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어도 괜찮아. 3
내 지인들 중에는 연봉이 억대를 찍고 넘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다. 변호사시험에 계속 낙방하며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던 30대 중반에 내 통장잔고가 67만 원을 찍었을 때도 내 회사와 로스쿨 동기들은 대부분이 연봉이 억대를 넘어섰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내가 다닐 때 이미 '10년 차 연봉=1억대'가 공식처럼 되어 있었고, 내 로스쿨 동기들 중 상당수는 대형로펌에 갔으니 그럴 수밖에.
그들의 삶은 행복하고, 완벽할까? 나도 30대 중반에는 그들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관찰할 여유가 내 인생에도 생긴 뒤에 내가 알게 된 건 그들 중 상당수가 행복하지 않단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연봉과 직장을 보고 그들의 삶을 부러워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실상은 조금 달랐다. 변호사가 되어 대형로펌에 간 내 지인들은 주 5-6일을 새벽까지 일해야 했고, 항상 의뢰인들에게 저자세로 그들에게 맞추면서 일을 해야 했다. 오죽하면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한 번도 몰지 못하는 슈퍼카를 아침에 출근하면서 쓰다듬으며 만족감을 느끼고, 그들이 번 돈을 쓸 시간이 없어서 아내와 아이들이 돈을 다 쓴다는 악성 유머가 생기겠나?
내가 첫 사회생활을 했던 회사는 그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워라밸도 괜찮은 편이고, 퇴사를 한 동기들은 입을 모아 우리나라에서 기업문화가 가장 나은 편이긴 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정도니까. 그렇다면 그 회사에 다니는 동기들은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아니다. 그 회사는 공기업 같은 분위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또 뭔가 신사업발굴을 하고 창의적일 것을 요구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데, 그렇다 보니 그들은 분명한 성과가 나지 않는 일들을 계속하고 심하면 1년에 팀이 3-4번 바뀌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동기들 중 상당수는 경험이나 능력치가 쌓이지는 않았고, 회사를 다니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30대에 이미 하고 있었다.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그들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에서 소득을 기준으로 어쨌든 최소한 상위 10% 안에는 들어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의 삶에는 실제로 현실적인 걱정과 두려움과 고통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꿈과 목표하는 바를 이루고 나면 그로 인한 성취를 잠시 느끼긴 하지만 그 상황에 적응을 하고, 그 위치가 익숙해지면 그 성취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든다. 그리고 본인이 이룬 것보다 더 크게 좋아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꿈과 목표를 인생의 중심에 놓고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계속 꿈과 목표를 이루고, 익숙해진 뒤에 또 다른 꿈과 목표를 만들어서 달리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인간이 그럴 수밖에 없단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입증이 된 바 있다. 복잡한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설명해야 하는 원리도 아니다. 인간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인데, 인간은 일정한 자극에 익숙해지면 더 강한 자극을 받아야 도파민이 더 분비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꿈과 목표를 계속 세우고 그것만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더 큰 자극을 찾아가고, 심지어 그 자극에 중독이 되어 경주마처럼 꿈과 목표만을 향해 달리기를 반복하게 된다.
다 좋다. 그렇게 해서 꿈과 목표를 항상, 평생 이루고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은 꿈과 목표를 항상, 평생 이루면서 살 수 없다는데 있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성공한 경험보다 실패한 경험이 많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일정한 경험이 축적되기 전에는 삶의 변수들을 인지하지 못해서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고, 경험이 축적된 뒤에도 다른 사람이나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계획이 무산되기도 한다. 사회적인 동물로, 사회 안에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꿈과 목표는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환경과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꿈과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나의 예를 들어보자. 나는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 지인의 회사에 잠시 들어갔었는데, 나는 2개월 만에 난 결국 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됐고 프리랜서로 월 수입이 500만 원은 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퇴사를 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고, 그 계획은 모두 무산되었다. 내 노력과 과거의 경력으로 안정적인 체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꿈과 목표는 이처럼 절대로 항상 성취될 수도 없고, 꿈과 목표를 한 번 이뤘다고 해서 인생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취업을 하면, 변호사나 의사가 되면, 교수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아니다. 취업을 하고 나면 그 회사 안에서 살아남아야 월급을 받을 수 있고, 변호사는 결국 영업을 하고 의뢰인에게 잘 맞춰야 일감이 계속 들어오고, 이는 결국 의사도 마찬가지다. 교수들은 임용이 된 후에 학생들의 강의평가와 자신의 연구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으며 부교수, 정교수까지 되어야 삶이 안정되는데 대부분 교수들의 연봉은 심지어 사기업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편이다.
정치인은 어떨까? 정치인뿐 아니라 돈, 명예나 권력을 엄청나게 가진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된 상태라면 당신은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돈,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 주위에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연예인들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들이 멍청하거나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돈을 보고 몰려드는 사기꾼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꿈과 목표로 삼은 것이 있고, 그걸 달성했다고 해서 우리 삶이 곧 행복해지고 아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마치 꿈과 목표를 이루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꿈이나 목표에 너무 집착하며 살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할까? 우리는 그저 먹고, 자다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일까?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을 해보려 한다.