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by Simon de Cyrene

부모님께서 제천에서 올라와 서울에 한 달 조금 넘게 계시다 내려간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내려가신 후부터 지금까지 컨디션이 완전히 무너져 정말 해야 하는 일들만 가까스로 쳐내며 버텼다. 수능이나 학위논문 심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나고 나서 긴장이 풀렸을 때 느끼지 못했지만 몸에 누적되었던 피로가 몰려와 컨디션이 급격히 악화되는 것처럼, 말 그대로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이틀간은 마치 코로나 걸리고 2-3일 차 때처럼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고, 그 후로도 일주일 정도를 '어디 크게 아픈 건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부모님께서 한 달 동안 서울에 계신다는 얘기를 들으면 지인들은 하나 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너무 힘들겠다고, 본인은 버티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3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한 편으로는 생각이 많아졌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란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이 유별나거나 이상한 분들은 아니다. 두 분은 전형적인 한국 부모님이시다. 물론, 전형적이라고 해서 모든 부모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두 분은 전형적인 한국 부모님들이 갖고 계신 특성들을 조금 농축해서 갖고 계시기는 하지만 그 특징들이 이상하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가장 예민한 시기들에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 살며 미국식 교육을 받았다 보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매우, 매우 강하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부딪히게 되는 지점들은 한국교육만 받고 한국에서만 살았던 사람들보다 매우, 매우 많다.


내가 어렸을 때 두 분이 나에게 한 실수들이 두 분이 나를 사랑하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란 것을 안다. 두 분도 부모는 처음이었고, 피난민의 자녀셨던 두 분은 성장과정에서 다정다감하게 케어를 받으시기 힘든 환경에서 자라셨기에 아이가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자랄 수 있도록 대하는 법을 모르셨던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때는 부모님을 향해 가지고 있던 분노들을 더 이상 내 안에 갖고 있지는 않지만 수 십 년간, 내 기준으로는 평생 동안 누적되어 온 흔적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다. 그 과정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연세가 드신 두 분께는 그것도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나도 두 분을 증오하거나 싫어해서 큰 소리를 내거나 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도 잘하고 싶은데 내 안에 쌓여왔던 경험과 기억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다 보니 나의 몸과 마음이 저절로 반응을 하다 보니 반사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게 된다. 내 삶을 사랑하게 된 지금은 나를 낳아주신 것도, 그리고 아이를 가진 지인들이 겪는 것을 보면 나를 키워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그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고, 몸과 마음은 반사적으로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기억과 경험의 파편들의 영향을 받는다. 두 분이 본인의 내면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듯이, 나도 그렇다.


우리 집만 이런 게 아니란 것을 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가족이 우리 가족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안다. 이는 개인의 탓이 아니라 사실 시대와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다. 지금의 30-40대들의 조부모님들은 일제강점기를 버티셨고, 그 후에는 한국전쟁을 경험하셨다. 폐허가 된 국가에서는 생존이 지상과제였다 보니 가족 간의 사랑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배려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가 없었고, 지금의 30-40대들의 부모님은 그런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 부모님들은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할 때 그 흐름에 따라 돈, 성공, 명예를 우선시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야 했다. 지금의 30-40대들 중 상당수는 또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가정 중 상당수는 서로 어느 정도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30-40대들이 살아온 세상과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님들이 살았던 세상이 완전히 다르다 보니 그만큼 세대 간 갈등도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너무 급격하게 변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인간은 결국 필연적으로 본인 중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은 때때로 '너희는 너희들 밖에 모른다'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말들의 이면에는 '너희는 왜 내 말대로 안 하니?'라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도 본인 중심적인 생각이 아닌가?


본인 중심적인 것은 크게 이기적인 것과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부르는 이기주의자다. 이는 진정한 개인주의자라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개인성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데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본인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고, 다름은 틀림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것에서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나의 글들에서도 몇 번이나 말했지만 모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까지는 본인 중심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우리가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우리 자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큼만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다 보니 본인의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다. 이타적이 많은 사람들도 기본적으로는 본인 중심적이어야 하고, 이게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닌 것은 인간은 본인의 것이 일정 수준으로 채워지고 안정이 될 때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친구도, 연인도, 부부도, 가족다 마찬가지다. 가족이라는 것이, 혈육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곧바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건 개인과 개인이 어떤 관계를 형성해 왔는지이고, 그 관계는 서로를 개인으로 존중해 줄 때야 비로소 건강해질 수 있다. 그렇게 나를 나 자신으로 존중해 주는 것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그 관계가 더 친밀해지고 가까울 수 있다. 가족 간에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일이 너무 많이 밀려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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