 수입을 주로 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깨달음은 나는 결국 내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남의 글을 같이 만들어주다 보면 다름일 뿐이지 틀림의 문제가 아닌 지점에서는 결국 내가 의견을 피력은 하되 상대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진행이 되게 해야 하는데 그로 인해 내게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게 크단 것을 이 과정을 통해 깨닫고,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계약을 한 내 책은 내가 계획했던 속도와 수준으로 정리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많이 느끼는 것은 '배움'에 대한 생각들이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의견을 전달하고 그 글의 주인인 분께서 그 내용에 귀를 기울여주시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배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전달하는 의견 중에 틀림이 아닌 다름의 영역인 건 이 부분에서 논의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에 누가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영역에 대해서도 상대가 본인이 괜찮단 이유로 내 의견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고려하지도 않으면 그만큼 답답하고 짜증이 날 때가 없다. 혹자는 '상대가 안 들으면 상대 탓이지'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난 엄연히 특정한 역할과 기능을 위해 계약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참여한 일의 결과물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와 있지 않으면 나에 대한 평가도 같이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건 사실 나의 평판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상대가 왜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넘어 고려도 하지 않거나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는지를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본인의 경험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아닐수록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듣게 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드라마 회의에서 본인은 세상에서 빨래를 하는 게 제일 싫은 데 주인공이 빨래방에서 빨래 돌아가는 소리에 힐링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몇 시간을 싸우는 사람도 봤는데, 이런 식으로 사고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 건 비단 그 경험이 나의 재산이 되어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새로운 것에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은 그 사람이 더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준다. 반면에 경험의 폭이 매우 좁은 사람은 자신의 틀 안에 갇혀 있게 때문에 그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게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경험을 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그 상태로 30대를 넘어 40-50대가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이 했던 경험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 그런 꼰대가 나이 많은 사람 중에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건 좁은 폭의 경험을 해온 시간이 길다 보니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그 좁은 폭의 견고함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20대들 중에서도 본인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린 나이에도 꼰대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틀릴 수도 있어'라는 마인드가 없기 때문인데, 이 이유는 사실 경험의 다양성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했던 게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신이 했던 경험과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는 반면 경험의 폭이 좁은 사람들은 자신이 틀렸던 경험을 해본 적이 많지 않다 보니 자신이 틀린 경우에도 그 틀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자기 확신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는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실수하고, 실패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항상 옳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경험들 마저 학생들이 선택하고,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탑다운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걸 평가할 뿐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그 모든 것을 '입시'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줄 세우기를 하다 보니 학생들이 사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사고의 폭을 갖고 세상에 나온 뒤에는 알고리즘을 통해서 자신과 비슷하거나 같은 이야기와 사람들을 접하니 자기 확신이 점점 강해지고 좁아지면서 자신은 절대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배움의 폭을 넓혀갈 수 없다. 이는 뭔가를 새롭게 깨닫고 습득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잘못 알았거나 경험했단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경험의 폭이 극도로 좁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애초에 할 수 업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남의 말을 다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잘못되었거나 이상한 정보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의심의 대상 중 가장 중요한 대상은 본인 자신이다. 나의 상식과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의심하면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정보를 접하다 보면 우리는 종국적으로는 진리에 가까이 이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배움의 과정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많은 정보를 접한다고 배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야 비로소 책과 정보가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항상 겸손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일단은 귀를 기울여 봐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