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목표와 행복

꿈이 없어도 괜찮아. 4

by Simon de Cyrene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하고, 경쟁이 강조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면 행복해질 것 같이 말한다. 과연 그럴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돈을 많이 번 사람들도 마약에 빠지고,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하는 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돈과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같은 느낌이 없단 것이 아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상을 탈 때 느껴지는 짜릿한 감정은 분명 존재한다. 그런 느낌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돈을 벌고 성취를 이룬 뒤에 느껴지는 감정이나 느낌은 도파민이 분비됨으로써 일어난다. 그런데 도파민의 분비로 인한 자극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우리는 같은 수준의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도파민의 분비를 필요로 한다. 사회적으로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 중에도 마약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그들이 더 강한 자극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마약은 너무 극단적인 예시인 만큼 거기까지 가진 말자. 그리고 도파민이 줄 수 있는 행복감에 초점을 맞춰보자. 우리가 꿈이나 목표라는 표현을 쓸 정도의 성취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 성취감은 그 성취가 이뤄졌을 때 찾아온다. 그렇다면 그 과정은 어떨까?


그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힘들고, 피곤한 일들이 많으며 꿈이나 목표라는 말을 붙일 정도의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는 크고 작은 실패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꿈이나 목표로 삼을만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원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설사 실패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본능과 욕구를 눌러가면서 그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24시간으로 구성된 하루를 사는 현실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잠도 줄여야 할 수 있다.


꿈이나 목표로까지 삼을 만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선 그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것들은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많은 관계들이 포함될 것이다. 꿈이나 목표를 이루는 게 중요한 사람은 그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과는 시간을 덜 보낼 것이고, 그러면서 그 사람 주위에는 비슷한 꿈과 목표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렇게 꿈과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사람의 관심사는 그 꿈과 목표와 관련된 것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 보면 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은 행복할까? 행복할 수 있다. 그 꿈과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는 그 목표의식이 그 사람의 삶의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삶을 산 적이 있다. 그랬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에는 로스쿨에 가기 위해 봐야 하는 시험을 준비했고, 로스쿨에 진학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독서실에 나와서 공부를 했으며, 신경안정제까지 먹어가면서 변호사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준비해야 하기에 사람을 만나지 않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4-5일은 하루에 말을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삶을 수년간 살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망가져 가는 것을 느꼈다. 4-5일을 말을 안 하며 살다 보니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상대의 말을 듣기보단 내가 계속 떠들고 있었고, 텅 빈 자취방에 들어와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면 외로움과 물리적인 고통 속에 방구석에 굴러다녔으며, 걸어서 한강 다리를 건널 때면 발아래 있는 물을 한참 동안 지켜보며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극단적인 생각이 너무 오래 반복되었을 때 나는 위험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나만 그렇게 되었을까? 아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통해서 꿈과 목표를 이루려는 사람들도 그 패턴은 보통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꿈과 목표와 관련된 관심사가 있는 사람을 주로 만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항상 긴장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그들이 자신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그 긴장감을 내려놓고 푸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이 그걸 혼자서 취미활동을 하면서 해결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는 성인의 성장에 대한 연구(Study of Adult Development)를 85년간 하고 있는데, 최근에 발표한 그 연구결과는 인간의 행복이 꿈이나 목표의 성취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1938년에 하버드 대학교 재학생들과 같은 연령대에 보스턴 빈민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총 700여 명과 그의 후손까지 삶을 추적하고 분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뤄진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오고, 인간관계에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이 건강하기도 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꿈과 목표만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관계가 좁아지거나 망가지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꿈과 목표를 이루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그런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UC Riverside의 Sonja Lyubomirsky교수가 성공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2005년에 연구한 뒤에 2018년에 다시 연구를 진행한 결과 행복은 성공을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들이 성공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연구결과는 당연할 수밖에 없단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의미와 보람도 느낄 수 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런 다름을 견디고, 타협하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는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나처럼 거의 혼자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게 된다. 우리는 그걸 어딘가에 풀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반려동물을 키운다.


문제는 운동이나 취미생활과 반려동물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운동이나 취미생활은 그 순간 축적된 스트레스를 잊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진 않는다. 물론, 반려동물들은 운동과 취미생활이 줄 수 없는 행복을 주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나는 1994년에 친구의 반려견이 낳은 지 2개월 된 강아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온 뒤 2009년까지 키웠는데 그 아이는 나와 동생의 청소년기에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반려동물이 주는 행복과 위로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나의 상태를 쏟아내는 형태의 소극적인 것이고, 누군가가 나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품어주는 수준의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연구결과들과 이러한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관계'이다. 그런데 꿈과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받아들여주기가 힘들다. 이는 그들이 나의 꿈과 목표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나도 그들의 꿈과 목표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일 밖의 영역에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꿈과 목표 밖에서 그런 관계를 찾아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꿈과 목표가 중요하지 않고, 일을 할 필요가 없단 의미가 아니다. 꿈과 목표보다 인간에게 더 필요하고, 더 본질적인 것이 있고 그건 결국 '좋은 관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 수준으로는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 그 관계는 자신의 꿈, 목표, 일에 대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하루의 상당 시간을 일해야 하고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런 관계는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는 가족이나 동거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