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꿈이 없어도 괜찮아. 6

by Simon de Cyrene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꿈꿔 본 삶이 있다면 그건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통장 잔고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지점이 보이더라.


시스템이 돈을 벌어들이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매일 미친 듯이 돈을 써도 평생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일단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의 상장기업 대주주들은 사실 배당을 엄청나게 하면 놀고먹어도 돈이 자신들의 주머니로 들어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일을 한다. 우리나라 재벌그룹들의 경우 심지어 오너들이 굳이 피곤한 CEO의 역할을 하면서 회사를 본인이 원하는 대로 경영하려 한다. 그들만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 놀고먹으면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돈에 대한 무제한적인 욕구와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돈이 안 되는 일을 만들어서라도 일을 한다. 그들은 왜 그럴까?


일하는 것 자체가 주는 성취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은 평생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그 느낌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어본 사람들은 단순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넘어서 일하는 것 자체에 대한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성취를 알기 때문에 먹고사는 걱정을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일을 한다.


그들이 반드시 돈이 많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돈이 많지 않더라도 돈과 무관한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그 사실을 알려준다. 만약 일이 가져다주는 유일한 유익이 돈이라면 창업을 해서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시켰거나 다른 회사에 팔아서 상당한 수준의 돈을 번 사람들이 다시 창업을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 밖에서 일을 하는 구조로 인해 평생 큰돈을 벌지 못할 것을 면서도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일은 돈 외에 다른 것도 주는 것이 있단 것을 보여준다.


작더라도 의미 있는 성취를 달성해 본 사람은 안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의 짜릿함과 보람, 의미가 때로는 돈 보다 더 큰 보상이 되기도 한단 것을. 그리고 '관계'에서 오는 행복과 안정감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빵만 먹고살 수 없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때로는 케이크를 같이 먹고 싶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지점에서 오는 다양한 행복, 즐거움과 성취가 필요하다. 그리고 일은 분명 그런 것들을 무리해 줄 수 있는 중요한 통로다.


부자들만 그런가? 아니다. 연세가 되신 분들도 퇴직하고 일이 없어지면 급격하게 외모도, 마음도 늙으시는 것도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지 일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부모님들이 은퇴하고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없어진 느낌을 받으실 때 어떻게든 자녀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하는 것도 어쩌면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지 일을 해야 자신의 존재감이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일에서 오는 성취가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하진 않단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는 있다. 일에서 오는 성취감, 행복과 즐거움은 결국 도파민의 분비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성취, 행복과 즐거움은 계속해서 자극이 커져야 같은 수준의 그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에서 느껴지는 성취감, 행복과 즐거움은 한식으로 따지면 반찬이지 메인디쉬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단순히 '워라밸'이란 말로 '일은 무조건 힘들고 따분한 것'처럼 치부되는 현실은 안타깝다. '워라밸'이란 이름으로 최대한 적게 일하려는 사람들을 무조건 폄하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많은 회사들에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리고 사실 지금은 하찮아 보여도 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지금 하는 일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관리자가 있다면 지금과 같이 일은 무조건 최소한으로 하려는 사람들도 확연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그런 문화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단순히 '돈벌이'적인 차원에서라도 그러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는 본인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없어진 요즘, 회사에서 워라밸만 챙긴 사람들은 어떻게 이직하게 될까? 한두 번 정도는 그 사람이 가진 이력 덕분에 이직을 잘할 수도 있지만, 최근에 회사들은 단순히 이력서에 있는 몇 줄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전 직장에서 같이 일해 본 사람을 찾아서 평판조사를 한다. 그런데 자신만 챙기면서 일하고,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일을 떠맡게 만든 사람들은 평판이 좋을 수가 없기에 그 사람의 이직과 밥벌이는 자신의 평판으로 인해 지속가능하지 않아 질 수 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워라밸만을 챙기는 건 결국 본인의 능력치를 향상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일과 운동은 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첫 번째 공통점은 기초가 가장 중요하지만 기초를 만드는 과정은 지겹다는 데 있다. 세계적인 선수들에게도 가장 강조되는 건 항상 '기초'다. 그런데 기초를 다지는 운동은 지겹고,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가운동선수들에게 가장 강조되는 것은 기초가 단단해야 그 위에 다른 것들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운동이 지겹단 이유로 기초를 다지지 않은 사람들은 실력이 느는데 한계가 분명하다. 일도 마찬가지다. 주니어 때 하는 일들은 지겹다. 하지만 왜 하는지 모르면서도 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 보면 관리자가 되어서 일을 디테일하게 챙기는데 어마어마하게 도움이 된다. 반대로 실무를 안 해봐서 모르는 사람들은 아랫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기 십상이다.


운동과 일의 두 번째 공통점은 근육을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일도 능력치가 생기는데 시간이 필요하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빨리 만들고 싶은 사람은 운동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야 하듯이, 더 많은 일을 해서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선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운동을 하지 않고 몸이 좋아질 수 없듯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능력치를 갖출 수가 없다. 최근에 한 지인은 마케팅팀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데이터를 입력하는 업무를 하다가 면담신청을 해서 본인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싶다고 했다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말해주더라. 그 자신감은 존중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일을 담당하기 위해선 다양한 일과 경험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운동과 일은 잘하게 되기 전까지 지겹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운동과 일은 처음 시작할 때 큰 그림이 눈에 보이지 않고, 몸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지겹고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처음엔 마냥 지겹고 힘들던 일도 익숙해지고, 다양한 일들을 하다 보면 큰 그림이 보이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미치는 영향과 효과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재미있어지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느끼게 된다.


모든 일과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부리고, 쓸데없는 일만 시키는 회사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작은 기업일수록 회사 안에 시스템이 없어서 다양한 일을 할 기회가 없고, 사람을 챙길 여력이 되지 않아서 그럴 확률이 더 높다. 그럴 때는 그 회사가 속한 업종, 그 회사의 사장과 선배들을 보고 계속, 열심히 일하는 게 맞을지를 판단하고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 안에서 워라밸을 챙기기보단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낫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떤 이유에서든지 버티면서 열심히 일할 유인이 있는 곳을 찾아서 열심히 일하는 게 지속가능한 밥벌이는 물론이고 언젠가 성취감을 느끼면서 일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조금 힘들어도 미래가 보이는 곳이거나 업계라면, 일단은 버티며 열심히 일하자. 그게 미래의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투자다. 그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밥벌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아 지고, 일에서 느끼는 성취와 행복은 영영 느끼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