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by Simon de Cyrene

동일노동 동일임금.


질과 양이 같은 노동을 한 사람에게는 같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상식적인 말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같은 '양'은 정의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같은 '질'은 판단하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흔히 문제가 되는 스포츠 선수와 배우에 대해서 감정은 모두 배제하고,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똑같은 운동을 하는 선수인데 같은 대회에서 남자 선수들의 상금이 더 많고, 똑같은 주연배우인데 남자 배우의 몸값이 더 높은 것을 두고 많인 비판이 일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들이 하는 노동의 '양'만 놓고 보면 그런 비판은 굉장히 정당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 공감을 했고, 이 문제는 지금도 꽤나 자주 제기된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테니스 대회의 경우 일부 대회에서 남녀 선수의 상금을 맞췄지만 그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발이 일기도 한다. 눈치를 보느라 입 밖에 얘기를 하지 못할 뿐이지 사실 속으로는 그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왜 그럴까? 단순히 세상이 악하고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일까?


그런 면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임금체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건 그런 직종들의 경우 같아 보이는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경제적 가치에 분명한 차이가 있거나 그 사람을 쓰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남녀의 운동신경과 능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남자들이 참여하는 종목이 더 과격하고, 그에 따라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자들이 출전하는 종목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운동선수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돈을 많이 벌까? 운동선수들은 종종 그것이 오롯이 자신의 덕분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건 그들을 좋은 '광고판'으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운동을 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겠지만 경제적으로 봤을 때 그들은 좋은 광고판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좋은 광고판이 될수록 사람들은 그 광고판에 자신의 광고를 싣기 위해서 많은 돈을 지불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 경쟁이 붙으면서 더 많은 돈이 스포츠로 흘러들어온다. 운동선수들이 팬들에게 잘해야 하는 건, 팬서비스에 열심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경기장에 꾸준히 오게 함으로써 더 매력적인 광고판이 되기 위해서.


그런데 앞에서 설명했듯이 남자들이 출전하는 스포츠가 보통은 더 과격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출전하는 종목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서라도 남자가 출전하는 종목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자 운동선수들의 노동의 '질'이 남자 운동선수들의 노동의 '질'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비치발리볼과 같은 종목에서 특정한 방식의 유니폼은 입지 못하게 해왔던 것도 사실은 철저히 이런 경제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종목의 '경제적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서.


물론, 경제적 가치가 전부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선수들의 상금을 동결시킨 대회의 결정도 존중되어야 하고,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유니폼에 대한 과거의 규칙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또 어떤 종목은 사실 여자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가 더 재미있고 인기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오늘날의 남녀 배구가 그렇다. 그런 경우에는 사실 '경제적 가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여자배구 선수들의 연봉 상한선을 더 높게 책정해 주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구의 경우 남녀 국가대표 선수들의 처우를 다르게 하고, 남자 선수들의 연봉이 더 높아서 잡음이 흘러나온 적이 있다. 이런 현상은 왜 그럴까? 그 가장 큰 이유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경제적 원리'에 대한 고민 없이 관행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프로스포츠의 경우 사실 단 한 종목도 예외 없이 적자를 기록하고 기업들이 마케팅 용도로 구단을 운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제적 원리가 덜 적용되는 측면도 있다. 또 여자배구의 경우 김연경 선수라는 월드스타의 탄생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인기가 많이 올라갔던 측면도 있기 때문에 종목 자체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고 하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남녀 배우의 경우 왜 몸값이 다를까? 이 역시 생각보다 남녀의 신체적인 차이에서 기인된 측면이 있다. 무슨 소리냐고? 생각해보자. 여배우들이 주연으로 소화하면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대부분 기본적으로 남자 배우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로맨스나 가족물의 경우 남녀가 모두 등장해야 이야기가 돌아가니까. 반면에 남자 배우들의 경우 몸을 쓰는 액션물이나 범죄물에도 주연으로 출연하는 반면 그런 이야기들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설정되는 경우는 매우, 매우 드물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남자가 주연인 게 액션이 더 크고, 거칠며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여배우들에 대한 수요보다는 남자 배우들에 대한 수요가 클 수밖에 없다. 이는 여배우를 섭외하기 위한 경쟁보다는 남자 배우들을 섭외하기 위한 경쟁이 필연적으로 치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경쟁이 더 치열한 남자 배우들의 몸값도 자연스럽게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녀 배우의 몸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건 '관객'과 '시청자'들이다. 배우들도 본인의 연기 자체에 엄청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큰돈을 받는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들도 경제적으로는 '광고판'이기 때문에 큰돈을 벌게 된다. 운동선수들의 몸값과 배우들의 몸값이 결정되는 원리는 똑같다.


