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꿈이 없어도 괜찮아. 7

by Simon de Cyrene

앞에서 살펴봤듯이 많은 연구결과들은 인간의 행복과 건강에 '관계'가 가장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관계'가 반드시 연인이나 부부는 아니어도 된다. 어느 연구결과들도 관계가 연인이나 부부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에 믿고 신뢰할 수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볼 수 있으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을 온전히 신뢰하며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사람이 나쁘거나 부족해서, 또는 사람은 원래 악한 존재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은 주 7일, 24시간을 자신과는 항상 함께 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시간이 일주일에 24시간이 되면 엄청나게 가깝고 친밀한 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지내는 시간보단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상대를 온전히,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다.


여기에 더해서 우린 나이가 들고, 각자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가고, 일단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의 일이 가장 중요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어느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만 깊은 곳에서부터 이해하거나 받아들여주기 위한 노력을 하긴 쉽지 않다. 그 사람의 인생의 무게도 무겁기 때문에. 여기에 더해서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거나 환경이 달라지기 시작하면 두 사람은 대화도 잘 통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정말 친했던 친구들도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정과 사랑 중엔 당연히 우정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가 내가 좋아하고 있었던 사람과 사귀고, 그 이후에 헤어졌어도 내 친구의 구 여자 친구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사귄다 한들,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와 함께 보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난 친구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그렇게 아꼈던 친구와는 서로의 상황이 달라지면서 연락을 거의 안 하고 있고, 내가 좋아했던 친구는 우리가 다 함께 아는 다른 친구와 결혼을 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우정은 중요하다. 나도 가까운 지인들이 아니면 어둡고 힘들었던 30대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정에도 한계는 있다. 내가 지난 몇 년간 가장 친하게 지낸 편인 형과는 지금 일도 같이 하고 있고, 서로의 생각을 과도하게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고 그 형이 결혼하기 전에 형수님과 사귈 때 형수님은 그냥 둘이 사귀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친했고, 친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형이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거나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그 형에 대해서 그렇다. 나는 미혼, 그 형은 기혼일 뿐 아니라 서로 업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어려움을 아무리 털어놔도 그 형이 다 이해할 수 없고, 이는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본인의 인생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게 나쁜 것이 아니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다른 것들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리 친해도, 자신의 상황이나 이해관계가 변하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나쁜 놈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야 본인이 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서로 완전히 믿고 신뢰하던 사람들이 사업을 같이 시작했다가 원수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둘 중 어느 한 명이 완전히 나쁜 놈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둘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 가장 믿고 신뢰했던 친구가 있다. 심지어 대학에 진학한 후에 교회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고민을 하고 있는 내게 같은 교회에 다니자고 해서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로 옮길 정도로 친하고, 믿고 신뢰하는 친구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이민을 갔단 얘기를 들었다. 5분 정도 섭섭했다. 그런데 또 본인의 상황이 있으니 그랬겠지...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나는 개인적인 상황들로 인해 같이 다니던 교회를 옮기면서 그 친구에게 말을 못 했더라.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고, 그 상황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는 이처럼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바뀌면서 친하고 가까웠던 사람들과 조금씩 멀어진다. 그리고 또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과도 상황이 바뀌면서 가까워지기도 한다. 내가 다녔던 회사 동기들의 경우 연수원에서는 전혀 친하지 않았던 여자동기들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면서 엄청 친해지고, 또 아이들이 비슷한 또래들이다 보니 계속 친하게 지내게 되더라. 우리는 이처럼 본인의 상황이 변함에 따라 그에 맞춰서 누군가와는 멀어지고, 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인'들과는 현실적으로 '평생' '지속가능한' 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모든 것을 털어놓고, 공감하고 공감받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게 유일하게 다른 관계는 '부부'다. 부부는 둘이 같이 살면서 역할을 분담하고, 상대의 삶이 내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상대와 엄청나게 부딪힘과 동시에 누구보다 상대의 상황에 공감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서 두 사람은 법적으로 구속이 되다 보니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이걸 단점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인간의 한계를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간은 얼마나 순간순간의 변화에 반응하고, 그렇게 우발적으로 내린 결정을 후회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두 사람이 법적으로 구속되어 있는 건 두 사람이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이별을 결심할 수 없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정말 더 이상 맞추며 살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이나 감정이 틀어졌을 때만 헤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부딪혀도 맞추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본인의 틀을 깨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본인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이게 반드시 나쁜 것인가? 힘들고, 피곤한 일과 상황이긴 하지만 그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게 얼마나 많은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도, 그 음식의 재료를 건강하게 잘 만들기도 힘들다.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몸을 만드는 것도 피곤하고 힘들다. 하지만 그러한 피곤함과 힘듦을 감수하는 건 그 뒤에 오는 행복, 즐거움과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지고 행복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이다. 갈등이 없는 관계는 없고,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한 집에서 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고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그 과정을 버티면서 잘 맞출 수 있게 되고, 함께 공동체를 잘 꾸려나갈 수 있게 되면 두 사람은 다른 어떤 관계나 공동체에서도 누릴 수 없는 수용감과 안정을 누리게 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다른 관계에서 그 정도 관계를 형성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정도 힘듦을 투자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연애만 해도 된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아주, 매우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평생 연애만 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여자들은 30대 초반, 남자들은 30대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게 옳은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리고 40대가 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하다 보니 연애를 시작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도 현실이다.


당신이 연애를 할 때 상대가 당신의 금전적인 요소들을 누리기 위해서 만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당신의 연인이 당신이 나이가 들면서 피부와 외모가 달라져도 당신 옆에 남아있을 것을 확신할 수 있나? 그게 쉽지 않은 관계와 지인들 앞에서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한 약속이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하는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가 절대로 같을 수 없다.


연애나 결혼을 하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서로 맞출 수 없는 사람과 연애나 결혼을 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그렇기 때문에 싱글로 사는 것은 최소한 차악의 선택이다. 내가 20대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노총각이 되어있는 것도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신이 드는 사람이 없어서 항상 차악을 선택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맞추는데 시간과 노력이 들어도, 관계를 잘 만들어 나가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두 사람에게 대체불가능한 관계를 선물해 준다. 그 사실은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이 이미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투자는 해볼 만한 게 아닐까? 연애기간을 거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나서 하는 결혼이 성공할 확률은 최소한 지인에게 고급정보라는 말 몇 마디만 듣고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단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