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목표, 어디까지 가질 것인가?

꿈이 없어도 괜찮아. 5

by Simon de Cyrene

앞의 글만 읽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행복은 관계에서 오고, 그 관계는 가족이나 동거인과의 관계될 확률이 높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충족될 것이란 게 아니다. 인간은 다양한 욕구와 욕망을 갖고 있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는 없다. 그게 가장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관계가 희생되는 수준까지 일을 하고, 꿈과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본인을 망가뜨릴 수 있단 것이지 그게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단 것은 아니다.


하지만 꿈이나 목표가 없다고 해서 그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게 가장 중요한 본질은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절에 '나는 왜 살아야 하지?'란 고민을 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그 과정에서 행복해야 한단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이루거나 명예, 권력을 갖게 되면 뭘 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힘듦을 참고, 견뎌야 하는데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그렇게 보내다 죽고 나면 그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그게 역사에 기록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흐는 살아생전 그림을 하나 밖에 팔지 못했는데, 지금 그의 그림은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흐가 그걸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가 대통령이 되어 이름을 역사에 남기면 무엇할 것인가? 우리가 그 명예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반면에 대통령이 되기 위해 기울여야 하는 노력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의 상당 부분은 대통령이라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한 시간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그 현재 안에서 행복하기 위해선 결국 그 과정이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꿈과 목표만을 위해 돌진하는 삶은 그 과정이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꿈과 목표만을 바라봐서는 안된다. 그 꿈과 목표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앞의 글에서 살펴봤듯이 인간에게는 그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 미래를 보고 '꿈과 목표'를 가지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결국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큰 그림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현재에 충실하게 되면 그 현재들이 축적이 되어 인생이란 큰 그림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일단 오늘을 즐기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일리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여기에서 '지속가능성'이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지금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우면 그 행복과 즐거움은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젊은 날에 모든 것을 불태우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게 되면 그 뒤에 찾아오는 고통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갖고, 모든 것을 누리면서 평생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시간과 물질에는 제한이 있고, 비슷한 욕구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어느 정도의 고통과 힘듬은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과 고통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그 균형점을 최대한 높이면서 그것이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생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사람마다 이 '균형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가장 본질적이긴 하지만, 그 외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안정적인 관계만 보장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안정적인 관계와 함께 일에서 느끼는 보람과 가치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항상 돈과 연결시키지만 사실 많은 연구결과들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 때문이지 돈 자체가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반드시 일에서 보람과 의미와 가치를 느낄 필요는 없단 것이다. 일은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되어도 된다. 애초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보람과 의미와 가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에서 보람과 의미와 가치를 찾지 않아도 된다. 나의 첫 직장에서 한 선배는 회사생활이 재미있냐는 질문에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너는 돈 내면서 다녀야겠네'라고 말했다. 그렇다. 회사는 당신이 하는 일이 힘들고, 피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을 주는 것이다.


회사는 효율적으로 생산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 회사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윤창출이 개인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사람들이 같은 일을 반복하도록 만듦과 동시에 그 사람을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도록 일의 단위를 나누기 때문에 그러한 회사 안에서 하는 일에서 보람과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새로운 일을 배울 때 느껴지는 자극 때문에 처음에는 일이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지속가능하진 않단 것이다. 회사들이 보직을 순환시키는 것은 회사의 일이 언제든지 대체가능하고, 사람들이 계속 새로운 일을 접해야 회사에 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무엇인가에 영향을 주고, 만들 때 보람과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데, 누군가가 그렇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존재하면 안 된다. 그런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일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가 벗기 때문에 큰 이익이 나기도 힘들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람과 의미와 가치는 보통 돈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영역에서 찾는데, 그렇기 때문에 보람과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들은 큰돈이 안된다. 우리가 돈과 보람, 의미, 가치를 같이 추구하고 갖기는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 때문에 현실에서 많은 지점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타협할지를 놓고 항상 고민해야 한다. 예술을 하는 사람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맞춰서 예술작품을 팔아야 그 사람의 주머니에 있는 돈이 내 주머니로 옮겨올 수 있고, 관계가 아닌 일에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고 싶은 사람도 자신을 안정시켜 주는 관계가 있어야 계속 꿈과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좋은 관계를 형성함과 동시에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데 그건 실현불가능한 과한 욕심이다. 우리는 그 세 지점을 돌아가면서 타협점을 찾고,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어떻게 남에게서 돈이 오기를 바라고, 내가 일만 하면서 상대가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며, 자신은 아무렇게 해도 상대가 다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것은 절대로 현실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잠도 자야 하는데 모두 24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고,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서 얼마나 많이 가질 것인가 보다 무엇을 얼마나 포기하고 희생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누구도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