여기에서 남녀 배우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건 남자와 여자 팬들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남자들의 경우 누군가의 팬이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선물공세를 하거나 그 사람이 나오는 작품을 수 십 번씩 보고, 그 사람이 입거나 타는 걸 자신도 입거나 타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에 여성 분들의 경우 누군가의 팬이 되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오빠가 잘 되고 주목받아야 된다'면서 굿즈를 사는 분들은 많지만 '우리 누나가 잘 되어야 한다'면서 굿즈를 사거나 사생팬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 보니 남자 배우와 가수, 특히 아이돌들의 경우 필연적으로 더 많은 경제효과를 창출해 내는 결과를 낳는다. 남자 배우들의 경우 여기에 더해서 범죄물이나 액션물을 잘 찍으면 남자들은 그 작품에 빠져서 수 십 번도 더 보러 영화관에 가는 경우가 있으니 그 경제적 가치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사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놓고 봐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실질적인 원탑 주연 배우는 박은빈 배우이고, 우영우의 러브라인 상대인 이준호 역의 강태오 배우는 사실 스토리 상으로 보면 주연급 조연이다. 하지만 둘 사이의 러브라인이 부각되면서 강태오 배우는 그가 극 자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훨씬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는 듯하다. 반면에 박은빈 배우는 연기력도 인정을 받고 있지만 강태오 배우보다 월등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느낌은 사실 없다. 박은빈 배우가 절대적인 규모에 있어서는 더 큰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극 중에서의 비중 대비 관심으로 봤을 때는 강태오 배우가 받는 주목도가 훨씬 높은 느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자 배우들의 몸값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돌 출신 중에 연기가 어설픈 배우들이 연기 경력이 긴 연기파 배우보다 출연료가 더 높아지는 것도 사실은 같은 원리다. 연기를 연기파 배우가 훨씬 잘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그에게 엄청난 팬덤이 있지 않은 이상, 그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엄청 많은 사람이 그 작품을 보게 되는 게 아닌 이상 그는 아이돌 출신 배우보다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할 수는 없다. 연기적으로 봤을 때 그는 장인일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봤을 때 그는 아이돌 출신 배우보다 더 매력적인 광고판은 아닌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가치를 더 많이 창출해 내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가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운동선수와 배우들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을 놓고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은 '나는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연봉이 너무 적다'라고 말한다.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의 '힘듦'이 '객관적으로' 더 힘든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의 힘듦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처음 하는 사람은 맨몸으로 스쿼트를 해도 힘들 수 있는 것처럼 본인이 지금 힘든 건 어쩌면 아직 자신이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단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아무 일도 안 하는 상사들이 돈을 더 많이 받는 구조가 맞냐?'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겉으로 봤을 때는 그것도 분명 일리가 있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돈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해온 경험과 노하우에 기반되어 책정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의 연봉은 그 사람이 져야 할 '책임'과 비례한다. 안타깝게도 모든 조직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더 많은 의사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받는다. 최소한... 그래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가치'와 금전적 보상도 비례하지 않는다. 그게 일치한다면 환경미화원 분들이 연봉이 가장 높아야만 하지 않나? 환경미화원 분들이 전부 일주일만 파업을 해도 우리는 거리에서 쓰레기가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할 텐데 사실 엄청난 대기업이나 공무원도 일주일 파업을 한다고 해서 그게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미화원처럼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고 소중한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의 연봉이 지금도 특별하게 높은 편은 아니고 과거에는 말도 안 되게 낮았던 것은 환경미화원들에게 필요한 능력이 다른 고연봉의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능력보다 '덜 희귀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기르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에 그 경제적 가치가 높지 않게 평가되었었다. 오늘날에는 환경미화원의 연봉이 조금은 나아진 것은 그 존재의 사회적 가치를 과거보다는 인정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사원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힘들지 않은 회사원은 없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회사원들도 있지만 열심히 일하는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회사원들도 많다.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할까? 그건 많은 경우 회사원들은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 대기업 홍보실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할 때 나는 내가 꽤나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착각했었다. 당시에는 회사 안에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실무자는 나 하나였고 심지어 퇴사하기 직전에는 아무도 운영해 본 적이 없는 대학생 리포터 프로그램도 만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면서도 그 일에 차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웬걸... 두 일은 모두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갔다. 심지어 그 업무 자체가 커져서 지금 그 회사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두 팀이 하고 있고, 대학생 리포터 프로그램은 굉장히 오랫동안 운영되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건 제대로 된 회사는 어느 개인이 그만둬도 그 업무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그 시스템을 통해 일이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들은 자신이 해보지 않은 일도 빨리 익힐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확보하면서도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비용만 지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그러기 위해 그들을 그 시스템 안에서 교육하고 성장시킨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업의 가장 큰, 궁극적인 목표가 '수익 창출'이라는 걸 감안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기업들은 그런 시스템을 갖춰야만 한다. 그래야 기업이 살아남으니까.


