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by Simon de Cyrene

'내가 너희를 뭘, 얼마나 잘못 키웠길래 둘 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 장가도 안 가고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명절이 되어도 오는 사람도 없고, 가는 사람도 없어...'


기습공격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폭탄을 투척하셨고, 나는 그 폭탄을 맨손으로 잡아서 다시 어머니께 던졌다.


'아니, 솔직히 우리가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서 하하 호호하고 행복했던 적 있어요? 친가는 친가대로, 외가는 외가대로 모였다가 집에 오는 길에는 항상 누구는 어쩌고, 누구는 저쩌고 하면서 말하기 바빴잖아요. 모였을 때 대놓고 부딪힌 적도 있고. 그렇게 모일 바에는 그냥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는 게 나아요.'


어머니께 다시 던진 폭탄은 돌아오지 못했다. 훗.


친척이 대부분 개신교 신자다 보니 제사상이나 차례상은 평생 본 적이 없지만 명절에는 항상 모였었다. 사촌들이 하나, 둘씩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양가 조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고, 그 시간도 30년 정도 지났다 보니 더 모이지 않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친가에서는 내가 굉장히 어린 축에 속해서 사촌들까지 모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고, 외가는 나보다 한참 어린 사촌 동생이 아이가 생긴 재작년 정도부터 슬며시 명절에 모이지 않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훨씬 좋다. 친척이라고, 혈육이라고는 하지만 친하지 않은 친구들보다 더 낯선 사촌들이 모여서 가까움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지치고 힘들고, 그런 모임에서 괜찮은 척, 편한 척하고 나면 집에 와서 뻗을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지내는 게 훨씬 좋다.


조금 더 시니컬해지자면 요즘 시대에 '명절'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우리가 '명절'로 여기는 절기들은 농사를 짓던 시절에 의미가 있거나 과거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게 우리 시대에 맞을까? 과거에는 풍요롭게 먹기가 힘드니 명절에라도 배가 터지도록 먹는 게 의미가 있었겠지만, 요즘에는 얼마나 음식이 구하기가 쉬운가? 솔직히 명절음식보다 더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우리는 연중 어디서나 찾아 먹을 수 있지 않은가?


친척들과의 모임 역시 마찬가지. 서로 어떤 이해관계도 공유하지 않고, 비교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친척들과 모이는 게 나쁠 것은 없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가깝다는 이유로 금전관계가 엮여 있는 친척들도 많고, 가깝기 때문에 서로 집안 상황을 더 비교하는 게 적지 않은 친척들의 현주소다. 그리고 친척끼리 정말 친하고 가까운 경우에는 명절이 아니어도 수시로 연락하고 만난단 점을 감안하면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모이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명절은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명절을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단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설에는 '우리 올해도 잘 지내보자'라고 다짐하고, 추석에는 일 년 동안 혹시 서로에게 아쉬웠던 게 있었다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용서한다면 명절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조선시대에 차리던 상을 고집하기보다 조금 더 요즘 사회, 문화에 맞는 특별한 음식을 가족끼리 먹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명절을 그렇게 보낼 수 있다면 사람들이 '명절 기피증'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명절을 기피하려는 것은 현실도, 일터에서도 빡빡하고 삭막한 시간을 보내는 데 굳이 일부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따로 모여서 더 힘들고 짜증 나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명절은 적지 않은 가정에서 모두 현실과 일터에서 나는 짜증을 서로 배설하다 싸우고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모든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좋게 유지되는 관계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이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주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친척들의 경우 더 그렇다. '혈연'이라는 개념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희석된 요즘에는 더더욱 그렇다.


명절연휴 마지막 날까지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있어서 지도교수님과 어제 통화를 했더니 교수님은 '야야야, 그래도 명절은 명절답게 보내야지. 내일까지 제출하자.'라고 하셨다. '아뇨아뇨아뇨 교수님. 전 명절에도 어차피 일하고 할 거라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 이번 명절연휴 동안 나는 내내 서류 작업과 출판을 위한 원고작업을 하게 될 예정이다. 난 친척들이 자주 모이던 명절보다, 이런 명절이 더 행복하고 좋다.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악의 명절은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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