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어른'이 된 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새로 바뀌는 나이제도에 의해서도, 구차하게 생일이 지났는지 여부로 따지더라도 40대인 나이가 되었고, 이제는 법적으로 어른으로 산 시간이 미성년으로 산 시간보다 길었으니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는 내가 어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작년 7월에 썼던 글에서 말했듯이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노화가 일정 수준으로 진행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만 먹었지 애 같은 사회적, 법적 어른이 얼마나 많고 또 어른인 척 하지만 속에는 여전히 아이가 남아있는 생물학적으로만 어른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편의상 어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그런 사람들보다는 성숙하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순진한 아이들이 차라리 어른 같을 때가 생각보다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다 문득, 진짜 어른은 어쩌면 상대와 나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존중할 줄 아는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진짜 어른이라면 그렇지 않을까? 내가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인생을 조금 덜 산, 생물학적으로 노화가 덜 진행된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거나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본인이 그러한 시절을 겪어왔기에 상대의 전체적인 경험에 비춰봤을 때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그런 어른들이 많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남의 탓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의 성장환경과 경험에 의해 나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며 그게 틀린 지점도 있지만 다를 뿐인 지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진짜 어른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제대로 된 대화가 많이 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짜 어른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던 지점'을 찾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는 진짜 어른은 본인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음을 알 것이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실수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실수나 잘못이 아니라 앞으로 잘하는 것임을, 세상은 절대로 완벽할 수 없음을 진짜 어른들은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과오를 명확히 하되 다시는 그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 비춰봤을 때 진정한 어른은 결국 '책임지는 사람'이다. 본인이 맡은 사람과 일에 대해서 남에게 그 잘못을 돌리지 않고 본인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의 실수나 과오는 명확히 하되 그걸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그런 실수와 과오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한 후 미래지향적인 계획과 목표를 세울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어른일 것이다.
이 생각은 '돈의 원리'에서 연봉에 대한 내용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든 생각이다. 온라인에서 '돈을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식의 영상이나 기사가 많이 보이는데 그런 주장은 사실, 죄송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본인의 노동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말이 되는데 어느 누구의 노동의 가치도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 이는 그 가치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개념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나는 이렇게 열심히, 많이, 힘들게 일하는데 돈을 적게 받는데 왜 상사들은 일도 많이 하지 않는데 저렇게 높은 연봉을 많이 받냐?'라고 묻는데, 그것도 어리석은 질문이다. 이는 연봉은 단순히 노동강도와 시간에 따라 산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연봉이 노동강도와 시간에 따라 산출되는 것이라면 왜 대기업 신입사원이 건설현장 노동자들보다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하나? 환경미화원들보다는?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아니다. 대기업은 신입사원 한 명 없어도 잘 돌아가지만 건설현장에는 한 명이 빠지면 반드시 누군가로 채워 넣어야 하고, 환경미화원들이 파업을 하면 우리는 일주일 만에 쓰레기더미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대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이 건설현장 노동자들과 환경미화원들보다 더 높은 것은 그 채용과정에 경쟁이 발생하기 때문이고, 대기업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중장기적으로 조직을 이끌 기초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회사의 고위직이 더 많은 연봉을 받냐고? 그들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연봉은 그들이 의사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의 경력을 통해 그만한 능력을 갖췄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높아지는 것이고, 무엇인가에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일을 하는 시간보다는 고민하고 검토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직접 노동을 하는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다.
회사에 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A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관리자인데 책임은 실무자에게 전가하고, B는 물리적으로 일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사고가 터지만 본인이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누가 더 나쁜 관리자일까? A가 당연히 더 나쁜 사람이다. 이는 관리자는 책임을 지는 자리인데 본인이 책임을 회피하는 건 본인이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책임을 지지 않고 싶다면 평사원으로 평생 일하면서 평사원의 연봉을 받아야 한다. 회사에서 진정한 '어른'은 사고가 나거나 잘못된 일이 발생할 경우 책임을 명확히 하고 본인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 그런 진정한 어른은 얼마나 될까? 새해부터 곳곳에서 남탓하는 얘기들이 적지 않게 들려온다. 우리 사회는 진정한 어른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진정한 어른이 많지 않다는 게 아닐까 싶은 2023년의 세 번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