그게 싫다면, 내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노동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유재석 씨가 왜 엄청난 몸값을 받는가? 유재석 씨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일면 '똑같은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그처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재석 씨가 국민 MC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나?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나? 그는 과거에 본인은 방송일이 맞지 않는 듯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에 말도 안 되는 비용을 받으면서도 일을 하기 위해 일을 하는 시간을 버텨냈다. 거기다 그는 지금도 대부분 예능을 보고, 시사까지 챙기며 공부를 하지 않나? 그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건 칠흑 같이 어두운 시간을 잘 버티면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내 노동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으로 돈을 벌기 위한 투자를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당장은 금전적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서도 경험을 하는 '시간의 투자' 방식으로 버텨야 할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프리랜서로 살다 보니 그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경험한다. 내가 했던 일들 중에 상당수는 처음에 '이걸 받고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의 비용을 받고 시작했는데, 그 시간을 잘 버텨내고 나니 다른 기회가 그래도 합리적인 수준의 비용으로 들어오더라. 심지어 내게 오퍼를 주신 분이 '그때 받으신 비용은 말도 안 되는 거고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사람들이 나만큼 운이 좋지 않고, 세상에는 악질인 인간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아니 사실 나도 그런 식으로 나를 이용하고 내 몸값을 후려치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정중하게 '그 비용으로는 차라리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거절을 했다. 그 일을 하는데 들어가는 나의 시간과 노력을 고려했을 때 내가 그 비용으로 그 일을 할 바에는 지금 당장은 돈이 안되더라도 다른 일을 하는 게 나를 위해서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거절을 했었다. 당혹스럽게도 그렇게 했더니 오히려 정당한 비용을 주는 오퍼가 들어오더라.


물론, 이런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도 조심해야 할 부분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본인의 가치를 실제 시장가치보다 과대평가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나의 가치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첫 드라마 작업에 투입될 때 말도 안 되는 비용을 받았는데 그건 내가 드라마 작업에 단 한 번도 참여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생활도 했고, 법학박사이기도 했지만 내가 드라마 작업은 전무한 아마추어였을 뿐 아니라 출퇴근하는 식으로 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그 비용을 받아들였었다. 내가 다른 일에서는 전문가일 수는 있지만 해보지 않은 일에서는 아마추어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을 그 안에서 버틸 각오도 해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측정하는 건 이처럼 복잡하고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쉽게 누구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을 많이 받는다고 비판하거나 나는 열심히 일하는데 너무 조금 받는다고 투덜대서는 안 된다. 그러기 전에 한 걸음 물러나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의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체 가능성과 희소성적인 측면에서. 내가 대체하기 어렵고, 희소할수록 나의 몸값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본인이 힘들다고 무조건 돈을 많이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힘든 건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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