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박사학위논문은 사회통합을 위한 법제도를 다루는데, 그러다 보니 학위논문을 쓰고 있었던 2년간 나는 사회통합과 민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민족'이란 개념에 대한 딜레마에 빠졌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표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나 역시 '순수혈통'적인 측면에서 민족의 개념은 부정한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이 침략을 당해왔는가? 그 과정에서 일본이나 중국의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았다고? 한반도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들을 알면서도 '순수혈통'을 강조하는 건 자기기만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 개념에 반감을 갖고 있는 건 기성세대 중 상당수가 '같은 민족'이라는 맹목적인 이유만으로 '집단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기 때문에 이건 이래야 하고,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훨씬 우월하고 잘났다는 방식으로 프라이드를 갖고, 실제로 우리보다 나은 문화나 전통, 성향은 폄하하는 모습들이 못나 보이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민족'이란 개념에 반감을 갖는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는 사회에서 그러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어리석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인이 중시되는 근대국가와 근대사회에서 집단주의로 개인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문화에 반발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그 '민족'이 특정한 삶의 방식이나 문화와 같은 '사회적인 개념'과 결합한다면 어떨까? '어느 정도의 혈통적 동질성'을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연대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민족을 사용하면 어떨까? 거기에까지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계기는 이번 월드컵과 내년에 열리는 WBC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개인주의가 다 자리 잡은 것처럼 말하지만 자신이 속한 국가를 응원하고, 그 국가의 성적에 따라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인간이 과연 정말 완벽하게 개인주의적인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조부모의 혈통"을 기준으로 자신이 속하는 팀을 결정할 수 있는 WBC의 기준을 보면서 과연 21세기의 인간이 '혈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운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사회통합에 대한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인간은 '현실적인 이해관계'로 엮여있는 관계를 통해 연대성을 형성하고,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심리적인 동질감'을 통해 연대성을 형성한다. 그리고 한 사회가 높은 수준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이 두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반복되고,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이번 월드컵에서도 했다. 사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이겼다고 해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뭐가 있나? 우승을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표팀이 지면 힘들어하고, 이기면 기뻐한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심리적인 동질감과 소속감'이다. 그게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민족'에 대한 부분을 긍정적으로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예는 미국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그러한 혈통과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도 미국에 많이 존재하지만 그러한 공통점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자신의 문화를 지켜나감과 동시에 자신과 다른 혈통과 문화도 존재하는 문화도 미국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민족이라는 개념을 무조건 폄하하고 부인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도 'Do you like Kimchi'와 같은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의 것을 인정해주면 우리 것이 더 대단해지는 것 같은 사대주의가 느껴지고, 그 질문을 통해 '거 봐 너희도 우리 것을 좋아하잖아. 우리 것은 이렇게 좋은 거고 대단해'라는 사고방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사용하면 될 텐데 인정을 구걸하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그런 질문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것이 좋다는 것을 애써 감추려 하거나 피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민족'이나 '우리 것'의 좋은 점을 말하는 것을 창피해하는 사람들은 애써 우리 것을 폄하하기까지 하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 문화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지구 다른 곳에 없는 좋은 점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좋은 것에 대해서는 자존감을 갖되 부족한 면은 인정하면서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민족'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완전히 편입시켜도 당신은 아무렇지 않은가? 한글과 한복과 김치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해도? 머리로만 생각하면 그 주장이 완전히 일리가 없지 않을 수 있다. 고구려는 영토의 대부분이 지금의 중국 영토이고, 중국에는 조선족이 있고 조선족의 문화에는 한글과 한복과 김치가 포함되기 때문에 '국가'적인 관점에서는 그것도 자신들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게 완전히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게 맞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들을 들으면 나도 분노하게 되고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말 머리로만 생각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아예 논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느끼고 분노하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어딘가에 '민족적인 관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뿌리'를 중시하는 문화가 없다면 그런 중국의 시도에 분노하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시도들에 분노하게 되는 것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동질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개념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진짜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자세일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민족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국적이 아닌 혈통에 따라 '어머니의 나라'와 '아버지의 나라'를 말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 곳곳에 있다. 그렇다면 그 개념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이상하거나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 개념에 병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긍정적으로 사용한다면 굳이 애써 민족이나 혈통이란 개념을 부정까지 할 필요는 없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로만 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가지 않는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